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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요 Sep 08. 2022

Think Hard

조선 사발을 빚어낸 사기장의 몰입에 대한 생각

항상 바래왔다. 온전히 집중해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잊어 인위적인 손길이 아닌 무념무상의 지경에서 잠시 라도 머물러 있을 수 있기를 말이다.

그래서인지 무슨 일을 시작하기 전에 준비가 많이 필요하다.

주변에 없는 것과, 찾아야 하는 것들로 인해 방해받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정리하고 챙겨놓고 오로지 집중할 수 있는 것들로만 주변을 채운 후 시작 버튼을 누르듯 무언가를 시작한다.

내가 상상하는 작업실에서의 가장 불편한 상황은

전화기 2대를 양쪽 귀에 대고 이야기를 하며 서류를 찾고 소리를 지르는 영화 속 사무실의 모습이며 이는 혐오의 대상이기까지 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내가 늘 도망을 꿈꾸고 탈출을 염원하는 이유이다.

다른 일들로 에너지가 지극히 소진되는 많은 날들을 견디고 행복해지기 위해

나에게는 몰입의 순간이 필요하다.

몰입은 주변을 잊는 것이 아니다. 물론 그런 순간도 필요하지만 내 손이 하는 일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 존재한다. 그 순간에 잠시 기대는 것이다.


존경하는 사기장 천선생님은 70의 노구에도 하루 새벽 사발을 100여 개 차고(만들고) 일과를 시작하셨다고 전해진다. 몇 해 전 소천하신 선생님은 평소 문하생들과 제자들에게


"도예명장이니 명인이니 하는 명칭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얼마만큼 욕심을 버리고 마음까지 내려놓은 후 찻사발을 만들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 잡생각을 하면 그것이 그릇에 그대로 나타나게 된다”며 “흙과 물과 불이 하나가 되는 순간에 나타나는 완전한 아름다움, 즉 자연과의 합일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발을 빚으며 손의 놀림이 방해가 되지 않는 경지, 손을 타고 미끄러지듯 만들어지는 형상, 무심, 그 속에 차를 담고 차인은 그 무심한 그릇과 맑은 차로 자신의 몸을 채우고 그 반복적인 동작을 통해 마음을 비워간다. 차를 다 마신 후 비워진 마음과 눈으로 찻그릇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흠결이 아닌 순수가, 뒤틀림이 아닌 자연 그대로가, 흔적이 아닌 사기장이 끌어올린 단 한번의 가벼운 손놀림의 결이 나있다. 꼼꼼하게 다듬고 고치고, 닦아내고 채워 넣은 그릇이 아닌 갓 건져 올린 듯한 그 생동스러움이 그 안에 있다. 그 그릇에 차를 마시면 태초의 향과 맛과 신비가 있다.


추구한다. 그 무심한 경지의 손놀림과 몰입을......


짐작하건데

관요에서 작업을 한 조선 사기장은

수백, 수천번의 발길질로 목물레에서 매병과 주병과 항아리를 만들고 상감을 하고 초벌을 하고 채색을 하는 과정은 고되었으리라. 그 과정으로 그에게 소득과 명성이 주어졌으면 그나마 나았을진대 관의 납품 요구는 거세었을 것이며 물량을 맞추기도 빠듯했고 보람과 긍지보다는 수고와 위로가 넘쳐났을 그 시절 그곳을 짐작한다.

잠시 남은 시간 서민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물레는 계속 돌아갔고 그릇으로 쓰일 사발은 그렇게 무심한 듯 툭 쳐대는 발길과 쑥 뽑아 올리는 손길로 빚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심한 발길질과 손놀림의 경지는 현재도 수많은 도예가들이 재현하려 해도 몇몇의 명장에 한한다. 기이한 일이다.


