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헤어짐은 미제일 수밖에”
해준(박해일 역)은 안개가 끼고, 날씨가 흐려도 세상을 또렷하게 보려는 사람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안개가 끼면, 낀 채로 산다. 먼지가 쌓이면, 쌓인 채로 산다. 보고 싶지 않으면, 굳이 보려고 하지 않는다. 적당한 회피성은 삶의 필수적인 덕목으로 여겨진다. 세상엔 더러운 것도, 불편한 것도, 무서운 것도, 잔인한 것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공식은 해준에겐 통하지 않는다. 안개가 있으면 걷어내야 하고, 먼지가 쌓이면 닦아내야 한다. 이도 저도 할 수 없다면, 내 눈이라도 밝게 만들어야 한다. 보는 것에 대한 강박이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게 명확하게 보여야만 감정이 순환되는 인물이다. 그래서였다. 해준이 서래에게 끌린 건.
서래(탕웨이 역)를 조사하던 중, 해준이 묻는다.
"남편의 신상 착의를 '말씀'으로 전해드릴까요? '사진'으로 보여드릴까요?"
처음엔 서래가 "말씀"이라고 했다가 "사진"으로 보겠다고 답했다. 바로 이때, 해준은 깨달은 것이다. 서래도 분명하게 보이는 세상을 선호한다는 것을 말이다. 해준이는 서래를 지켜보면 지켜볼수록 그녀에게 끌리게 된다. 그녀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개입하면 할수록, 때로는 아무런 이유 없이 세상이 명확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감정만 달라졌을 뿐인데 세상이 분명 해지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사랑은 아무런 근거 없이, 아무런 논리 없이 세상을 분명하게 만든다. 감정이 감각에 믿음을 주기 때문이다.
서래에게 해준은 '품위'있는 사람이었다. 자신의 남편이 자신을 대했던 것과는 매우 달랐다. 자신이 피의자로 의심받던 상황에서도 해준은 서래에게 선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런 해준이 질곡동 사건의 피의자인 이지구를 체포하는 장면에서 폭력적인 장면을 보며 매력을 느낀다. 서래의 눈에는 해준은 직업정신이 투철한 '품위 있는' 경찰이었기 때문이다. 서래가 한국어를 못 해서 쉬운 말로 풀어서 설명하려는 모습, 칫솔과 방수 밴드를 챙겨주는 모습, 허벅지 부위를 촬영할 때 여자 경찰을 부르려는 모습 등에서 통상적인 '친절'과 범인을 잡을 때 나타나는 적당한 '폭력성'은 경찰로써의 '품위'를 완성시키는 듯했다.
해준이는 서래에게 핸드폰을 깊고 깊은 바닷속에 빠트리라고 했다. 하지만 서래는 마지막 해준의 절망 섞인 진정한 고백을 영원히 바다 깊숙한 곳에 묻어버릴 수 없었다. 핸드폰은 어쩌면 해준에게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켜줄 수 있는 매개체였기 때문이다. 해준이가 헤어질 결심을 한 순간, 서래는 '마침내' 느꼈다. 해준이의 '헤어질 결심'이 서래에겐 '사랑의 고백'임을 말이다. 해준의 '붕괴'는 서래에겐 '사랑'이었음을 말이다. 해준이 붕괴된 것은 서래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서래는 엄마의 바람으로 엄마를 살인하면서 자신이 무너져 내리고 부서지는 경험을 했다. 어선의 생선 창고에서 몸에 오물이 다 묻어가고 며칠을 굶은 상태를 경험한 서래는 붕괴라는 단어를 아주 잘 알았다. 사전에서 그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게 됐을 때, 해준의 고백은 완성됐다. 무너지고 부서지는 순간이 서래에겐 '사랑의 순간'이었다.
서래는 '마침내' 사랑하게 된 해준의 습관들을 따라 하게 된다. 마치 해준이가 잠복근무하며 서래를 들여다보며 서래의 삶을 관찰했던 것처럼, 서래는 사이렌을 울려 경찰들을 다 밖으로 내보낸 후에 창문을 통해 해준이를 관찰한다. 애플 워치에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녹음한다. 서래는 해준을 따라 녹음하며, 절에서 해준이 자신을 보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이 녹음된 것을 들었던 그때를 떠올린다. 해준이와 서래는 서로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그들만의 분명한 세계 속에 서로를 드리웠다.
