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여섯~일곱번 째 책 / 학교폭력의 모든 것 & 학교폭력, 해결의 맥
1.
장난감으로 가득한 놀이방에 아이 세 명을 두고 같이 놀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아마도 마음 맞는 두 명은 짝을 이뤄서 놀고 나머지 한 명은 자연스럽게 혼자 놀 것이다. 이를 '3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아이들 세 명을 한 공간에 두고 같이 놀게 하면 반드시 한 아이가 소외되는 경향을 말한다. 사실 굳이 이렇게 법칙을 들면서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이다. 따돌림은 인간의 역사에서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했으며 계급과 빈부를 따지지 않았다. 즉, 집단을 이루는 곳에서는 언제나 따돌림이 존재했다. 그러므로 학교에도 따돌림은 존재하며 사라지지 않는다. 사실 부모가 되기 전에는 학교폭력은 나와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내 아이가 취학아동이 되면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학교폭력이었다. 특히 수년 간의 '직장인 괴롭힘'을 당해본 피해자로서 따돌림이 어떻게 한 사람의 육체심리적 건강과 정서적 안정을 파괴하는지 알기에 학교폭력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요즘의 학교폭력은 갈수록 지능화되고 악랄해지는데 법과 제도는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다. 그래서 읽은 책이 '학교폭력의 모든 것(저자 노윤호 /시공사)'와 '학교폭력, 해결의 맥(저자 이호진 / 이너북스)'였다. 내 아이가 학교폭력의 가/피해자가 되었을 경우에 어떻게 해결하고 상처를 회복해야 하는지 알고 싶어 두 번이나 완독을 했음에도 가슴을 쥐어짜 누르는 뭔가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최근 방송에서 보도된 '대치동 10세 놀이터 학교폭력(화상) 사건', '정순신 국가수사본부장 후보자 자녀의 학교폭력 사건' 및 '권경애 변호사 학교폭력 변호 불참 사건' 등을 보면서, 부모가 학교폭력으로부터 자녀를 지킬 수 있는데 명백한 한계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이었다.
2.
나는 학교 폭력이 더 이상 학교에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선 학교는 교육기관이지 수사기관이나 사법기관이 아니다. 학교폭력 전담 선생님들이 학교폭력예방법에 근거하여 사안조사 등의 업무를 담당하지만 전문 조사관이 아니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교육과 실무를 통해 전문기술을 습득한 조사관의 역량을 선생님들이 따라잡을 수 없다. (선생님들의 무능력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전문분야가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학급의 교과과정 수행과 학교의 행정업무를 동시에 처리해야 하는 선생님들에게 학교폭력 대응업무는 과중되는 추가 업무이다. 또한 사안조사 과정 중에 가/피해자들로부터 들어야 하는 항의, 불만 또는 욕설 등은 선생님들이 고스란히 감내해야 한다. 심한 경우에 피해학생 부모가 교실에 난입하여 초등학교 교사를 아이들 앞에서 폭행한 일도 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리 선생님들이 선의를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질 리가 없다. 적확하고 온당한 조사가 적법하게 이뤄지려면 별도의 전문기관 또는 조사기관을 설립하여 대응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교사들은 되도록 ‘학교폭력 업무’를 피하려고 합니다. 일선 학교에서 학교폭력 업무는 신규교사·전입교사, 심하면 기간제교사, 혹은 상담교사와 같은 비교과교사의 업무가 되기도 합니다. 학교폭력 업무를 억지로 맡은 교사는 1년간 울면서 일 합니다.
3.
