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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트 Oct 07. 2022

왜 공시생이 되었죠?

나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셨다. 아버지는 아버지가 나고 자란 지역에서 정년까지 꽉 채워 퇴직을 하셨고 자연스럽게 자녀들에게도 권유했다. 대입을 준비하던 고등학생 시절부터 꼭 대학 안 가도 된다며 공무원이 되기를 권했고, 그 후 공무원과는 아예 다른 전공으로 공부를 하던 대학생 시절과 졸업 후 취업준비 시절에도 끊임없이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강추’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대기업 들어가서 돈 많이 벌고 많이 쓸 거야!’ 라며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런 내가 공무원 시험에 기웃거리게 된 건 반복되는 취업의 좌절 때문이었다. 나는 나름 대한민국에서 취직이 잘 된다고 하는 학과를 전공했다. ‘못해도’ 중견기업은 들어가겠지 하는 생각으로 마음 편히 내가 가고 싶은 회사만 몇몇 개 골라서 지원을 했다. 같은 과 선배들과 동기들도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 만한 회사에 취직을 했으니 당연히 나도 그들과 같은 선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최종 합격은 그렇게 당연히 찾아오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진실을 몰랐던 거다. 우리 학과 모든 졸업생들이 ‘모두가 알 만한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일부 성실하고 능력 있는 학생들만이 그런 회사에 취직할 수 있었던 것이었으며, 나는 그 일부에 속하지는 않았다는 진실.


1년 반 정도 되는 기간 동안 서류 탈락, 인적성 탈락, 1차 면접 탈락, 최종 면접 탈락 등 종류별로 탈락을 맛보고 난 후, 나는 나가떨어지고 말았다. 전문가를 통해 자소서 첨삭을 받아야 한다던가 인적성 문제집을 몇 권을 떼야한다던가 면접 코칭을 받아야 한다던가 하는 복잡다단한 채용시스템을 감당하는 일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나의 문제는 나의 아주, 작고, 귀여운, 회복력이었다. 서류 전형 - 인적성 검사 - 1차 면접 - (실무 면접) - 임원 면접, 대략 네다섯 단계를 매번 마음 졸이고 탈락을 확인하고 좌절하는 일에서 빠져나오는 데에 너무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했다. 이메일에서 불합격이라는 문구를 보면 심장이 지구 내핵까지 뚫고 들어가는 기분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그 후 무기력과 자기혐오, 자격지심, 수치심 등등… 떠올리기도 싫은 감정들의 연속.


회사는 학교와 달라서 교수님께 성적 확인 문의 메일을 보내듯 도대체 뭐 때문에 탈락한 거냐며 ‘탈락 확인 문의 메일’을 보내지 못한다. 한 번은 같이 면접에 들어간 6명의 지원자들 중에 내가 적어도 1, 2등은 할 것 같다는 느낌에 발표날만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었는데 보기 좋게 탈락한 적이 있다. 물론 같이 들어간 전원이 탈락한 것일 수도 있겠지만, 아마 내 답변이 그저 무난하고 정석적인 답변이라 떨어진 게 아닐까 싶다(이렇게 탈락 이유를 모르니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까지도 답답할 노릇인 것이다). 대학 동기 중 하나는 면접관으로부터 “우리 회사 떨어지면 뭐할 거예요?”라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나는 동기의 답변을 듣고 경악하며 속으로 ‘너 떨어지겠구나.’ 했다. 


동기의 답변: “ㅇㅇㅇ, ㅁㅁㅁ(같은 분야 다른 회사) 지원해놓은 거 있어서 그 회사들 면접 준비할 예정입니다.”


아니 다음 공채 시즌에 또 도전하겠다고, 지원한 회사에 충성하겠다고 말해야 하는 거 아닌가? 면접장에서 경쟁사 언급을 한다? 나는 당시에 저 답변으로는 결코 최종 합격까지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해 친구를 위로한답시고 ‘다음 면접 때는 조심하면 되지. 면접 준비 마저 하자.’ 라며 건방을 떨었는데… 동기의 결과는 최종 합격이었다! 입사 후 당시 면접관이었던 팀장님이 동기에게 말해주길, ‘우리 팀에 너랑 성격 똑같은 애 있는데 걔가 일을 잘하니 너도 일 잘하겠지 싶어서 뽑았다’는 것이 이유. 우리 회사 떨어지면 어떡할 거냐는 질문은 사실 그렇게 결정적인 질문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답변이 회사마다, 면접관마다 정답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아, 이 바닥은 내가 감당할 수 없어 보인다.’ 싶었다. 내가 공시를 고민하던 당시에는 공무원 채용은 면접 때 정말 미친 짓만 하지 않는다면 필기시험 성적순으로 합격한다는 말이 있었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사기업 면접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나는 차라리 정답이 있으면  덜 상처받겠다는 생각에 공무원 시험으로 눈을 돌렸다. 그러면서 동시에 합리화도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은 내가 공무원 되길 바라시니까, 나는 부모님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공무원 준비를 하는 거야. 도망만 가는 건 아니야.’


2018년 겨울 대부분의 사기업 공채 일정이 끝난 즈음, 그렇게 나는 공시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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