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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겸 Aug 30. 2024

바삭바삭 햇볕 아래, 소소한 여름 나기

더워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1.

 이번 여름 더위는 혹독했다. 정말 까딱하다가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다. 밖을 나오면 숨부터 턱 막혔다. 열기가 솟구치는 아스팔트는 마치 용광로 같았다. 눅눅한 습기를 먹은 더위가 내 멱살을 잡아채는 것 같다. 조금을 걸어도 머리에 맺힌 땀이 뒷목을 타고 내려가 등을  적셨다. 살갗이 따끔거리기만 했던 마른 더위는 살을 짓누르는 습한 더위에게 여름의 자리를 빼앗긴 지 오래다. 퇴근길에 버스 정류소에 가니 마른 체구의 할아버지가 버스정류소 외벽이 내어준 그늘 속에 땡볕을 피하고 계셨다. 노인의 푹 숙인 고개 아래에서 들숨과 날숨이 번갈아 버거워하고 있었다. 다행히 버스가 왔다. 버스의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할아버지를 반겼다. 그는 빈 좌석에 털썩 앉으며 ‘이제 좀 살겠다’는 식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마음이 조금 복잡해졌다. ‘나도 늙으면 언젠가…’라는 생각을 어쩌지 못한 탓이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를 통해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염려하는 인간의 안 좋은 습관은 나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 같았다. 버스 정류소에 내려 사거리 그늘막에 들어섰다. 사실 그늘막은 신박한 발명품이다. 이만한 소셜 믹스를 제공하는 장치도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기 전에 강한 햇빛이나 요란하게 퍼붓는 소낙비를 피하려고 사람들은 이 작은 원 안에 몰려든다. 물리적 간격이 어깨를 스칠 만큼 가까워져도 불쾌해하는 사람은 없다. 신호등이 녹색불로 바뀌는 순간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간격을 벌린 채 뿔뿔이 흩어진다. 그런 모습을 보고 나면 사거리 그늘막이 ‘초단기 사교 장소’ 같은 기분이 든다.

 


2.

 아이와 동네 산책을 하는 중에 벽에 매달린 현수막 광고를 봤다.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이틀 동안 야시장과 야외 물놀이장을 개장한단다. 아이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광대가 한껏 차올랐다. 작년 이맘때 친구들과 신나게 물놀이하고 야시장에서 맛있는 간식을 함께 먹었던 기억에 기대가 부푼 것이었다. 하지만 아이가 미쳐 보지 못한 것이 있었다. 물놀이장 이용은 해당 입주민 자녀만 가능했다. 기대가 더 부풀어 오르기 전에 사실대로 말해줬더니 입술이 크게 삐죽 나왔다. 그 모습에 웃음이 났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각박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태껏 우리 단지에서 물놀이장을 개장하면 이웃 단지의 아이들을 단 한 번도 막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물놀이장에 가는 아이의 친구를 우연히 마주쳤다. 아이가 친구에게 못 가는 사정을 설명을 했지만 친구는 엄마가 가도 된다고 했단다. 나도 아이에게 ‘우리도 일단 가볼까’ 했지만 가기 싫단다. 이미 속은 것 같아서 싫고 속이고 싶지도 않단다.  삐죽 나온 입이 더 삐죽 나와 정말 삐죽 이가 되었다.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구청에서 새롭게 리모델링한 공공 물놀이장에 가기로 했다. 아이의 입꼬리가 다시 하늘로 올랐다. 차를 20분 몰아 도착하니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이를 먼저 물놀이장에 보내고 나무 그늘이 있는 야트막한 잔디 언덕에 돗자리를 펴고 앉았다. 언덕을 향해 간헐적으로 불어오는 바람과 물놀이장 바닥에서 리듬에 맞게 솟구치는 물줄기를 보면서 나도 더위를 조금씩 잊어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 앞에 검은 그림자가 시야를 가로막았다. “OO엄마~! 어디야? 빨리 와. 지금 여기 명당 한 자리를 내가 맡아두었어.” 오른손으로 아이폰을 귀에 댄 채 왼손을 크게 흔들며 일행을 향해 소리치는 그녀는 내 시야를 가리고 있었다. 3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그녀들과 아이들이 대형 돗자리를 내 바로 뒤에 펼쳤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그 자리는 명당이라고 할 수가 없었다. 일단 그들 모두가 편히 앉기에는 공간이 협소했다. 게다가 경사가 있는 편이라 물건을 편히 놓기가 쉽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그늘이 충분하지 못했고 햇볕에 달궈진 철제 펜스의 열기를 그대로 감내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나와 손바닥 한 뼘 간격을 두고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수다를 이어갔다. 그런데 한 십여분 지났을까? 그녀들은 갑자기 요란스럽게 돗자리를 거둬 다른 곳으로 옮겼다. 돗자리 위를 종행무진하는 검은 큰 개미가 불결하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진짜 이유는 눈치 없는 나였다. 그녀들 중 한 명이 내게 들으라는 듯 불평을 했다. ‘정말 눈치가 없는 것 같아요. 혼자 왔으면 자리를 좀 양보를 해야지.’ 도대체 이 야트막한 잔디 언덕에서 내게 무엇을 바랐던 걸까? 새삼 검은 큰 개미들이 고마워서 과자 부스러기를 머리 위로 좀 뿌려주었다.