물샐틈없는 법과 제도는 없다. 작은 틈새는 언제나 있기 마련이며 틈새의 크기는 현실에서 오는 괴리에 따라 달라진다. 최근에 발생된 일련의 학교폭력 사건 처리를 볼 때, 학교폭력예방법에는 틈새가 아니라 큰 구멍이 난 것으로 보인다. 책에서도 소개된 내용을 보면 가해학생과 그의 부모가 학교폭력의 구체적인 절차와 한계를 파악하고 악용하는 사례가 있었다. 예를 들어 피해학생의 손으로 자기를 때려 쌍방으로 몰아간다거나, 피해자의 학폭신고의 진정성을 훼손하기 위해 맞학폭 신고를 한다거나, 전학처분이나 학생기록부에 학폭 기재를 막기 위해 집행정지를 건다거나, 학교폭력심의위원회의 결정을 막기 위한 행정소송 또는 행정심판이 그것이다. 특히 집행정지는 전체의 3분의 2가 받아들여졌는데 이걸 이용해서 가해학생과 그의 부모는 행정소송이나 행정심판을 지연시키고 처분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학교를 졸업해 버리고 만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진심 어린 사과는 없다. 두 번째는 가해자에 대한 학교폭력 평가방법이 객관적이지 못한 것 같다. 책에 따르면 심의위원회에 참석한 위원의 과반 이상 다수결 동의로 가해자의 학교폭력을 평가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폭력의 심각성 점수를 0점으로 하는 게 어떨까요?' 하고 구두 질의 및 답하는 방식이다. 이 과정에서 올바른 평가를 위한 격론이 오가는지는 모르겠으나 위원의 영향력에 따라 점수가 편향될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해 책에서는 위원들이 각자 점수로 평가하고 평균점수를 산정하여 평가하는 것이 더 객관적인 방법이라고 말한다. 나는 여기에 평가 코멘트도 충분히 넣어서 객관성과 주관성을 균형 있게 확보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마지막으로 학교장의 자체해결이 악용될 소지가 있어 보인다. 학교장이 자체해결 조건 중에 증거불충분 또는 상호 간의 화해 등이 있는데 가해학생이 사전에 증거를 인멸하거나 피해학생을 협박하여 거짓 화해를 유도하면 가해학생을 처벌할 방법이 없다. 게다가 가해학생이 거짓 사과, 거짓 반성, 거짓 화해 등의 연기에 속아 넘어가 피해학생과 그의 부모가 가해자에게 다시 고통을 받는 사례도 있었다.
폭력 사건 발생 직후 처벌과 사과가 제대로 이뤄져야 하는데 거짓으로 화해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 결국 피해자는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채 졸업하고 이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에 시달리게 된다.
4.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 입장에서 보면 학교는 개방적인 곳이 아니라 폐쇄적인 곳이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하면서 잠재적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 회사에서 따돌림이 있으면 보직변경을 요청하거나 이직을 해서 회피하는 방법이 있다.(물론 간단하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학교는 그럴 수 없다. 선생님도 반친구들을 스스로 선택할 수 없다. 그리고 아직 뇌발달이 미숙한 아이들은 폐쇄적인 학교에서 보이지 않는 서열을 세운다. 사회에서 개인은 사회적 지위, 권력, 명예 및 부를 통해 자기 위치가 정해지지만 학교에서는 보다 원초적이다. 학교에서 외모, 싸움(힘), 인기 등의 여부에 따라 학생들의 자기 위치와 그룹이 정해진다. 외모가 좋고 싸움도 잘한다면 학교생활을 주도하는 그룹에 속하게 되어 다른 학생들로부터 선망 또는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여기에 군중심리마저 학생들을 덮치면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워진다. 가해학생들은 학교폭력을 일종의 놀이로 치부하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피해학생을 지속적으로 괴롭힌다. 게다가 가해학생은 자신이 행한 학교폭력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피해학생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따돌림도 당할만하니까 당하는 것이라는 이야기인데 이에 대해 책에서는 범죄 피해자에게 범죄를 당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냐고 책임을 묻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피해학생은 숨을 곳도 도움을 청할 곳도 없다. 피해학생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부모에게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하거나(살려달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주변을 정리하고 높은 옥상에 올라가 해가 지는 지평선을 마지막으로 아래로 쓰러지는 것뿐이다.
5.
