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opmage Apr 22. 2023

계속되는 음주운전, 이제 행동할 때

1

 경찰청 홈페이지의 '음주운전 교통사고 현황'과 '음주운전 단속현황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년간 음주운전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는 감소하고 있다. 사고 건수와 사망 수가 가장 높았던 2003년과 비교하면 2021년 사고 건수는 52%가 사망 수는 81%가 감소했다. 음주운전 단속현황도 감소했다. 2021년 건수는 2017년에 비해 약 50% 가까이 줄었다. 이러한 추세를 보면 비록 오래 걸리긴 했지만 세상이 점점 안전하게 변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충분한 것일까? 곰곰이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음주운전 처벌 양형기준이 강화되고 대중의 인식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다. 아마도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많은 무고한 피해자들의 희생이 있었다는 생각 때문인 것 같다. 모두 당할 이유가 없는 억울한 사망과 부상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2018년 해운대 미포오거리 교차로의 횡단보도에서 음주운전 사고를 당해 운명하신 윤창호 님이나 최근 대구 서구 둔산동에서 인도를 걸어가다가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사망한 배승아 양이 그러하다. 이런 비극적 사건이 나와 내 가족에 언제라도 닥칠 일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출처: 경찰청 홈페이지 경찰 통계>


2.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하기 전에 음주운전 사고는 종이신문 사회면 토막 한 편에 건조한 텍스트로 사람들에게 읽혔지만 지금은 생생한 영상으로 사람들에게 퍼져 나간다. 정제된 기사와 다르게 생생한 사고의 전말을 두 눈으로 목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음주운전 가해자의 뻔뻔한 태도와 무고한 피해자 사망이 대비되는 사고인 경우 대중의 분노는 들불 번지듯이 퍼져나간다. 그리되면 정부와 검경은 대중의 분노를 사그러뜨리기 위해 음주운전 양형기준을 재논의하고 불특정 시점의 단속을 반복적으로 나선다. 이러한 처벌과 단속 강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필요하다. 하지만 사후적인 조치에 불가하며 지속가능하지 않다. 그보다는 음주운전 자체를 근본적으로 막는 예방조치가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최근 언론에서 소개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가 그것이다. 사실 서구는 이미 시동잠금장치 법안을 채택하고 적용하고 있다. 미국은 25개 주(主)에서 모든 음주운전자에 대해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그 밖에 주는 판사의 재량에 따라 설치를 정한다. 뉴욕주의 경우 사고 발생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농도 이상의 음주운전이 적발되면 의무적으로 설치를 해야 한다. 덕분에 미국은 음주운전 사망자가 19% 줄었고 재범 방지 효과도 최대 70%까지 늘었다고 조사되었다. 캐나다도 적용하고 있다. 온타리오 주를 포함한 11개 주와 준주에서 시행하고 있는데 온타리오 주는 1차 위반자에게 12개월, 2차 위반자에게 36개월, 3차 위반자에게 평생 시동잠금장치를 장착하도록 하고 있다. 유럽도 음주운전자의 유죄가 확정되면 운전 금지 조치 또는 시동잠금장치 설치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한국 국회에서도 상습적인 음주운전 사고를 줄이는데 처벌과 단속이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도입을 위한 관련 법을 2009년에 개정 발의한 적이 있다. 하지만 14년째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제18, 19, 20, 21대 국회에서 매년 발의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한 것이다.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크게 네 가지가 있다.


첫째, 설치 비용(250만 원) 부담 주체 논란.

둘째, 대리 측정 가능성 또는 다른 차량을 통한 음주운전 가능성

셋째, 가족 공용차 사용 불편

넷째, 시동잠금장치 상용화를 위한 협의 및 사전준비 부족

<출처: 유튜브 화면 캡처 - 동아일보>

도입에 따른 비용, 준비 수준 및 부정사용 가능성을 보면 법안 통과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논의만 하고 어떠한 단계적 실행도 하지 않은 채 14년 동안 계류만 되고 있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상기 언급한 문제점에 대해 국회입법조사처가 2017년에 발간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 도입을 위한 현황과 과제'에 따르면 관련 대안을 제시함과 동시에 시범실시 등의 단계적 사업 운영을 통해 문제점을 보완하고 개선해 나가자고 제안하고 있다. 즉, 말만 하지 말고 일단 행동하고 고쳐나가자는 것이다. 하지만 발간한 지 6년이 지났지만 크게 눈에 띄게 변한 것은 없는 듯하다.



3.

미국 Alcohol Health Alliance(알코올 건강 연합)에서 던디대학교 안드레아 교수, 스털링 대학의 이자벨 교수와 니암 교수가 공동 집필한 자료에 따르면 알코올 문제와 정신 건강 문제를 함께 경험하는 사람은 심각한 음주운전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욱이 이들 연구의 참가자 중 일부는 음주운전을 유발하는 정신 건강 문제를 발견했다고 말하며 이 연구를 통해 알코올 문제, 정신 건강 문제 그리고 음주 운전 사이에 분명한 연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The Foundation for Advancing Alcohol Responsibility의 홈페이지 자료에 따르면 음주운전 관련 정신 건강 문제는 우울증, 양극성 장애, 품행 장애, 불안, 반사회적 인격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이 있다고 한다. 이 홈페이지에서는 상습적인 음주운전자에 대한 연구에서 45%가 평생 정신 건강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왔다. 즉, 음주운전은 알코올 문제와 정신 건강 문제를 떼놓고 해결할 수 없으며 이는 질병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홈페이지 캡처

