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같은 내용을 여러 번 반복해서 가르친다.
같은 학년, 같은 반이어도 여러 차례 반복해서 떠먹여줄 때가 있다. 외,내심 같은 단원은 대학교 새내기 시절 했던 알바부터 중등 전임이 된 지금까지, 거의 대를 이어 가르치고 있다. 연차만 7년차인 셈..
일차함수, 경우의 수,확률.
처음엔 칠판에 쓰는 식도 비슷하고, 설명하는 흐름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결과는 매번 다르다. 학생마다 다르고, 반마다 다르고, 학년마다 다르다.
어떤 반에서는 “아, 이해됐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어떤 반에서는 같은 설명을 해도 아이들이 계속 멈춘다.
처음에는 이걸 아이들 차이라고 생각했다. 의욕이 정말 높은 반, 혹은 개념이 다소 부족한 반, 이런 차이.
“이 반이 좀 더 잘 따라오네.” “저 반은 기초가 부족하네.” 같은 코멘트는 내 수첩에 빼곡하게 적어뒀더랬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한 학생의 학부모님과 전화상담을 할 때였다.
"아 선생님, 애가 공부를 잘하기는 해요. 수학이랑 영어에 너무 데여서 그렇지."
그 말을 기점으로 조금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같은 걸 가르쳐도, 아이들이 다르게 배우는 건 내용 때문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
수업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이런 말을 한다.
“이해한 것 같아요.” "알 것 같아요."
이 말은 생각보다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나에게는 일단 다음 개념을 설명해도 된다는 신호탄이지만, 어떤 아이의 “이해했어요”는 정말로 개념을 잡았다는 뜻이고, 어떤 아이의 “이해한 것 같아요”는 그냥 더 이상 질문하기 어려워서 넘어가겠다는 신호일 때도 있다.
처음에는 이 차이를 잘 몰랐다.
일단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런데 어느 날 문제를 풀리는 시간을 주고 한 명 한 명 뜯어보니, 상황이 달랐다.
그때 생각났다. 이해는 설명을 들었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 스스로 한 번 말을 해봐야 생긴다는 걸.
학창시절 주구장창 듣던 '스스로 가르쳐봐야 공부를 잘 한다'던 말이 체감되는 순간이었다.
2. 같은 설명, 다른 반응
나만의 실험을 시작했다.
한 번은 완전히 똑같은 설명을 두 반에서 연달아 해본 적이 있다. 3-1 인수분해 단원이었는데, 인수분해의 목적이 무엇인지, 그래서 소인수분해와 비교하면서 덧셈식을 곱셈으로 바꾸는 과정을 보여줬다.
TMI: x^2+bx+c에서 합이 b가 되고 곱이 c다, 라고 하면 10명 중 8명은 못 이해할 거라 생각해서 공통인수부터 설명해줬다.
첫 번째 반에서는 아이들이 중간중간 질문도 하고 “아 이거네”라는 반응이 나왔다. 심지어 그 반에서 제일 잘 하던 학생은 '아 그러면 인수분해했을 때 둘의 합은 일차항의 계수가 되는 건가요?'라고 스스로 깨달았다. 그만큼 수업이 꽤 잘 풀렸다.
그런데 바로 다음 반에서는 같은 설명을 했는데도 반응이 거의 없었다. 정말 너무 조용해서, 이해를 했나 싶어 같은 설명을 2번 했다. 그럼에도 조용했고, 문제를 풀리는 시간에도 손이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때 처음으로 수업을 멈췄다. “이건 설명 문제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서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업에서 하나를 더 보기 시작했다 - 아이들이 질문을 할 수 있는 상태인가.
어떤 반은 틀리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틀리면 그냥 “아 틀렸네” 하고 고친다. 이런 반에서는 질문도 자연스럽게 나온다.
“쌤, 이거 왜 이렇게 돼요?” “이건 다른 방법 없어요?”
자연히 내가 질문하는 것도 비교적 수월하다. "왜 틀린 것 같아?" 같은 것들.
반대로 어떤 반은 틀리는 걸 굉장히 조심한다.
손을 들기 전에 한참을 고민하고, 틀릴 것 같으면 아예 말하지 않는다. 이런 반은 수업이 점점 조용해진다. 그리고 그런 수업은, 경험상 겉으로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에서는 멈춰 있는 경우가 많다.