3.

겹겹이 포개진 나뭇잎 틈 사이로 유유히 쏟아지는 햇살 아래에서 우리 가족은 차디 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있었다. 녹음이 울창한 깊은 산골에서 내려오는 골바람에 등줄기가 시원했다. 계곡 바위에 부딪힌 물거품이 물보라를 일으켰다. 아이는 그곳에 서서 거칠게 휘감고 내려가는 물결에 종아리가 간지러워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 아이가 풍화로 매끈하게 다듬어진 조약돌을 줍고 그중에 못난 돌을 골라서 건너편 엄마 앞에 퐁당 던졌다. 엄마는 놀라서 웃고 아이는 그 모습에 다시 또 웃었다. 역시 무채색의 인공물 보다 천연색을 가진 자연물에서 사람은 더 밝고 더 행복해지는 것 같다. 온통 직선과 대칭으로 세워진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점령당한 도시에서의 물놀이보다는 곡선과 우연성이 만들어낸 울창한 녹음의 그라이데션 아래에서 물장구를 치는 것이 인간에게 더 편안함을 준다. 그저 보고 있는 것 만으로 마음이 포근해지는 것이다. 문득 어렸을 적이 생각났다. 내가 어렸을 때 피서는 계곡이나 얕은 강하구였다. 어른들이 너른 곳에 자리를 잡으면 나와 사촌들은 신나게 물장구치고 반두(막대기 그물)로 물고기 잡고 손으로 올갱이(다슬기)를 잡았다. 그러면 어른들은 큰 솥을 가져와 닭백숙을 끓였다. (혹은 밤낚시를 가시는 아버지를 따라간 저수지에 둥둥 떠다니는 찌와 달을 보며 더위를 식히고 했다). 물론 지금은 그럴 수도 없고 그렇게 하면 안 된다. 대신 요즘에는 계곡 주변의 음식점에서 평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닭백숙을 판다. 그런데 닭백숙 앞에 조금 토속적인 단어가 붙으면 가격이 올라가는 놀라운 일이 생긴다. 토종, 원조, 영양 같은 단어들 말이다. 계곡에 점점 사람들이 몰려 붐비기 시작했다. 한참을 즐긴 우리는 다음 사람들을 위해 양보하고 계곡을 빠져나왔다. 나오는 길목에 앉아서 컵라면을 젓가락 한 개로 나눠먹는 청춘 커플과 눈이 마주쳤다. 둘이서 함께라면 무엇을 먹어도 맛있을 때지. 덕분에 우리도 배가 고파졌다. 차에 들려서 짐을 정리하고 주차장 아래 토속 식당에서 두부전골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주차장 입구부터 싸움소리가 들렸다. 젊은 남자가 주차금지 시설물을 한 켠으로 치우고 몰래 주차하다가 주차요원과 시비가 붙은 거였다. 헬스로 다부진 상체와 구릿빛 피부의 사내는 선글라스로 눈빛을 감춘 채 장년의 주차요원과 옥신각신 했다. 결국 제 성에 못 이긴 남자는 욕을 하다가 결국에 경찰에 전화까지 하고 말았고 보다 못한 다른 관리소 직원들이 나와서 말렸다. 그 모습을 보고 얼어버린 아이를 차에 서둘러 태웠는데 그걸 본 관리직원 한분이 다가와 차를 빼달라고 하셨다. 아마도 우리가 떠나는 줄 알았나 보다. 그래서 얼떨결에 차를 몰아 주차장을 나왔다. 내가 양보한 그 주차 자리는 그 구릿빛 젊은 남자의 차지가 될 터였다.