일부 피해자 부모들이 가해학생을 찾아가 사적 복수를 하는 기사를 봤다. 이런 사적 복수가 행해지는 것은 지금의 학교폭력예방법이 미온적이고 제한적이어서 피해자가 만족할 수 있는 가해자 처벌이나 사과가 이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현재 법이 피해자의 회복보다는 가해자의 구제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지적한다. 학교폭력에 따른 물리적 및 법적 행사와 실재적인 제재와 처벌이 제한적인 탓이다. 가해학생은 이를 알고 더 대담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학생기록부에 학교폭력 기록에 대한 영구 보존은 퇴학(9호)만 해당된다. 1호~8호의 처분은 졸업과 동시에 사라지거나 졸업 2년 후에 삭제가 원칙이다. 이마저도 심의위원회에서 의결을 거치면 졸업과 동시에 삭제가 가능하다. 여기에 집행정지를 통한 처벌 지연으로 졸업이 가능하다면 의결 조차 할 필요가 없어진다. 과연 누가 이것을 처벌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누가 피해자의 상처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물론 가해학생의 처벌만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수년 전, 성인 폭력범죄를 능가하는 10대 청소년 범죄에 대해 대중과 여론은 소년법 나이 하향과 촉법제도 폐지 등을 요구했었다. 당시에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교 교수는 나이를 기준으로 처벌 정도를 따지는 것이 능사가 아니며 청소년 범죄 엄벌만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말했다. 이에 나도 동의한다. 하지만 청소년 범죄의 내용과 수준이 어른을 능가할 정도임에도 교화에 더 무게중심을 두는 것은 온당하지 궁금하다. 그것으로 청소년 범죄가 줄어들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나와 같은 평범한 부모가 보더라도 균형적이지 않다. 사실 나는 교화와 처벌만큼이나 예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니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을 행사하였을 경우에 어떤 법적/사회적 책임이 따르고 어떤 물리적/실재적 결과가 오는지 스스로 체감하게 하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핀란드에서는 키바 코울루(KiVa Koulu)라는 학교폭력 예방프로그램이 있다.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학생들은 따돌림을 주도하는 학생들,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들 그리고 그것을 목격하는 학생들로 나뉘어 역할극을 한다. 역할극이 끝나면 서로의 입장과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선생님은 이 과정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학생을 돕기 위한 행동을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핀란드를 이 교육을 통해 학교폭력 건수를 대폭 줄일 수 있었다.
한국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정부 주도로 일선 학교에 도입한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그저 수년 전에 서울 삼성초등학교에서 학교폭력 예방교육의 일환으로 역할극을 했다거나 서울 중구 주도로 관내 초등학교 5학년 및 부모를 대상으로 심리극 '내 마음을 아니'를 공연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봤을 뿐이다.
마무리
부모가 아이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고 비효율적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아이의 학교폭력을 인지할 수 있을까? 물론 책에서는 학교폭력을 의심할 수 있는 자녀의 문제 행동 몇 가지를 열거해 두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결국 아이의 학교폭력 인지는 부모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아이의 용기와 선택에 달린 것이다. 즉, 아이가 말해주지 않으면 부모는 알 수가 없다. 그렇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있는 일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아이가 언제든지 마음 편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부모가 아이에게 든든하고 넓은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다. 아이가 언제라도 부모에게 자신과 주변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이를 위해서 아이와 몇 가지를 약속하고 실행 중이다. 첫째, 집에서 절대 큰소리 내지 않기. 둘째, 정해진 시간에 핸드폰 하지 않기. 셋째, 저녁 시간에 서로가 하루 있었던 일 이야기 하기 등이다. 작다면 작은 것이지만 시작하기에는 쉽고 충분한 것 같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부모라면 학교폭력 발생 시 진행 절차, 대응 방법, 아이 보호 및 여러 사례 등이 담긴 이 책을 읽어보기 바란다. 두 책의 저자는 모두 변호사이다. 직업 때문에 문장이 재미가 없을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호진 저자는 무뚝뚝하지만 정갈한 문장이었고 노윤호 저자는 다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었다. 이런 차이는 읽은 내내 소소한 재미를 주기도 했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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