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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zzi Aug 21. 2023

23.08.18 오늘의 풀무질

그래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글감만 쌓아두고 글을 쓰지 않았다. 글감을 쌓는 일도 꽤 멀어졌다. 매일이 어제와 같이, 내일도 그럴 만하게 보냈다.


시간이 좀 흘렀는데, 오랜 지인을 오랜만에 만났다. 세상에 글이 넘친다고 한껏 불평을 쏟았다. 다들 말하고만 싶어 하고 듣는 일은 뒷전인 듯싶다. 그런 세상이 또 불만이다. 충분히 듣고 읽는 것은 말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듣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고 믿는다. 그런데 요즘은 내가 틀린 것 같다. 애써 외치지 않으면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다. 뭐라도 뱉어야 그 안에서 의미를 찾는다. 시끄러운 술집에서 점점 악을 쓰는 기분이다. 기본적으로 성량이 필요한 시대다.


너무 많은 글의 파도에서 간신히 찾아내는 반짝이는 문장은 귀하다. 점점 귀한 글을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소개하기도 힘들다. 내 욕심이 앞서다 보면 글을 판단하는 기준이 자꾸 뜬구름 잡는 감상으로 변한다. '그냥 좋아서'라는 감상은 내가 납득이 안 된다. 한없이 좋아도 뭐가 좋은지 그 끄트머리를 잡아내는 게 내 역할이다. 그게 내게만 잡히는 실마리더라도 그래야만 글의 바다에서 표류하지 않고 헤엄칠 수 있다.


'글쓰기의 재능'에 관해 고민했다. 잔잔히 흘러가는 문장에 나를 온전히 맡겨버리게 되는 글을 만난다. 그러다 툭 튀어나오는 문장이 마음에 박혀 몸을 떤다. 그러고 또 속절없이 다음 문장으로 옮겨가는 그런 글들을 만난다. 그런 책은 상체를 벌떡 일으킨다. 다급하게 필사할 도구를 찾게 만든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운이 좋게도 다양한 방식으로 오롯이 서 있는 글들을 만났고, 그들을 베껴왔다. 베끼면서도 질투한다. 나는 그런 글을 쓰지 못하니, 열심히 팔자고 다짐한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나를 인터뷰한 글인데 내가 읽고 조금 울었다. 나를 봐주는 시선을 느낀 지가 오래되었다는 걸 글을 읽고 알았다. 인터뷰하는 내내 얼마나 주의 깊게, 세심하고 따뜻하게 바라봐 주셨는지 그때야 알게 되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그 글만 되짚어 읽었다. 좋았던 문장이 다른 문장과 연결되고, 그렇게 글 한 덩어리를 꼭 끌어안고 잠들었다. 오랜만에 아주 깊이 잤다.



풀무질이 혜화에 둥지를 튼 지 30여 년, 급변하는 세상의 흐름은 작더라도 소중한 가치들을 휩쓸고 집어삼켰지만, 그 가운데서도 심지 굳은 바위처럼 자리를 지키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낮에는 급랑을 견디고, 밤에는 깜박이는 별자리를 짚어보며 한 발 한 발 나아가 왔습니다. 오늘 밤, 지친 마음은 잠시 내려놓고 풀무질에서 다 함께 웃고 떠들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의 새로운 별자리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인터뷰에는 내가 '썼던' 문장이 인용되었다. 인용된 문장이 나를 울려버려서 그게 내가 쓴 문장이라는 인지를 못 했다. 다시 찾아보니 정말 내가 썼던 문장이었다. 그 문장을 쓸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열심히 반추했지만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분명 내 마음이었을 텐데, 낯선 문장으로 돌아와 내 앞에 섰다.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인터뷰해 주신 선생님은 돌아가시며 내가 꼭 글을 쓰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혼자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은 많이 했다. 그래서 글을 썼고, 이미 쓴 글을 칭찬받은 적도 있다. 이제는 글쓰기는 너무 피곤하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라'는 권유가 낯설게 들렸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띄엄띄엄 키보드를 누른다. 올해 두 번째 서점일기를 지금 막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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