해준이는 서래와 헤어진 후, '이포'에 왔다. 자연스레 곰팡이가 서리는 곳, 원자력발전소가 있는 곳, 모든 게 흐리게 봐야만 살 수 있는 안개의 도시 말이다. 안개와 안개 사이에 끼어버린 해준이가 볼 수 있는 세상은 주먹 손만큼도 되지 않는다. 해준이 서래와의 헤어질 결심을 하고 남은 건 '붕괴'된 자신이었고, 무엇이든 명확하게 선명하게 분명하게 보려는 해준은 더 이상 삶의 의지를 잃었다. 명확히 볼 수 없다면, 명확히 볼 수 없는 안개의 도시에 들어가면 되고 명확히 무언갈 볼 수 없는 산만한 정신이 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헤매던 때, 갑자기 서래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서래는 항상 '살인'으로 문제를 해결해왔다. 사랑하는 엄마의 부탁 때문이었든 간에, 혹은 자신을 학대했던 남편으로부터의 도망이었든 간에. 협박하는 두 번째 남편으로부터 자신이 사랑하는 해준을 지키기 위함이었든 간에. 모든 건, 항상 '살인'으로 해결했다. 그래서 마지막 자신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살인하는 방법을 택한다. 해준의 사건에 미결로 만들 '자기 자신'을 깊은 바닷속에 묻기로 한다. 죽은 후 바다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기 위해 모래사장 아래 묻히는 방법을 떠올린 서래, 자신의 무덤을 파고 그리고 그 안에 들어가 술을 마시고 땅을 팠던 도구인 바구니까지 끌어안고 그대로 구덩이 안에 스스로를 가뒀다. 바닷물이 밀려들어오면서 쌓아놓았던 모래들이 함께 구덩이로 들어오기 시작했을 때, 서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서래는 그렇게 깊고 깊은 바다에 묻혔고, 해준이는 '미제'를 얻었다. 어쩌면 서래는 해준이의 미제 사건들이 가득했던 벽면에서라도 살아있을 자신의 존재를 떠올리며 죽음의 순간을 견뎠을지 모른다.
그렇게 서래는 가라앉았고, 해준은 헤맸다. 모든 헤어짐이 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때론 아무런 이유 없이 분명해지기도 하지만, 또 반면 아무런 이유 없이 흐려지기도 한다. 만남이 선명할수록, 헤어짐은 흐려진다. 헤어짐에 있어 분명한 것은 없다. “헤어지자”라는 말 한마디에 우리의 이별이 그려지고, 우리의 만남이 사라진다면 분명 그건 안갯 속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헤어질 결심'은 안개가 자욱한 도시 '이포'와 같다. 어쩌면 모든 헤어짐은 미제일 수밖에 없다. 자욱이 떠다니는 안개를 손에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안개는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다.
+ 숨겨진 영화 속 디테일
해준이가 처음 말했던 ‘우리’, 서래가 처음 말했던 ‘우리’의 시간이 다르다는 것에서 영화의 비극을 발견했다.
서래가 항일의병군의 후손이라는 것, 그리고 해준이와 서래가 처음으로 먹었던 음식이 '일본 초밥'이라는 것은 감독님이 숨겨놓은 소소한 장치인 것 같다. 또 이 스시는 '핫도그'로 대체된다. 중국과 한국은 일본을 사이에 두고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만, 미국을 사이에 두면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또한 스시가 핫도그로 바뀌면서 서래가 미묘하게 서운해하는 감정선으로 연결되는 게 좋았다.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문자 텍스트의 디테일’이었다.
해준이 처음으로 서래에게 문자를 보낸 장면에서의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후에 해준이와 서래의 관계에 변화가 생긴 이후에 해준이가 서래에게 문자를 보낸 장면에서의 '자요?'
.이 ?가 된 순간, 즉 온점이 물음표가 된 순간. 이 사소한 디테일로 풀어지는 감정선이 예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