4.

 이런 무더위에 몸살을 겪는 건 사람만이 아니었다. 나는 여행 중에 내 차는 보닛 위로 하염없이 쏟아지는 태양열과 뜨거운 엔진 열기에 갇힌 탓에 에어컨 송풍구에서 시원한 바람을 내보낼 수가 없었다. 마트에서 파는 밀키트도 신선해 보이는 포장 사진과는 달리 뜯어보니 야채가 상해 숨이 죽어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약간 더위를 먹은 채 돌아왔다. 교실에서 에어컨을 틀어주지 못했단다. 아마 실외기도 더위를 먹어 작동을 못한 것 같았다. 아이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고 윗머리가 뜨거웠다. 얼른 시원한 냉수를 먹이고 얼음주머니를 만들어 머리 위에 올려 식혀주었다. 하긴 얼마 전에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실외기 화재가 있었다. 뜨거운 열을 감당하지 못한 실외기에서 시뻘건 불이 난 것이었다. 한 낮임에도 또렷하게 보이는 거센 불길이었다. 여러 대의 소방차와  경찰차가 즉시 출동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화재 대피 방송을 들을 주민들은 급히 밖으로 대피해 화재가 난 곳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올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소방관님들이 불이 난 세대에 진입해 거침없이 물을 뿌리며 불길을 잡아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들 입에서 안도의 탄성이 흘러나왔다. 화재의 잔상으로 남은 검은 그을림이 옥상까지 번졌다. 그 후에 동네 커뮤니티에서는 화재 원인과 대처에 대한 갑론을박이 있었고 어떤 입주민은 관리사무소에게 공개사과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실관계가 밝혀지자 사과 없이 글을 슬그머니 삭제했다. 그리고 한동안 관리사무소에서는 실외기 공간에 다른 짐을 적재하지 말고 루바를 항상 올려 달라는 방송을 아침저녁으로 나왔다.


5.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더운 열대야가 밤을 지배할 것이라는 예보와는 달리 요사이 저녁에 시원한 바람이 예고 없이 불기 시작했다. 가을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산뜻한 바람이었다. 한편 뉴스에서는 기상학자가 출연해 기후위기 때문에 올해보다 내년 기온이 더 오를 수밖에 없다고 담담히 역설하고 있었다. 올해 여름에 상당히 지쳤던 나는 내년 여름이 걱정되었다. 하지만 여름옷을 미리 준비하고 에어컨을 청소하는 것 이외에 내가 딱히 내년 여름을 준비할 수 있는 것은 생각나지 않았다. 어쩌면 견디는 힘을 키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땡볕 아래에 장시간 노출되어도 쓰러지지 않을 체력 말이다. 그리고 내가 견디는 것 이외에 할 수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기후위기가 당장 해결될 수 있는 재난이 아니어서다. 기후위기를 해소하려면 에너지 효율을 높이거나 절대적인 활동량을 줄여서 탄소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하면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이 제약을 받아 인간의 삶의 질이 상당히 떨어질 것이 다분하다.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전 세계 사람들이 함께 들고일어나 정치인이나 정책입안자들에게 뭔가 강력한 대책을 세워 실행할 것을 요구하는 상상을 해보지만 이 또한 당장 실현가능한 일도 아님을 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것도 성에 차는 일은 아니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기로 했다. 절약하고, 절전하고, 걸어 다니고, 욕심내지 않고, 못 가졌다고 불평하지 않기 등 뭐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것들이 크게 지구에 도움이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니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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