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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방울 Aug 27. 2022

04 다르고도 같은 쌍둥이의 행로

 

나에겐 쌍둥이 자매가 있다. 쌍둥이로 태어나면 평생 비교당하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사람들이 우리 둘을 비교하면 화가 나는데, 정작 우리 자신도 늘 비교를 일삼는다. 어찌 안 그럴 수 있겠는가?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같은 날 태어난 사람이 항상 곁에 있는데. 그를 들먹이지 않고 나를 설명하려면 어딘가 미흡한 것 같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비추어본다면, 나의 쌍둥이 자매 H와 나의 삶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H는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나는 1등을 안 놓친 적이 없다. 

H의 친구는 책이었고, 나는 친구들이 책이었다. 

H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수제비였고 나는 유일하게 안 좋아하는 음식이 수제비였다. 

H는 고등학교 때 불어에 인생을 걸기로 작정했고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이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대학에서 불어를 전공하고 동시통역대학원을 졸업하고 통번역학 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었다. 

반면 나는 사서가 되고 싶어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지만 졸업 후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가  번역가가 되고 싶어 20대 후반에 번역 일을 시작했다. 


전반적으로 H는 올곧게 자기 길을 간 것처럼 보이고, 나는 좀 기웃거리고 서성거리다가 뒤늦게 마음을 잡고 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아마 그게 사실일 것이다.           

큰 테두리에서 보면 나도 ‘범생이’의 범주를 크게 벗어난 적이 없다고 자부하는데, H와 비교되는 순간 나는 곧장 ‘날라리’로 추락한다. 분명히 말하는데, 쌍둥이가 아니었다면 내가  ‘날라리’로 분류되는 일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볼 수도 있지 않을까.           

H와 나는 둘 다 각자의 방식으로 늘 무언가를 ‘배웠’다. 

H와 나는 둘 다 이국의 문화를 동경했다. 

H와 나는 둘 다 말과 글과 언어에 민감했고 또 좋아했다. 

H와 나는 늘 책을 가까이했다. H는 주로 종이책을, 나는 주로 인간 책을.          


살아오면서 우리 쌍둥이가 했던 수많은 선택들 중 절대적으로 옳았던 선택도, 절대적으로 틀렸던 선택도 없었다. 우리 둘은 삶의 매 순간 다른 선택을 했지만 모든 선택들이 각자에게 좋았다. 또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 비록 어느 한 시기에는 그가 더 옳아보였고, 또 어느 한 시기에는 내가 더 옳아 보였지만, 그런 생각이나 상태가 오래 지속되진 않았다.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H가 있었기에 나는 홀로 태어난 사람들보다는 늘 나 자신의 상황이나 성향을 날카롭게 인지했다. 나는 늘 그를 보면서 나를 보았다. H는 내 삶의 수많은 ‘만약에 What If’ 중 한 가지를 실현했다. 그것도 아주 멋지게.      

나 역시 그에게, 고등학교 때부터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간 학자의 삶이 아닌, 여기저기 두리번거리다가 무엇 하나 포기하지 못하고 결혼하고 살림하고 두 아이 키우며 번역하는 주부이자 아내이자 엄마로서의 삶을 멋지게 보여주었길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쌍둥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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