일본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1889~1961)는 그가 쓴 민예론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무엇 하나 장식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디 한 군데 꾸민 데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한국의 밥사발이다. 그것도 가난뱅이가 보통 쓰던 사발이다. 흙은 뒷산에서 파온 것이다. 유약은 화로에서 퍼온 재다. 물레는 축이 흔들거린다. 아무렇게나 깎아낸 그릇이다. 방은 어둡고 도공은 문맹이다. 꾸밈이 없는 것, 사심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러운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

일본의 국보가 된 조선의 사발 일본명[기자에몬이도]

사실 이 야나기의 발언은 조선의 아름다움을 극찬하고 있는 듯하지만, 막 빚어낸 조선의 막사발이라 불리워도 좋을 이 사발이 일본인의 심미안 덕분에 미학적 가치를 지니는 이도차완으로 다시 태어났다는 오만한 생각이 짙게 깔려 있다. 본 담론에서는 야나기 무네요시의 조선사발에 대한 미학 담론을 분석하고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은 차치하고 조선의 사발에 조선의 국보가 된 사연에는 이러한 몰입의 결과가 있다는 것에 대해 집중하기를 바란다.  

조선의 사발을 재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태토를 수비하는 과정부터 성형, 건조의 모든 과정에 도공의 엄청난 내공을 필요로 한다. 절정의 기술의 지녔지만 앞서 도천 선생님의 말씀처럼 잡생각을 하면 그릇에 티가 난다는 것은 엄청난 집중력과 손을 방해하는 요소가 전혀 없는 자연스러움의 경지가 보통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경임을 짐작해내기는 어렵지 않다.

더해서 그 몰입의 시간을 평가해주는 차인들의 미적인 감각도 더해졌음은 물론이다.


가끔 그런 타이밍이 온다.

혼이 사라지는 느낌, 흙과 하나 되는 느낌, 몸이 아프지 않고 흙이 적당해 손 안에서 잘 놀아나는 느낌, 샤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처럼 말랑말랑해서 말 안 듣는 아이처럼 불편하던 흙에게 친절해지는 시간이 있다. 나에게도 그런 시간은 가끔 온다.


최고의 시간이다.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황홀한 시간


흙을 수비하고 점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일정하게 흙을 돌아가게 해 놓는다. 물레는 오른쪽으로 돌고 바닥이 만들어지는 굽깍기의 과정에서는 왼쪽으로 돌려 깎는다. 주로 사용하는 손에 따라 다르지만 주요는 일정한 방향으로의 꼬임과 풀림을 지니고 있는 흙이라는 것이다.

건조의 과정에서 이 흙의 꼬임이 풀어지며 갈라짐이 발생한다. 단단한 흙을 애써 누르고 짓이겨 만든 기물은 흙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서 있을 때 이 억지스러움을 스스로 풀어 자연으로 돌아가려 애쓴다.

거친 손을 가진 자의 인위적인 누름은 결국 갈라져 못쓰는 것으로 귀결된다.

몰입의 순간처럼 자연스럽고 흘러내림과 버팀과 벌어짐이 자연스러울 때 이 꼬임은 자연의 순리대로 꼬여 그 형상을 유지하며 공기의 흐름과 불의 격정을 견뎌낸다.


도자기를 만들고 사발을 빚어며 간절히 바라고 원하는 시간은 바로 그 몰입의 순간이자 황홀경이다.


분주하고 어지러우며 둔탁하고 무딘 손으로 무엇을 빚어 어찌 마음을 드러내며 석고틀로 짜내고 기계로 흙을 밀어 형태 안에 가두는 것에서 어떤 자연스러운 형상과 자유로움을 기대하겠는가?


자유로움으로 빚어졌으니 다양하게 이해되고 흠결도 예쁘고 못남도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리라

허허로움으로 글을 쓴다. 염원하고 간절하기에 더욱 허허롭다. 그저 얻는 것은 없고 방향이 있으니 기대한다. 그리하여 또한 허허하다.

 

완전한 몰입으로 불완전함을 자유롭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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