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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르미 Oct 28. 2022

2화. 성인 ADHD가 뭐길래

우울증과 성인 ADHD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는 날까지 - [정신독립일기]

2화. 도대체 성인 ADHD가 뭐길래


아동기에 있는 ADHD는 보통 사회화 과정을 겪으면서 사라지는데,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채로 성인이 되면 ‘성인 ADHD’와 마주하게 된다. '성인 ADHD'는 나에겐 너무나 익숙한 거라서 나름 사회 안에서 티 안 내는 방법을 터득했다고 자부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없다고 생각하며 살 수는 없는 그런 존재이다.


내가 우울의 시간이 길었던 것도 ADHD라고 하면 납득이 되기도 한다. 보통 ADHD는 도파민 부족으로 인한 질환으로 알려져 있고 우울증도 도파민이 부족해지는 정신적 질환이다. 즉 ADHD는 도파민 부족으로 생긴 뇌적 결함이기에 그와 관련된 다른 정신질환이 동반되기 쉽다. 유독 우울의 시간이 길었고, 유난히 우울에 취약했던 이유도 다 이것 때문이다.


4년 전, 2017년에 성인 ADHD와 우울증을 진단받고 약을 복용했다. 그때는 진단 자체가 나에게는 힘이 됐다. 신체의 병도, 마음의 병도 ‘인지’해야 비로소 온전한 의미의 치료가 시작된다. 약은 3개월 정도, 비교적 짧은 기간동안만 복용했다. 마지막 처방을 받으러 갔을 때, 의사 선생님께 들었던 말이 “ADHD에겐 완치라는 개념이 없어요”였기 때문이었다. 뇌의 일정 부분에 결함이 있기 때문에 생기는 질환이기에 약을 필요할 때 복용해서 효과를 보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복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그야말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셨다. 특히나 성인의 경우에는 뇌가 다 성장한 상태이기 때문에, 성인 ADHD는 ‘관리’의 문제로 전락한다. 완치가 되지 않는다면 치료라는 의미가 무색하다고 생각했다. ‘그래, 지금까지 계속 이렇게 살아왔는데 누구보다 내가 날 잘 아는데. 약 없이도 잘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해보자’라고 결심하고 복용을 중단했다. 다행히도 그때우울증이 잠잠해지던 시기였기에 가능했던 다짐이었다.


“대략 75%의 ADHD는 동반하는 다른 정신 질환이 있다. 이러한 동반질환들은 단순히 몇 개에 그치는 게 아니라 ADHD에 관련된 뇌의 결함 부분에 따라 충동장애, 강박장애, 행동장애, 성격장애, 그리고 기분장애에 걸친 다양한 질환을 포함한다. 어릴 때부터 이러한 동반질환을 동반한 ADHD를 가진 환자는 이후 나이가 들면서 예후가 더욱 안 좋아지기에, ADHD의 치료에 있어서 이러한 동반질환을 먼저, 혹은 같이 치료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 [출처] 나무 위키


나의 경우에도 동반질환이 있었다. 우울증, 충동장애, 불안장애. 우울증과 관련된 증상은 인터넷에 널리고 널렸고, 무엇보다 이제 방송에서도 적지 않게 언급되기 때문에 이 부분은 생략하려고 한다. 충동장애는 말 그대로 충동적이다. 인터넷에 증상을 찾아보지 않고, 내 증상으로 설명을 하려고 하니 꽤나 개인적 일 수도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말 그대로 ‘도벽’이 있었다. 마트에서 자잘하게 물건을 훔쳤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단순히 실수로 하는 행동과 ‘충동장애’는 다르다. 마트에서 레모네이드 음료수를 훔치다 걸렸고, 사장님께서 선처를 안 해주셔서 지구대를 갔다. 그날 울고불고 다시는 하지 않겠다며 수백 번을 다짐하고 뉘우쳤다. 심지어 엄마한테 정말 많이 맞았다. 그래서 반성도 했다 생각했고, 뉘우쳤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후에 같은 반 친구의 지갑에 손을 댔다. 또 걸렸다. 애초에 계획적으로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아니라 정말 ‘충동’에 의해 훔치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 걸리게 된다.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닌 계획적으로 물건을 훔치고자 했다면,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훔치는 것이 아니라 교실에 아무도 없을 때 훔쳤을 테니까. 충동성에 휘둘린 나는 어쩌면 멍청하게도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훔치게 됐고 당연히 걸렸다. 선생님께 불려 갔고, 그렇게 엄마에게 연락이 갔다. 반복되는 도벽으로 강인하고 무뚝뚝했던 엄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고 말 그대로 '각성'하게 됐다. 더 이상 물건을 훔치는 건 다시는 하지 않게 되었지만, 정말 창피한 사실은 상상 속에서는 몇 번을 훔쳤다는 것이다. 엄마를 생각하고 참으려고 악을 썼을 뿐이지 중학교 2학년 때까지는 물건을 훔치는 상상을 했다. 또 다른 충동장애의 대표적인 증상은 아마 ‘폭식증’이지 않을까 싶다. 난 마음이 공허하거나 우울하면, 배가 돌이 될 때까지 음식을 쑤셔 넣었다. 폭식증을 겪는 사람은 알겠지만, 몸이 괴로울 때까지 먹는다. 그래서 건강에 무지하게 해로운 것이다. 지금은 물론 배가 돌이 될 때까지 먹진 않지만, 여전히 음식에 집착이 남아있다.


