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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옹지마 Feb 01. 2023

이제 정말 퇴근하겠습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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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회의 글을 쓰고 나서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휴대폰의 벨소리가 울렸다.


같은 병원 보안팀장으로 일하고 있는 후배 A의 전화였다.


"팀장님, 통화 괜찮아요?"


"응, 괜찮아."


"오늘 저녁에 뭐 하세요?"


"응? 응... 뭐 특별한 거 없는데."


"그럼 저하고 B랑 소주 한잔 하실래요?"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나를 생각해 주는 후배의 마음이 고마워서 그러자고 했다.


잠시 후 카톡 알림이 울렸다


'팀장님, 황소집 어때요? 괜찮으면 5시 10분에 주차장 앞에서 만나요.'


황소집은 병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식당으로 곰장어와 돼지고기를 매운 양념구이와 소금구이 두 종류를 초벌 해서 내놓는 맛집 중의 하나다. 


식당 내부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쇠로 만든 테이블 이십여 개가  세 구획으로 나눠져 놓여 있고 수많은 단골들이 다녀갔음을 짐작할 수 있는 때 묻은 시멘트 바닥과 50명은 족히 넘을 연예인과 야구, 배구 프로선수들의 사인을 코팅한 것들이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직장인들이 퇴근 후 소주 한잔 기울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식당이었다.


황소집에 도착하니 홀 안에 손님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일하는 병원은 아침 8시에 업무가 시작돼 저녁 5시에 끝나는 반면 대부분의 일반 회사원들은 적어도 6시가 지나야 끝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가장 조용할 법한 중앙 우측 구석으로 자리를 잡았다.


저녁 7시 정도가 되면 식당 안은 앉을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먼저 곰장어 소금구이 2인분과 돼지숯불구이 2인분을 주문했다.  


"소맥으로 먼저 한 잔 걸칠까?"


"좋죠."


"사장님, 여기 맥주하고 소주 한 병씩 주세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주문한 술과 사람 수대로 찐 달걀 세 개가 뜨거운 콩나물국에 동동 띄어져 나왔다. 


A는 늘 그렇듯이 숟가락으로 맥주병 뚜껑을 열었다. 


'뻥~'하는 소리와 함께 치솟은 병뚜껑은 3미터를 날아가 옆 테이블 바닥에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내 답답한 마음도 저 병뚜껑처럼 '뻥'하고 뚫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컵에 담긴 소맥을 단번에 입속으로 털어 넣고 잔을 내려놓은 A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나 참 기가 막혀서."


"병원장님이 뭐라고 하셔요?"


"뭐, 그냥 다른 부서도 경험해 보라네."


"그게 말이 돼요? 팀장님이 여기 어떻게 오셨는데."


"뭐, 이미 결정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그만두거나 아니면 조용히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허리 아파서 사흘 동안 누워서 이것저것 생각하다 보니까 어느 정도는 마음이 정리가 되더라. 한결 마음도 편해졌고. 나중에는 허리 아픈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더라."


이 말이 끝나자 나도 모르게 헛헛한 쓴웃음을 튀어나왔다.


어느덧 술은 소맥에서 소주를 바뀌었고, 소주잔은 기계처럼 곧바로 비워지고 채워지고를 반복했다.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 다섯 개가 놓여 있었다.


취기가 오르자 대화는 험담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화장실 갔다 올게."


나는 식당 밖으로 나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아직도 차가운 2월의 바람은 취기로 뜨거워진 얼굴을 시원하게 식혀주었다. 


입에 문 담배가 중간쯤 타 들어갈 무렵 바지 주머니에 들어있던 휴대폰이 '징 징 징'거리며 울었다.


발신자를 보니 방송국 C기자였다.


"안녕하세요, C기자입니다. 통화 괜찮으세요?"


"그럼요, 뭘 도와드릴까요?"


"퇴근하셨죠? 죄송해요."


"괜찮아요. 무슨 일 있으세요?"


"다른 게 아니고요, 일단 팀장님네 병원은 아닙니다. 하하하.  제보가 들어왔는데 의료사고 같아요. 근데 제가 의학적 판단을 하기 어려워서요."


대부분의 지역기자들은 의학적 전문성이 부족하다 보니 조심스럽고 예민한 취재 중의 하나인 의학 관련 취재가 있을 때는 종종 나에게 전화를 걸어 자문을 구했다. 


실제로 병원 홍보일을 오래 하다 보니 이런 자문의 반 정도는 대답이 가능했다. 


그리고 내 선에서 답을 주지 못하는 경우에는 의사나 담당부서에 대신 자문을 구해 알려주곤 했다. 


비록  병원을 직접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소 기자와 언론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소홀히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기자 본인이나 가족, 지인들의 치료를 위해 병원을 찾을 때 편의를 봐주거나 특히 응급실을 찾아야 하는 긴박한 상황일 때는 새벽시간을 불문하고 전화를 받아야 했다.


초년생 시절에는 365일 24시간 전화를 받아야 하는 이 상황이 적지 않은 스트레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조금 전에 전화 통화를 한 C기자의  두 살 된 첫아들이 새벽 두 시경에 고열로 응급실을 찾게 된 일이 있었다. 


C기자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미안함을 무릅쓰고 내게 전화를 했다고 했다. 


그리고 네 번의 신호음 만에 전화를 받아준 내 목소리를 들은 C기자는 그렇게 안심이 되었다고 했다. 


이 일이 있을 후로 내가 전화를 받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큰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휴대폰은 늘 내 몸의 일부처럼 지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돈 안 들이고 덕을 쌓는 일이기도 했다.


조만간 저녁에 소주 한 잔 하자는 말을 끝으로 5분 간의 통화를 마치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면서 계산을 마쳤다.


여기서 더 술을 마시게 되면 실언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당을 나와 줄지어 서 있는 택시를 잡아 타고 집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깥공기와는 다르게 택시 안은 히터의 열기로 얼굴이 저릴 정도로 따뜻했다. 


취기가 더 오르는 느낌이었다.


몸을 창문 쪽으로 45도쯤 기대니 창문의 차가운 냉기가 얼굴을 시원하게 했다. 


김이 서린 창문에 하트를 그려보았다. 


유치한 내 행동에 '피식'하고 웃음이 났다. 


문득 C기자와의 전화 통화가 생각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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