나의 회사 생활일지 #4
ERP라는 단어는 오랫동안 기업 경영의 중심에 자리해왔다. 한때는 “전사적 자원 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라는 다소 기계적인 이름 아래, 기업의 내부 자원과 프로세스를 정리하고 효율을 높이는 데에 집중되었던 도구였다.
ERP가 처음 주목받았던 시절, 기업들이 이 시스템에서 기대했던 것은 명확했다. 복잡한 업무 흐름의 정리, 중복 업무의 제거, 운영 비용의 절감, 그리고 데이터의 가시성 향상. 다시 말해, ERP는 내부의 질서를 바로잡고, 눈에 보이지 않던 비용을 줄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 목적은 효율이었고, 그 대상은 내부였다.
하지만 세상은 바뀌었다. 그리고 ERP가 놓인 위치도 바뀌었다.
오늘날 기업들이 ERP에 기대하는 것은 과거보다 훨씬 더 크고, 복잡하며, 전략적이다. ERP는 더 이상 단순한 자원 관리 시스템이 아니다. 지금의 ERP는 기업의 ‘비즈니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기업은 ERP를 통해 단지 운영을 잘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시장에 민첩하게 대응하고, 디지털 전환의 방향성을 확보하며,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기반을 갖추고 싶어 한다.
ERP는 이제 디지털 혁신의 출발점이자, 그 혁신을 현실로 끌어내는 핵심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지금과 앞으로의 ERP는 다음과 같은 변화의 흐름을 따를 것이다. 첫째, AI의 적용은 ERP가 단순히 데이터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단계를 넘어서, 예측하고 제안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시스템으로 거듭나게 한다. 둘째, 클라우드 기반의 전환은 유연성과 확장성을 극대화하며, 언제 어디서든 접근 가능한 민첩한 비즈니스 운영을 가능케 한다. 셋째, 모듈형 ERP의 확산은 필요에 따라 기능을 빠르게 도입하거나 변경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를 만들어낸다. 넷째, ESG 대응력은 앞으로 기업의 생존과 직결되는 요소가 되어, ERP 역시 재무 외적 요소까지 측정하고 보고할 수 있는 기능을 요구받게 될 것이다.
이제 ERP는 단지 기업의 ‘운영 시스템’이 아니라, 비즈니스의 ‘방향’과 ‘철학’을 담아낼 수 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고객의 요구는 계속해서 높아진다. 그 변화의 흐름을 ERP가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더 넓은 시야로 기업을 이끌어가는 역할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금 말하는 ‘미래의 ERP’의 모습이다.
ERP는 과거의 질서를 만들었고, 이제는 미래의 전략을 설계하고 있다.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ERP 역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