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 문득 내가 하는 일을 거꾸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게 아니라 한국어를 영어로 옮겨보고 싶었다. 배울 곳을 찾다가 ‘한국문학번역원’이라는 곳을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2년 동안 한국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하는 실습을 했다.
한국인이면서 외국어에 능통한 사람들과 외국인이면서 한국어에 능통한 사람들이 모여 언어로 반을 구분한 다음, 한국 문학을 각자의 언어로 번역했다. 내가 속한 영어반에서도 매 학기 한국 소설 한 권을 선정해서 과제로 주어진 분량을 각자 영문으로 번역했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이 차례로 자신의 번역문을 화이트보드에 띄워놓고 발표했다. 교수님을 포함한 수강생들이 발표자의 번역문을 놓고 토론하거나 평가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그 수업에서 가장 놀라웠던 점은 학생들이 원문의 텍스트를 얼마나 다르게 읽고 느끼고 번역하는가였다. 지극히 단순한 문장조차 번역은 거의 다 달랐다. 똑같은 번역이 나오면 오히려 반가울 정도였다. 예를 들면, 한국 소설의 원문에서 ‘정적.’이라는 한 단어로 이루어진 문장을 학생들은 이렇게 번역했다.
‘Silence.’
‘Absolute silence.’
‘It was very quiet.’
‘Everybody was quiet.’
‘Everything went quiet.
소설의 흐름 속에서 ‘정적’이라는 말을 어떻게 읽고 느꼈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번역을 내놓았다. 불완전한 문장은 불완전한 문장으로 옮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고, ‘정적’이라는 말이 주는 절대 고요의 의미를 담기 위해 앞에 수식어를 붙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학생도 있었다. 소설 전체의 흐름상 완전한 문장으로 번역하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고, ‘조용한’ 것을 사람으로 보는지, 아니면 주변 환경으로 보는지에 따라서도 번역이 갈렸다. 수업 시간에 모두가 합의하는 ‘가장 좋은 번역’이라는 게 있을 때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많았다.
학생들 모두가 두 언어에 능통했지만, 두 언어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이 서 있는지에 따라 번역이 달라졌다. 그 외에도 번역자가 작품을 감성적으로 이해하는지 정보 중심으로 이해하는지, 또 번역자가 원문을 얼마나 신성한 것으로 여기는지, 번역의 영역을 어디까지로 보는지, 심지어 번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서도 번역이 갈렸다. 이미 오랜 기간 번역 일을 했던 나였지만 처음으로 번역의 의미와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했던 시간이었다.
그 무렵 <위대한 개츠비>가 김영하 작가의 번역으로 출간되었는데, 그의 번역이 찬사와 공격을 동시에 받는 바람에 수강생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었다. 김영하 작가는 책의 후기에서도 밝혔듯이, 서점에 갔다가 <위대한 개츠비>가 ‘졸라’ 재미없다는 고등학생들의 말을 듣고 이토록 재미있는 작품이 재미있게 읽히지 않는 현실이 안타까워 본인이 직접 번역에 나섰다. 원로 번역가들은 그의 번역이 너무 자유분방하고 자의적이어서 제대로 된 번역이 아니라고 비판했지만 독자들은 그가 새로 번역한 <위대한 개츠비>에 열광했다. <위대한 개츠비>가 이렇게 재미있는 소설이었던가?’라는 후기가 제법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문학번역원에서는 분기별로 유명 작가를 초빙하여 수강생들이 특강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나는 질의응답 시간에 평소에 꼭 하고 싶었던 질문을 했다. 나는 강사로 초빙된 유명 작가에게, 만약 어떤 번역가가 작가님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한다면, 자율성을 갖고 아름답게 번역하길 원하는지, 아니면 조금 거칠더라도 원문을 토씨 하나 빼놓지 않고 충실하게 번역하길 원하는지 질문했다. 작가는 참 어려운 질문이라며 한참을 고민하더니 둘 중 한 가지를 골라야 한다면 자율적으로 아름답게 번역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정적’이라는 한 단어조차 이렇게 다양하게 번역될 수 있다면, 현존하는 최고의 영미 소설이라 일컬어지는 <위대한 개츠비>가 번역에 따라 재미있는 소설이 될 수도 있고 ‘졸라’ 재미없는 소설이 될 수도 있다면, 번역가의 역량은 얼마나 중요한가. 단지 두 언어 사이에 다리를 놓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면, ‘번역당하는’ 작품과 작가의 입장에서는 번역가는 로마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자다. 오역과 작품 살해라는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는 권력자 말이다.
2년에 걸친 나의 야심찬 일탈이자 도전은 공모전에서 2번 탈락한 것으로 일단락되었지만, 내가 번역했고 또 앞으로 하게 될 모든 소설들이 다른 번역자를 만났더라면 얼마나 다르게 번역되고 또 읽혔을지 체감했던 것만으로도 엄청난 수확이었다. 늘 눈을 감고 다니던 길을 눈을 뜨고 천천히 음미하며 거닐어본 기분이랄까.
비록 현실 속에서 알아주는 이가 많지 않아도 한 작품을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으로 번역한다는 건 분명 엄청난 권력이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내가 가진 어마어마한 권력을 음미하며 조용히 웃는다.
그리고 부디 내가 작품을 살리는 번역가이기를, 나도 모르는 사이 작품의 숨통을 끊어놓는 것으로 나의 소중한 권력을 남용하거나 악용하는 사람이 아니기를 간절히, 아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