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하여
꽃의 입장에서 보면 느닷없는 비바람은 잔혹합니다.
세상의 온갖 찬사가 쏟아지는 가장 황홀한 시기에 난데없는 비바람은 어이없습니다.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는 일은 견디기 힘듭니다.
찬사를 뒤로 하더라도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곤충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기다려야 합니다.
아직 벌, 나비의 디딤을 만나지 못한 꽃잎들은 애가 탑니다.
겨우내 견딘 꽃눈의 마음에서는 슬픔이 일고 분노가 치밉니다.
내 일이 아니므로
인간들은 곧 잊습니다.
지고
떨어진 꽃잎을 아쉬워는 하나 돋아나는 새순을 반깁니다.
오히려 싱그럽다며 더 반기기도 합니다. 봄의 연두는 여름의 허다한 초록과는 달리 눈길을 자주 받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의한 자신의 변화를 주름과 새치로만 아는 인간은
지고 피어나는 것을 순간으로 여겨 곁눈질할 뿐입니다.
때와 시를 따라 비바람은 자신의 일을 합니다.
거듭되고 반복되는 자연의 순환 속에서 한때의 일은 가볍습니다.
비와 바람의 입장에서는 약한 것들의 숙명일 뿐입니다.
가볍고 반복되는 일이므로 그 흐름과 시간 속에서 기억하고 느끼는 일은 인간에게 중요합니다.
설레이며 오는 봄과
영화로운 여름과
어여쁘게 오는 가을과
분주하게 오는 겨울의 시간 속에 같이 있을 때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
'어여쁘다' 말하는 일은 피워 황홀한 순간에만 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지고 떨어진 순간에도 전해져야 합니다.
'어여쁘고 어여뻤으며 여전히 그렇다.'
그리해야 비바람이 한 일이 잔혹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존재는 그러해야 합니다. 외롭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끼리끼리 둘러앉아 비바람을 탓하며 막걸리 한잔 하더라도 우리는 꽃이 피고 비가 오고 바람이 불고 꽃이 지고 새순이 돋아나는 많은 순간에 위로와 반김이 있어야 합니다.
그 위로와 반김과 아는 체는 인간에게 선물로 되돌아옵니다.
너무나 태연하고 반듯한 그 자연스러움이 변덕스러운 인간에게 슬픈 눈으로 말을 건넵니다.
내가 슬프므로 그 눈에 슬픔이 스렸다는 걸 알아챈
인간은
지는 것에 대한 기억으로 한참을 운 다음에야
그것이 위로임을 알게 됩니다.
비바람은 그렇게 자신의 일을 합니다.
꽃은 그렇게 졌습니다.
잎은 곧 돋아나 젖은 몸을 펴 햇살을 받습니다.
그들의 시간이 곧 나의 시간이 되면 우리는 외롭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