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zzi Aug 21. 2023

감사합니다.

노트북이 켜지는 동안 맥주를 한 캔 가져왔다. 이미 두 캔을 비웠다. 한 캔은 웃으며 비우고 한 캔은 미안해하며 비웠다. 시동이 걸리는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한 손으로 맥주캔을 따다 쓰러뜨렸다. 거품이 한껏 올라오면서 탁자 위로 살짝 흘렀다. 옆의 티슈를 두어 장 뽑아 맥주를 훔쳤다. 문득 외로웠다. 흘러 넘치는 하얀 거품이, 탁자 위의 노란 맥주 방울이 외로웠다. 다 쓸데 없는 미사여구. 맥주를 닦으며 외로웠다. 외롭게 맥주를 닦고 한 모금 마셨다.


하루종일 두 가지 표정으로 지냈다. 깔깔거리다, 한껏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뿐 아니라 요즘 그랬다. 미안한 표정이 아니면 활짝 웃는 표정. 앞에 사람이 없을 때는 미간을 찌푸리고 힘껏 눈 앞에 집중했다. 눈 앞에서 흩어지는 글자들, 숫자들. 전화를 받아도 똑같이 웃거나, 미안해했다. 집에 돌아와도 미안해하고, 웃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노트북을 열었는데 꺼져있었다. 배터리가 다되었다. 충전기를 꽂고 전원 단추를 누르니까 위잉-하고 예열을 시작했다. 내 노트북은 오래되어서 켜지는데 시간이 걸린다. 까만 화면에 내 얼굴이 얼핏 비쳤다. 이제 오롯이 나와 내가 남았다.


나는 글을 쓸 때 메모장을 켠다. 메모장은 줄바꿈도, 문단 나누기도 내 맘대로다. 좁고 길게 창을 두면 문단이 뚱뚱해 보이고, 넓고 짧게 창을 두면 문장이 길어 보인다. 내겐 보이는 게 중요하다. 모든 것은 복제니까, 거울과 이미지로 존재하니까. 진심이 통하는 건 멀리 두었다. 그 모든 관계에서 진심이 통하지 않을 바에는 예쁘게 보이련다. 그래서 말을 예쁘게 한다. 위악이 위선보다 나쁘다. 츤데레보다 가식적인게 낫다. 위선은 적어도 뭐가 예쁜지는 알고, 예쁘게 보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안다. 위악적인 것들, 츤데레는 자기밖에 모른다. 남을 위하는 자기에 취해있다. 


이번 한 주가 외로움으로 꽉 찬 날들이었다는 걸 방금 알았다. 그토록 외로운 나는 어째서 한껏 즐겁고 한껏 미안한가. 외로운 시간의 표면에는 내가 가장 취하기 쉬운 감정 두개만 떠오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움은 곧 감사함이었다. 모든 것에 감사하고 모든 것에 미안해했다. 나는 그게 편했다. 넌 대체 뭐가 감사하고 뭐가 미안하니. 그건 모르겠고, 아무도 내게 고맙지 않고, 미안하지 않다는 게 외로워. 나는 의미 있는 한 줌이고 싶어. 고맙고 미안하다는 건 관계를 갖는다는 뜻이야. 나는 타인의 손아귀 속 한 줌이면 족해. 그러니까 나는 위선적으로 산다. 화가 나고 슬프고 외롭고 열등감을 느끼고 불안하고 강박적이고 위태롭고 긴장해도 감사하고 미안하다. 감사함과 미안함은 가장 찰싹 붙는 감정이고 내가 죽어도 놓지않는 감정이다. 둘을 놓으면 나는 이제까지의 모든 관계도 포기해야 한다. 내게 관계의 아교는 감사함과 미안함이다. 




나는 여러분에게 감사해요. 이런 글을, 나의 속을 보아주심에 감사해요. 그리고 미안해요. 더욱 아름다운 글, 즐거운 글, 예쁜 나를 보이고 싶은데 그게 안되네요. 그건 솔직하지 못해요. 이 글을 쓰기로 할 때 나는 솔직하기로 했어요. 위악을 뒤집어 쓰지는 않으려고 해요. 그런데 솔직하려면 위선도 제껴 두어야 하네요. 무서워요. 아직도 많이 무서워요. 나의 하찮음을 들키는게, 우리가 감사함과 미안함을 느끼지도 않을 사이가 될 수도 있다는게 무서워요. 그럴 수 있는 사이에게 내 속을 먼저 보인다는 게 무서워요.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내게 나의 속을 먼저 보이는 거니까. 그리고 누군가에게 보내지 않으면 이내 갈갈이 찢어버릴 글이니까. 마치 존재하지도 않았던 문장들처럼 나는 그걸 외면할지도 모르니까요. 어쩐지 여러분이 옆에 있는 듯한 밤이에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