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쓰고 싶은 말들은 있었지만 흘려보냈다. 써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마음을 쏟아내면 자꾸 축축한 글이 퍼졌다. 파도치는 현실에 온몸이 젖어서 글씨는 자꾸 번졌다. 자꾸 같은 문장을 되뇌었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 말고도 즐거운 것이 많은 시대, 책이 비싼 시대, 책이 소용없는 시대. 조지 오웰은 1946년 『책 대 담배』라는 에세이를 발표했다. 책을 읽는 것과 담배를 피우는 것, 영화를 보는 것, 펍에서 술을 마시는 것에 드는 돈을 비교하며, 책 읽기가 얼마나 비싸고 또 그에 비해 재미없는지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책 읽기는 그때도 비싸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흥미로운 모임 홍보물을 보았다. '책을 읽지 않고 참여하는 읽기모임'. 호스트가 읽기로 한 책을 재밌게 설명해주는 모임이었다. 사실 이제는 누가 책을 읽는지는 관심이 없다. 원래 책장의 80%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로 채워져 있다. 그럼에도 책을 꾸준히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가끔 스스로를 '북 호더'라 부르며 쑥스러워 한다.
사람이 책 한 권을 읽고 소화하려면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1분 1초가 시간인 사회에서 책을 소화해서 내 손에 쥐어지는 돈으로 만드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다. 책이 내게 소화되는 시간에, 그걸로 돈을 벌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과, 그리고 그게 실제로 돈이 되기까지. 그렇게 내 손에 들리는 푼돈. 말도 안되는 비효율이다.
책이 차지하는 공간도 무시할 수 없다. 한 권을 여러 번 읽기에는 새 책들과 새 말들이 쏟아져 나온다. 눈 한번 깜빡하면 책 무덤에 파묻혀버린다. 겹겹이 쌓인 말들의 두께는 잿빛 더께로 딱딱하게 굳는다. 자기 한 몸 뉘일 공간조차 부족한 사람들에게 책 사기는 사치 중의 사치다. 머리에 책을 잔뜩 이고 살다보면, 책이 상전이다. 가뜩이나 연약해서 습기 관리, 먼지 관리, 온도 관리에 신경쓸 수나 있으면 다행이지만 결국 책을 망가뜨리는 주범은 내가 된다. 갖고 돌아다니기만 해도 때 타고 이곳 저곳 뭉그러지는 데 나는 밑줄 긋고 여백에 덧쓰기까지 하는 못된 악당이다.
지금은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기보다, 책을 갖지 않는 시대일 뿐이다. 이 모든 비효율에도 어쨌든 책을 읽는 사람들은 있다. 낭만은 비합리적이고, 이 시대 가장 비합리적인 것을 꼽자면 비효율이다. 그래서 비효율의 끝인 '책읽기'야 말로 이 시대 낭만의 끝이다. 그 사이에서도 어떻게든 현실성을 끌어들이려면 책을 '갖지' 않고 읽어야 한다. 전자책으로 어떻게든 데이터화 시켜서 부피를 줄인다. 데이터화 시키면 닳지도 않는다. 여의치 않으면 빌려 보고 반납한다. 공공성은 이럴 때 활용하는 것이다. 그래도 갖고 싶으면 조금 망가졌어도 본질은 이용할 수 있는 중고를 찾아본다. 그러네, '새 종이책'을 '갖는' 것이 책읽기 중에서도 가장 낭만적인 일이다.
어떤 분은 '책'은 이제 사치품이라는 이야길 하시더라.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다. 그래도 종이책은 살아남을 것이다. 끝까지 출판될 것이고, 사람들은 종이로 된 책을 손을 만지고, 쓰다듬고, 들고 다니고, 넘기고, 책장에 꽂을 것이다. 다소 낭만적으로 들릴 수 있다. 하지만, 인류의 역사에서 '낭만'이 사라진 적은 아직까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