그 이후로 설명 방식뿐 아니라 수업의 흐름 자체를 조금 바꾸기 시작했다.
가령, 라이트쎈을 풀 때였다.
프리뷰 단원 문제를 하나 풀고 나면 바로 채점만 한 후, 고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묻는다.
“이거 틀린 사람?”
처음에는 아무도 손을 들지 않는다.
그래서 내 경험담(a.k.a.'썰') 을 풀어준다.
“저도 학생 때 자주 틀렸던 문항이에요. 같이 풀어보자.” (TMI: 나는 반존대를 자주 쓴다)
그러면 한두 명이 쭈뼛쭈뼛, 손을 든다.그리고 조금 지나면 더 올라온다.
그렇게 '틀리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서 풀이를 설명한다.
이 과정이 들어가면 이상하게도 아이들 표정이 조금 풀린다. 틀린다는 게 치부가 아니고, 학원에 왔으니 '뭔가 하나는 얻어가야' 하는 거고, 그래서 나를 오래 붙잡아도 되는 거라고 행동으로 설명해주려는 거니까.
그렇게 한 반에서 틀리는 게 덜 위험해진다.
학원에서는 속도가 중요하다.
진도를 맞춰야 하고, 시험 범위를 끝내야 하고, 복습도 해야 한다. 수학은 취약유형도 병행해야 하고. 그래서 한번 진도가 밀리면 수업이 자연스럽게 빨라진다.
하지만, 학생들 수준을 보면서 나는 빠르게 끝내는 것보다 제대로 시작해서 제대로 하는 것을 중시하게 됐다.
한 개념을 조금 더 천천히 설명하고, 조금 더 많이 틀리게 두고, 조금 더 오래 고민하게 둔다. 그게 오히려 나중에 속도를 만들어주는 경우도 많았다.
가령, 올 방학 이야기를 해보자.
중3 두 명이 있는데 둘 다 함수가 취약했다. 그래서 인수분해 진도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마자, '정비례와 반비례'부터 시작해서, 환승연애와 아이돌이 등장하는 함수 수업을 진행했다. 한 주를 꼬박 투자했던 진도였다.
그런데 그래프를 그리면서, y=0일 때의 x값이 나오는 것을 방정식에서의 근으로 읽을 수 있다,는 사실과 인수분해한 이차식에서 '=0'을 우변에 붙이면 똑같은 방정식 형태가 된다는 것을 같이 수업하니 3단원 이차방정식까지 순식간에 진도가 나갔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방학 세 달 만에 3단원까지 끝낸 사람들이 됐다.
그래서일까. 내신대비기간이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수업을 할 때 나는 아이들이 “이 설명을 들었다”가 아니라 “이걸 한 번 해봤다”고 느끼는 것을 중시하게 됐다.
그래서 같은 개념이라도 아이들마다 다르게 연결하려고 한다.
아이돌 이야기로, 연애 이야기로, 학교 선생님 성함을 가져온 예시로. 정 예시가 없으면 나를 희생(?)한다.
설명은 금방 잊힌다. 하지만 경험은 조금 더 오래 남는다는 걸 배웠으니까.
매 수업마다 고민한다. “이걸 어떻게 설명할까”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경험하게 할까.”
그 경험은 단순한 예제 풀이가 아니다- 그리고 그 질문을 붙잡고 이상한 수업을 이어간다.
보드를 좋아하는 애는 보드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애는 아이돌로, 각자의 세계에서 출발해서
수학으로 돌아오게 만드는 방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면 가끔은 눈물나는 순간들이 찾아온다.
“아… 이거 그거네.”
깨달음이 학생을 찾아간 순간들 말이다.
수업은 설명이 아니라 그 한마디를 만들어내는 과정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도 결국 마주하게 되는 또 하나의 장면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열심히 하는데도, 결과가 따라오지 않을 때 아이들과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 이 포스트를 시작으로 학기 중엔 일주일에 한 편 정도씩만 쓸 예정입니다. 기다리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진 않지만,, 대학원 개강을 맞이하니 정말 몸이 ... 세 개라도 모자란 일정의 반복이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