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점수는 오르는데 표정은 굳어간다

그래서, 수업을 더 이상하게 만들기로 했다

by 델리만쥬

3화에서 나는 이런 질문을 남겼다.


점수는 올라가는데 왜 교실의 웃음은 줄어들까.


그 질문을 처음 제대로 느낀 건 시험 기간이었다.


시험 대비 기간이 되면 학원은 조금 달라진다.

수업 분위기도, 아이들 표정도,정수기 옆의 공기까지도.


“이거 중요하다.”

“이거 시험에 나온다.”

“이건 외워라.”


사실 틀린 말은 하나도 없다.

시험 대비라는 건 결국 효율의 싸움이니까.


하지만 어느 날 판서를 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러면 나도 결국 똑같은 수업을 하게 되는 거 아닌가.’


문제 유형을 정리하고,자주 나오는 패턴을 알려주고,

틀리기 쉬운 포인트를 강조하고, 개별 질문 받아주고.


분명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 하다 보면 수업이 점점 건조해진다.

수학이 아니라 문제 풀이 기술만 남을 거다.


그렇게 이상한 결론을 하나 내렸다.


시험 기간일수록 오히려 수업을 조금 더 “이상하게” 만들어야겠다고.


1. 평행이동을 설명하는 가장 이상한 방법

중2 수학에서 많은 아이들이 헷갈려 하는 개념 중 하나가

그래프의 평행이동이다. 왜 2만큼 움직이는데 x 대신 x-2가 오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른들 입장이나, 수학적으로는 간단한 이야기다.


하지만 아이들 머릿속에서는 자꾸 꼬인다.


x-2인데 왜 오른쪽으로 가지?


이 질문이 거의 매년 나온다.


그래서 이번엔 칠판에 이렇게 썼다.


“환승연애”


애들 눈에 안광이 돈다.


“쌤 갑자기 왜요?”


나는 말했다.


“그래프에도 환승연애가 있어.”


아이들은 더 웃었다. 그리고 나는 설명했다.


x라는 자리에 들어가는 사람이 원래는 x였어.

나란 놈(함수 그래프)의 답은 x=0이였는데 얘가 2로 도망간 거야. 그럼 2를 이항시키면, 결국은 x-0에서 x-2가 되지?


그래서 그래프는 x를 만나기 위해 오른쪽으로 두 칸 이동해.


교실이 잠깐 조용해졌다.


이상하게 설명했는데 이해는 됐다.


나는 그날 다시 확신했다.


수학은 설명의 방식에 따라 완전히 다른 과목이 된다.


2. 아이돌과 경우의 수


경우의 수를 설명할 때

나는 아이돌을 예로 들었다.


A팀에 멤버가 세 명,B팀에 멤버가 두 명 있다면? 이걸로 스페셜 무대 유닛을 구성한다면?


합의 법칙,

곱의 법칙.


아이들이 좋아하는 이름이 등장하면 문제가 갑자기 이야기가 된다.


어떤 아이는 말했다.


“쌤, 그럼 유닛 조합은 곱의 법칙이에요?”


나는 웃으면서 응,대답한다.


그 순간 수학 문제는 계산 문제가 아니라 팬들이 하는 상상이 된다.


3. 보드를 좋아하는 애는 보드로


내가 가르치는 반에는 스노보드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시즌권을 끊어 타는 애다.


그래서 나는 함수 기울기를 보드 슬로프로, 부등식 요금 문제를 보드 시즌권을 구매하는 상황으로 바꿔 설명한다.


아이 눈이 조금 달라진다. 자기 세계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4. 결국 내가 하는 일


문득 깨달았다.


나는 겉으로는 수학을 가르치고 있지만 사실은 계속

번역을 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교과서 언어를 애들 각자의 세계로,

공식을 이야기로,

숫자를 상황으로.


어떤 아이는 아이돌로 이해하고,

어떤 아이는 보드로 이해하고,

어떤 아이는 연애 이야기로 이해한다.


나는 그 연결점을 계속 찾으려고 노력한다. 그래야지 더 오래 기억할 거고 수학이 어렵지 않을 테니까.


5. 그래도 여전히 어려운 건


그렇다고 모든 수업이 다시 웃음으로 가득 차는 건 아니다.


시험은 여전히 있고, 점수는 여전히 중요하다.


아이들은 여전히 묻는다.


“쌤, 이거 시험에 나와요?”


나는 여전히 대답한다.


“응, 시험에도 나오고 생각에도 남았으면 좋겠어.”


이 말은 언제나 진심이다.


나는 오늘도 칠판 앞에 선다.


문제를 풀기 전에 잠깐 멈춘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걸 어떤 이야기로 바꿀 수 있을까.”


보드를 좋아하는 애는 보드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애는 아이돌로,

연애 프로그램을 보는 애는 연애 이야기로.


그렇게 설명하려고 애쓰면서 나는 자꾸 이런 말을 하게 된다.


수학은 생각보다 삶과 많이 닮아 있다고.


다음엔 이렇게 수업을 하면서 내가 알게 된 조금 씁쓸한 사실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아이들이 수학을 못해서 힘든 게 아니라, 어쩌면 다른 이유로 더 힘들어한다는 것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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