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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ai Jun 02. 2023

나의 무늬

나의 20대에게, 서른이 넘은 미래가 보내는 선물

논문 주제를 잡는다는 건 참 별 일이다.

인터넷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정보를 뒤지는 동시에 내 머릿속도 샅샅이 뒤져보게 만든다.

여행도 이런 여행이 또 있을까. 내가 앉아있는 세계와 다른 세계 모두를 미친 듯이 헤맨다.


그렇게 한참의 편력 후에 결국 뭔가를 발견했다. 내 머릿속에서도, 정보의 바닷속에서도 반짝반짝 내 눈에만 빛나는 저건, 8년 전 이맘때에 정했던 내 졸전 주제였다.

스물네 살의 나는 마음의 소리를 외부의 정보들과 한없이 응축하고, 몇 번이나 거르고 걸러서 주제로 발굴을 했었다. 그러나 뿌듯함은 길지 못했다. 원대한 나만의 프로젝트보다는 취업이 먼저였고, 결국 괜찮은 아이디어는 조악한 모형 몇 개, 조악한 몇 장의 포스터로 존재의 가치를 다 해버렸다. 그리고 학교를 다닌 시간보다 긴 시간 동안 일을 하면서 내 기억 속에 새하얗게 바스러져 풍화되어 버린, 마음의 소리였을 뿐이다.



나에게 졸업 전시는 정말 특별한 일이었다.

소수였던 비실기 전형 출신에 하고자 했던 게 명확했던 나는 어딜 가도 설명할 일이 많이 생겼고, 크고 작은 차별에 대학 초반은 적응 자체가 목표였다. 심지어 비슷한 출신의 가까웠던 친구 몇은 자퇴 후 다른 학교로 가기도 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너무나 길기 때문에 언젠가 따로 써 보기로 한다.)

그래도 나는 남았다. 반은 희망이었고 반은 오기였다. 내가 선택했으니 어떻게든 내 길을 발굴하고 싶었다. 그래서 더 열심히 더 늦게까지 그렸다. 그것도 부족하면 내가 잘하는 생각을 더 했다. 그러자 학년이 오를수록 주변의 평가도 바뀌었다. 교수님들 중에는 제법 칭찬을 해주시는 분들도 생겼다.

졸업 전시는 이런 내 극복기이자, 내 선택에 대한 증거였다. 그래서 정말 소중했다. 그렇게 해낸 나의 졸업 작품은 나의 대학 생활을 마무리하는 징표이고, 나의 지난 시간에 대한 표상이었다.



다시 논문 주제로 돌아오면, 결국 이번에도 내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때와 같다. 꽤나 시간이 흐른 지금 여전히 이 주제에 동공과 뇌 곳곳이 반응하는 걸 보면 이것은 변하지 않을 나의 관심사이며, 인생동안 연구할 나의 주제라는 걸 더 많아진 나이만큼 확신한다. 나의 첫 학위 주제를 선정할 때에 그때의 나이만큼의 확신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최근에 SNS에서 판다의 무늬가 태어난 지 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짙어지는 것을 보았다.

우리가 익히 아는 미운오리새끼도 백조라는 것을 알기까지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우리의 정체성을 아는 것에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다시 나를 들여다볼 때, 나만이 갖고 있는 무늬를 볼 수 있는 것. 이게 나이가 주는 혜택이고 선물인 것 같다. 그래서 인생을 산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


이제 나는 다시 궁금하다. 지금 가진 이 무늬가 더 짙어질지, 아니면 다른 무늬로 변화할지, 어쩌면 10년쯤 뒤에는 또 다른 모습이 되어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졸전의 일부. 언젠가는 실제로 만들고 싶은 공간이다.



덧붙임.

아직 논문 계획서 완성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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