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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aire mindfulness May 02. 2024

시험 끝난 날!



드디어 오늘 도지오빠의 중2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내가 이제와서 말하지만 이번 시험 기간동안 힘들어서 몸무게가 다 빠질 지경이었다. 


우리 아들은 공부를 잘 못한다. 그런데 아들 시험 점수에 연연해 할 형편이 전혀 아닌 내가 시험기간이라고 힘들었던 이유는? 

이 아이가 생애 최초로 시험공부라는 것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지 (물론 그 마음이 행동으로 수월하게 이어졌다고 할 수는 없다.) 이 엄마에게 시도때도 없이 도움을 요청하여 거의 모든 순간을 함께 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주기만 해도 고마운 도지오빠였다. 6학년 즈음부터 학업에 손을 놓고 10시가 되어도 학교에 갈 생각을 하지않고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어서 출근해서 속이 까맣게 탔던 날들이 많았던 나다. 일탈하는 친구들과 어울려 학교를 그만두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끌어다가 했었다. 중학교 1학년은 100점에 육박하는 벌점으로 마무리하였다. 그 중 반 정도는 1-2분 지각으로 인한 것들이었는데 그래도 수업 시작하기 전에 학교에 가주는게 어디냐 생각하며 살았다. 학교생활 태도의 문제로 너무 많은 지적을 받았기 때문에 시험 점수는 내게는 큰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생활이 잡히지 않았는데 점수가 잘 나올리도 없을 뿐더러 생활이 엉망인데 점수가 좋아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필평가가 없던 중1을 자유로운 영혼으로 보내고(이 때 학교 일정이나 수행 등 학교에 대한 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관심을 주면 서로 괴롭기에 나도 관심을 딱 끊고 살았다.) 2학기 들어서 붕붕 떠있던 아이의 마음이 약간 안정되어 가는구나 느껴졌다. 시험을 본다고 책상에 앉는 척 하며 '내가 알아서 할께'를 시전했으나 머리속에는 아무 것도 없는게 느껴졌다. 그래도 시험이라고 긴장하고 학교에 가는아이가 마냥 대견했다. 


그랬던 도지오빠가, 이번에는 시험을 잘 보고 싶다는 것이다. 근데 가만 보니 공부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이의 성격에 큰 기대없이 살았고 나도 USMLE 공부로 한창 바쁘고 시간에 쫒기는 상황이지만 처음으로 공부를 해보고자 하는 아이의 손길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중학교 공부가 전혀 감이 안 잡혔지만 큰 맥락에서 가이드만 해주자고 처음에는 쉽게 생각했다. 떠먹여 주는 공부는 아이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쭉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아이가 진짜 내 도움 없이는 한 발자국도 걸음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내용이 어려워서 나도 너무 막막했다. 내가 수업을 들은 것도 아니니.. 뾰족한 수가 없었다. 급기야 족보를 뽑아 보고 같이 교과서를 꼼꼼하게 읽으며 내용을 파악했다. 나까지 틈이 나면 내용을 공부하고 족보를 출력하고 같이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를 분석하는 생활을 하게 되었다. 도지오빠는 처음 결심과는 달리 중간에 의지가 약해져 오랜 시간 침대에서 겨울잠을 자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내 공부할 시간 쪼개어서 애써 중학교꺼 공부하고 도와준 것이 억울하기도 했다. 하지만 더 열심히 해보자고 격려하는 대신 내 시간 벌었다, 편해진다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내버려 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지오빠도 조금 달라졌다. 그러다가도 다시 공부하자며 기대없이 내 할일 중인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출근해서 일하고 내 공부하고 밥 차리고 청소하고, 나머지 시간은 계속 나를 찾아 이제 뭐하지? 그것 좀 같이보자, 하는 도지오빠와 시험기간을 함께 했다. 중학교 졸업한지 30년이 다 되어가고 학교 수업도 듣지 않았고 내가 전문 강사도 아니라서 무지 힘들고 부담스럽고 시험기간 내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태였지만, 도와주고 싶어도 내 손길을 거부하던 그 때를 생각하면 천지개벽 수준이었다. 같이 하자는 그 마음이 참 고마워서 힘들어도 싫다고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내 기준에서는 준비가 많이 모자랐다. 다 떠먹여준 것도 같다. 그래도 결과와 상관없이 너무 대견하다. 방황하던 도지오빠가 이렇게 어려운 시작을 한 것 같아서. 본인은 결과에 실망을 한 눈치다. 무려 1달 동안 피씨방도 독하게 끊고 한다고 했는데 평균 90점은 넘기고 싶었나보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얘기해줬다. 어떻게 하는건지 이제 아주 조금 알았으니 다음 번에는 더 쉬울거라고.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가시덤불 길에 아주 비좁은 길이 살짝 생기기 시작한 거라고, 다니고 또 다녀서 점점 넓게 길을 터가자고.  


시험 끝나고 1달 만에 피씨방에 가는 도지오빠한테 맛있는거 꼭 사먹으라고 이만원을 쥐어주었다. 

이제 나도 긴장을 풀고 다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좀 하고 자유롭게 지내야겠다.

1달 뒤면 기말고사니 그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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