‘충동장애’에는 감정적 충동 또한 빠지지 않는다. 별 얘기 아닌데도 가끔 감정에 대해 말하다가 북받쳐 오를 때가 있는데 자꾸 울먹거리는 투로 말하게 되기도 한다. 아침에 아랫집에서 담배를 피워 담배냄새가 거실, 내 방까지 들어와 베란다 밖으로 소리 지르거나 감정적으로 주체가 안 돼서 씩씩거리면서 거실과 내 방을 계속 돌아다닌다거나. 머리로는 알면서도 과격한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비속어는 사용하지는 않지만, 더 기분 나쁜 말들) 말하면서도 알지만 그게 따로 노는 느낌이라 제어가 잘 되지 않는다. 기분에 따라 표현이 굉장히 극단적이다. 가장 쉬운 예시를 들자면, 발가락 아파서 절단해 버리고 싶다는 등. 자기 자신에 대한 표현이 꽤나 혐오적이다.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중간에 자주 잘라먹는다거나 대화 화제와 다른 얘기를 갑자기 해버린다. 또 말을 하면서도 숨 쉬는 걸 까먹어서 말을 하면서 와중에 숨을 먹기도 한다.


‘불안장애’는 정말 일상적인 자극에도 불안을 느끼게 한다. 가족과 함께 차를 타고 가면서 차가 갑자기 전복되어버리는 상상, 내가 엘리베이터에 타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하는 상상, 간판이 날아와 나에게 꽂히는 상상, 내가 타고 있는 비행기가 폭발하는 상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거나 위험한 일이 생기는 상상 등. 심지어 20살 때, 원형계단을 내려가면서 떨어져 내리는 상상을 한 이후로 한동안 계단을 굉장히 무서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불안은 너무나도 오랫동안 일상적으로 지속이 되었고, 그런 상상을 해도 현실에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아니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도 이젠 필요 이상으로 불안을 해결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되긴 한다.


우울증은 이제 모두 떠나보냈고, 불안장애는 너무 일상적이라 잘 컨트롤할 수 있게 됐다. 특히 충동장애로 나타났던 소비욕이나 폭식 등도 예전에 비해 합리적으로 변했다. 25살 이후, 특히 26살이 되면서 좋아졌고 27살이 되면서도 조금씩 더 좋아지고 있다. 다만 최근 들어서 충동장애로부터 비롯된 기분장애가 더 내 삶에 문제로 부각되었다. 감정적으로 왔다 갔다 하는 내가 진정이 안 되고 버거워서 다시 병원에 가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을 해보게 됐다. 내 집중력은 많이 쳐줘야 한 줌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처럼 수험생으로 살 때가 정말 버겁다. 감정도 조절이 안 돼서 힘든데 그러다 보니 없던 집중력도 더 없어질 판이 됐고 저번 주 마지막 사건으로 인해 병원을 다시 찾기로 결심했다.


이번 주에 병원에서 다시 검사하고 진단받고 약을 복용하기 시작했다. 3-4년 전에는 우울증이 있었을 때고 지금은 없으니까 약 효과도 잘 받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지금 내 생활이 극도로 한정적이라 더욱더 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에 약을 복용했을 때 크게 효과를 본 편은 아니어서 이번에는 약 용량을 차근차근 올려가며 효과 볼 때까지 먹어볼 예정이다. 이번에 다시 검사를 받았는데 예전에 받았던 검사보다 뭔가 더 한 단계 진화한 느낌이었다. 결과지도 되게 자세했다. 의사 선생님께서 “이 정도면 약을 먹어야겠는데? 책은 어떻게 읽어요?”라는 말에서 멘 투 더 붕이 왔다. =3


음, 일단 사실 이게 난 익숙하고 (그야 이렇게 20년 넘게 살았으니 그럴 수밖에..) 내가 비교할 수 있는 건 ‘과거의 나’뿐이라서, 예전에 비해선 아주 많이 좋아져서 꽤 만족하고 있었는데 그 말을 들으니 ‘대체 다른 사람들은 책을 어떻게 읽는 걸까?’ 궁금했다. 검사 전, 집중을 어느 정도 하냐고 해서 ‘30분에서 1시간’ 정도라고 했을 때 ‘그 정도면 좋은 건데’라고 하셨던 말이 생각이 나면서 ‘아,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집중과 나의 집중의 기준이 꽤 다른가보다’라고 생각했다. 뭔갈 하면서 딴생각을 하는 걸 멈춰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그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항상 남들에 비해 2배 이상의 시간을 써야 한단 정도만 인지했을 뿐이다. 딴생각이 들어도 그 자리만 박차고 나가지 않으면 매우 집중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기준이 매우 얄팍한 거였다. 의자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다면 그건 나에겐 엄청난 집중력인데 말이다.


약을 먹어가며 느끼는 나의 변화와 앞으로 어떻게 ADHD와 함께 살아갈지 더 구체적인 관리방법을 연구해보고, 틈틈이 과거 생각나면 우울이나 ADHD에 대해서 자세히 얘기도 해보고, 그리고 무엇보다 시행착오와 함께 이제까지 어떻게 관리하며 살았는지도 적어볼까 한다. 증상에 대한 얘기를 나열하다보니 일상생활이 가능한 사람인가 의문이 들수도 있지만, 내 주변 사람들은 대부분 모른다. 아주 잘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성인 ADHD이다 보니 ‘집중력’과 ‘주의력’은 여전히 볼품없지만, 그래도 한 줌 남은 ‘집중력’과 ‘주의력’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내 나름대로 터득해서 어렸을 때와 다르게 대학에 다니면서는 소소하게 가시적인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토익 965점, 평균학점 4.3) 자랑은 재수 없지만, 그래도 나름 사회구성원으로써 제 역할은 톡톡히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꼭 강조하고 싶었다. 조금 부족할진 몰라도 나름 잘 살아가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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