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지 못해서(1)

몸이 아파서, 어렵다고 말했더라면

by 영쓰

밤새 야근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아파도 약을 먹으며 참고 일한 적이 몇 번 있었다.


가장 큰 사건은 몇 달 전 여름.

원인은 모르겠으나,

잦은 설사와 복통으로 한 시간에 한 번씩.

아니, 한 시간에 세 번씩도 화장실에 갔다.

새벽에도 배가 꾸르륵거려 자다깨다 반복.


일이 한가했거나, 주말이었으면

먹을 것도 가려가며 푹 쉬었을텐데

하필이면 다음날 중요한 아이디어 회의가 있었다.


물론, 아픈 나를 대신해줄

든든한 팀원들이 있었으나

(나도 팀원이다)


우리 친애하는 팀원들에게

굳이 아프다고 핑계를 대고 싶진 않았고

아프다고 아이디어를 대충 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밤새 거실 테이블에 앉아

머리와 배를 움켜쥐며 일을 했다.

하지만 배가 아프니 아이디어가 잘 나올 턱이 있나!


잦은 복통에 지쳐 쓰려져있다가도

20분 뒤 일어나 다시 키보드를 치고

다시 깜빡 잠들었다가도

깜짝 놀라 아이디어 비주얼을 찾았다.


나중에 알았지만

모니터가 켜진 채 지쳐 쓰려져있는 나를 보곤

와이프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안쓰럽게 쳐다볼 수밖엔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다음날

아이디어 회의가 시작됐고,

몇 가지의 아이디어 중에 내 것도 포함이 됐다.


글쎄, 뿌듯하긴 했지만

후유증은 꽤나 오래갔다.


잦은 화장실 방문으로 인한 탈수증세,

평소엔 가기 싫어하는

병원까지 제 발로 찾아가 링거도 맞았다.


결국 남은 건

일을 끝마쳤다는 약간의 뿌듯함과

처방받은 2주치 약봉투.


와이프가 그러더라.

"너 밖에 일할 사람 없어?"

"아닌데..."


지금은 몇 달이 지난 일이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꼭 말하고 싶다.

"오늘은 몸이 너무 아파 어려울 것 같습니다. 다음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땐 이 말을 하기가 왜이렇게 어려웠을까?

우리 팀은 그렇게 야박한 사람들이 아닌데.


솔직하게 말했더라면, 조금 나았을 예전의 나에게

오늘에서야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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