국내에서도 이런 유사한 발언이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유상용 책임연구원을 인터뷰한 기사에 따르면 ‘상습 음주운전자들에 경각심이 약하다고 분석한다. 이들은 한번 사고를 냈어도 경각심이 크지 않아 또 사고를 낸다’고 한다. 또한 한양대학교 정신건강의학과  노성원 교수도 인터뷰 기사에서 ‘음주운전 세 번 연속 한 사람의 90%가 알코올 중독자라는 연구결과가 있으며, 단순히 반복되는 실수가 아니라 뇌 질환이 있다’고 말했다. 정리하면 상습적인 음주운전을 단순히 교통사고로 간주하지 말고 상습적인 음주운전자의 뇌질환 또는 정신 건강 문제로 식별하고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음주운전이 질병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연구 내용과 전문가의 발언을 고려할 때, 이러한 관점을 대중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즉 내가 주장하는 바는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사후적인 조치도 필요하지만 음주운전자의 정신 건강 문제의 식별과 치료에 집중한다면 자연스럽게 음주운전 사고도 줄고 인식도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4.

음주운전 가해자가 피해자 또는 피해자 가족을 찾아와 사과하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그보다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공탁금을 법원에 걸고 합의를 시도하는 연락만 하며 반성문을 쓴다는 이야기만 들었다. 가해자는 판사에게 용서와 선처를 구한다. 피해자와 그의 가족들은 가해자로부터 진심 어린 사죄의 한마디를 듣지 못했는데 마지못해 경제적인 이유로 합의를 해주는 경우가 있다. 형사소송 이외에 민사소송으로 피해보상을 진행할 수 있지만 비용과 시간을 너무 많이 소요되기에 감히 쉽게 할 수 없다. 그렇게 형사합의가 되면 가해자의 감형에 영향을 준다. 그렇게 판사가 판결을 내리면 피해자는 그 어떠한 위로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도 가해자들은 감형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행정심판을 사랑하는 모임'이란 인터넷 카페에서는 음주운전 횟수 및 유형별 대처요령, 반성문 샘플, 처벌 감형 노하우 및 행정심판 후기 등을 서로가 공유한다. 회원 수가 8만 명이나 되는 이런 인터넷 카페가 있다는 것을 피해자들이 알게 된다면 어떠한 표정을 지을까? 만약 음주운전 사고로 경제적 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던 가장이 사망했다면 해당 가족의 생계가 당장에 막막해진다. 그런 피해자 가족 입장에서 가해자의 이기적 행동과 법원의 낮은 양형은 피해자 또는 남은 가족들에게 위로가 되지 못할 것이다.

www.ksdk.com 기사 캡처

미국 테네시 주에 사는 세실리아 윌리엄스는 그녀의 아들과 며느리가 음주운전 사고로 사망하자 미국 전역을 돌면서 '이든, 헤일리, 벤틀리 법' 입법운동을 벌인다. 죽은 아들 부부의 남은 자녀들의 이름을 붙여서 불려지는 이법은 가해자의 음주운전으로 사망한 피해자에게 미성년 자녀가 있을 경우, 그 자녀가 18세가 되거나 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양육비를 지급하도록 한다. 이 법은 이제 테네시 주뿐만 아니라 미국 20여 개 주에서도 법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세실리아는 이 법의 취지가 경제적 지원도 있지만 음주운전 가해가자가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도 모 정치인이 이번 국회에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을 발의했다고 한다. 해당 개정안은 벤틀리법과 유사한데 만약 가해자가 피해자 유가족에게 지급을 거부할 경우 법원이 나서서 가압류를 걸고 강제집행에 나서도록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만큼 빨리 통과되기를 바란다. 현재 국내에서 피해자 유가족을 지원하는 법률은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0조 제3항에 따른 지원 밖에 없다. 이것도 대상이 기초수급자 또는 차상위 계층으로 제한되며 지원금도 최대 월 7만 원 수준이다.


5.

무기력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열심히 가족을 부양하는 가장이, 새벽 출근을 하는 청년이 음주운전 차량에 쓰러지는 소식을 들을 때 그렇게 답답했다. 화가 났고 슬펐다.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로 고개를 푹 숙이면서 사진 촬영을 피하려는 가해자가 원망스럽고 억울하게 가족 품을 떠난 피해자가 불쌍했다. 연이어 보도되는 음주운전 사망사고 소식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 무력감이 이 글을 쓰게 된 동인이 되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인식을 높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비극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라는 동인 말이다. 앞서 소개한 세 가지 나의 생각과 제안이 세상을 바꾸는 것은 아닐 테지만 적어도 몇몇 사람의 인식을 바꾸는데 어느 정도 영향을 주기만 한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끝-


※ 글과 사진은 동의를 받지 않고 상업적인 용도 사용 및 무단 게시/편집하는 경우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 저작권법 제28조(공표된 저작물의 인용)에 따라 공표된 저작물은 보도, 비평, 교육, 연구 등을 위하여는 정당한 범위 안에 공정한 관행에 합치되게 이를 인용할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일 정상회담: 준 만큼도 못받을 것 같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