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나 Aug 13. 2022

#2 "고3이 한 명이라고?"

나는 작년에 고3 담임이었다. 그리고 내가 맡았던 3학년 1반에는  한 명의 학생이 있었다.


교사 2년차에 고3 담임을 맡았으니 아는 게 뭐가 있었겠는가. 정말 하나도 없었다. 시내였으면 3학년 부장님께 좀 여쭤봤을 텐데 내가 3학년 부장이라니.. 나 혼자 너무 중요한 일을 떠맡은 기분이었다. 공문만 내려오면 혹시나 까먹을까, 행여나 실수할까 꼼꼼하게 메모하고 시교육청에 전화해서 문의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무슨 학교길래 생기부 담당도 나, 전국연합학력평가 담당도 나, 대입전형자료 담당도 나, 수능 원서 접수 담당도 나.. 하여튼 대입 비슷한 업무는 거의 다 내가 했다.


그래서 학교에 고3이 한 명이면 어떻냐고? 모든 게 한 명의 학생을 위주로 돌아간다. 학생과 나는 생기부를 보면서, 진학 사이트를 보면서, 대입 프로그램을 돌리면서 일 년에 걸쳐 길고 긴 상담을 진행했다. 대학, 전형, 학과, 서류, 면접 등의 주요사항을 표로 정리해주고 그것도 모자라 하나씩 짚어주며 까먹지 않게 일러주었다.


수시 원서를 쓸 때도, 수능 접수할 때도, 면접 준비를 할 때도 학생 곁에는 늘 내가 있었다. 특히, 2차 면접의 경우, 같은 학교 국어 선생님을 섭외해 리허설도 해보고 마지막엔 수험표와 유의사항까지 출력해 손에 쥐어주었다.


나는 꽤나 열심히 했다. 내 자식도 이 정도론 못 해줄 것 같고 말할 정도였으니까. 그땐 왠지 이 학생의 당락이 나에게 달려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우리 학교 고3 담임의 클라이막스는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건 바로 수능이 있는 주의 월요일부터 요일까지 학생과 호텔 숙박을 함께하며 무사히 시험을 치르도록 도와주는 일이었다. 엥? 대관절 왜 담임 교사가 학생과 숙박을 하며 수능을 도와주는가?


일단 도서지역 학생들은 섬 안에서 수능을 볼 수 없다. 섬에는 시험장이 없기 때문이다. 수능 전에 반드시 출도해서 미리 시내 시험장 근처로 이동해야 한다. 그런데 출도라는 게 생각보다 쉽지만은 않다. 봄에는 안개가, 여름에는 비가, 가을에는 바람이, 겨울에는 눈보라가 날씨를 불순하게 만들 수 있으며 이 경우 배는 결항된다.


그래서 11월 초부터 도서지역 수능 담당 교사는 수도권 기상청으로부터 문자 연락을 받는다. 수도권 기상청에서는 학생들이 원활하게 출도하여 시험을 볼 수 있도록 인솔 교사에게 날씨를 미리 알려준다. 수능은 목요일이니 하루 전인 수요일에 출도하면 될 것 같은데, 수요일 날씨가 좋지 않고, 그런데 화요일도 바람이 애매하고, 그럼 월요일에 나가야 하나.. 하필 그 시기 날씨가 요란해서 걱정이 끊임다. 나는 교무부장님과 출도일을 논의했고 결국 일요일 마지막 배로 출도하게 되었다.


우리는 시험장 근처 호텔에서 숙박을 했다. 코로나 감염의 위험 및 수능 직전 학생의 심적 안정 등을 위해 학생과 나는 서로 다른 방을 사용했다. 우리 학교는 묘하게 시교육청의 지원을 벗어나고 있어서 학생 오롯이 인솔교사 나의 책임이었기에 어깨가 무거웠다. 나는 호텔과의 거리와 교통편을 계산해 학생과 다녀올 식당을 사전에 알아봐야 했고, 동시에 예산계속해서 생각하느라 머리가 아팠다.


 먹이고 공부시키고 아픈 곳은 없나 살피고 하면서, 3일이 순식간에 흘렀다. 대망의 수능날 아침에는 호텔 식당 전자레인지를 용해 전날 사둔 호박죽을 데웠고, 아이가 점심에 먹을 따뜻한 죽을 보온병에 담아주었다. 나는 남은 죽을 떠 먹으며 아이가 책가방 싸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우리는 같이 택시에 올라탔다. 중간에 배고플 수 있으니 편의점에 들러 간식이라도 사가자는 내 말에 아이는 계속해서 싫다고 말했다. 수능날 죽을 먹으면 배가 고파서 앞 사람을 잡아 먹는다던데.. 그치만 아이의 말에 따랐다. 시험장 앞에는 교통 정리를 위해 경찰들이 여럿 서 있었고 아이는 택시에서 내려 씩씩하게 학교로 걸어갔다.


아이가 수능 시험을 보는 동안 나는 호텔 체크아웃을 하고 바깥을 떠돌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제2외국어까지 보겠다던 아이는 탐구영역이 끝난 시간에 전화를 걸었다. 자기 교실에 있는 모든 수험생이 제2외국어를 포기했대나 뭐래나. "그래서 일단 끝난 거지? 고생했다.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일단 알겠어. 선생님이 지금 학교 근처로 갈게."


우리는 시험장 근처에서 만나 저녁으로 청년다방 떡볶이를 먹었다. 나는 사흘 간 학생의 보호자와 학교에 학생의 상알렸 수능이 끝나자 긴장이 풀려 녹초가 되었다. 그간 타들어간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해맑게 웃으며 이거 선생님이 쏘시는 거예요? 하고 물었다. 그 모습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뻤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상한 나의 첫 근무지였다.

작가의 이전글 #1 "섬에서 근무한다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