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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동이 Mar 31. 2023

무제 5

1. 천국과 지옥이 정말로 존재할까? 인간이 죽고 나서 하늘 위로 올라가면, 과연 무슨 세상이 펼쳐질까? 천사들이 나타나서 선한 일을 한 사람들에게는 축복과 은총을 선사할까? 반대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은 유황물과 쇳물이 가득한 지옥에서 최후의 심판을 받을까?   

  

2. 지금으로부터 6년 전에 나는 고대 그리스에 관심이 많았다.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헤시오도스의 계보, 호메로스의 서사시, 에우리피데스의 비극 등 서양 문명의 기틀을 이룬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접하고 나니, 내 두 눈으로 고대 그리스 문명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고대 그리스 문화에 이끌렸을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고대 그리스가 중시했던 예술의 낭만과 자유로움, 그리고 만물의 근원과 원리에 대해 파악하려는 지적 사상의 추구들이 내가 추구하는 성향과 공교롭게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사람들은 주로 타임머신을 타고 어느 시대로 가고 싶냐고 물어보면, 미래로 가고 싶다고 대부분 대답한다고 한다. 나는 정반대다. 고대 그리스 시대로 돌아가, 길거리의 철학자들이 세상의 구성성분에 대해 토론을 하는 모습과 페이디아스와 같은 예술가들이 조각한 아름다운 석상과 신전들을 보고싶다.

      

3. 어렸을 때, 귀신이 나오는 영화를 눈을 질끈 감고 본 적이 많았다. 생각해보니 어린 나이에 경험했던 그러한 공포 영화들이, 의도치 않게 소설을 쓸 때 꽤 많은 영향을 줬다. 의사들이 메스로 신체를 해부하듯 자신의 작품을 구체적으로 분석해보라는 말을 한 봉준호 감독의 말에 따라, 나도 내가 쓴 작품을 세부적으로 분석해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알게 된 사실인데, 유독 내가 자주 쓰는 문장에 일종의 관습처럼 특정한 표현들이 자주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문득’ ‘귀신에 홀린 듯’ ‘유령처럼’ ‘떠다니는’ ‘홀연히’ 같은 단어들이 그러했다. 어렸을 적에 보았던 공포 영화들이, 무의식중에 어휘의 형태로 떠오른 것이었을까?

     

4. 10년 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년 전인 21살의 봄을 기억해봤다. 멋지게 차려입고, 어엿한 대학교 2학년 선배가 되어 신입생들과 이야기꽃을 피웠던 그때를 말이다. 나름 때 빼고 광냈던 경험이 머릿속에 가득하다. 그때의 나에게 31살은 절대로 찾아오지 않을 것만 같은 나이였다. 어디 먼 시대의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말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어느덧 군대를 전역하고, 복학생이 되어 학교를 졸업했다. 취준생으로서 막막한 가슴을 부여잡고, 입사지원서를 내며 자기소개를 외우던 때도 있었다. 취업에 성공했지만, 버티지 못하고 좌절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31살이 되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든다. 시행착오도 더 많이 겪어보고, 연애도 더 많이 해보고, 여행도 더 많이 가보며, 삶의 단맛, 쓴맛, 짠맛, 그리고 떫은맛까지 경험해봤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말이다. 인생에 한 번뿐인 젊음이다. 각오하지 않으면 30대도 쏜살같이 흘러갈 것이다.      


5. 철학의 힘. 철학은 나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게 해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슨 생각을 주로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 생각의 끝은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려주는 길잡이 역할을 해준다. 또한 천연 항우울제 역할도 해준다. 끊임없는 우울과 비탄에 빠질 때마다 철학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본다. 요새는 불교철학을 공부 중인데, 모든 것에는 인과관계가 있기 마련이고, 만물은 상호 의존적이라고 한다. 내 주변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과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리고 내가 걱정하고 근심하던 것들이 거대한 관점에서 비추어보면 실은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 것들이었는지 헛웃음만 나온다.

     

6. 요즘 내 글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바로 주체인 ‘나’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 이게 무슨 말이냐고? 즉, 나와 아예 독립된, 나와 완전히 다른 상황인, 나와는 무관한 주제를 건드리지 못하고 오로지 나와 관련된 글만 쓰는 것 같다. 내가 썼던 글들의 테마는 대부분 그때 당시 내가 겪었던 상황, 그때의 내 심정, 그때의 내 생각과 관련되어 있다. 글감을 다양하게 잡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나’라는 테두리에서 벗어나질 못한다. 다시 말해, 사회 현상, 경제와 정치,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거수일투족들을 포착해 다양한 관점으로 글을 쓸 수 있는데, 그러질 못하고 내면에 너무 몰입하는 것만 같다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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