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왜 점수와 웃음이 반비례할까

점수가 올라도, 떨어져도, 애들의 웃음은 점점 사라져 갔다

by 델리만쥬

사실 내 얘기이기도 하다. 학창시절 분명 이과였는데, 나름 삼각함수 같은 일부는 재미있어하던 애였는데.. 어느 순간 웃음도 안 났고 머릿속엔 '어떻게 해야 이 유형을 정복하지' 싶은 마음만 가득했던 기억이 있다.

TMI : 필자는 학부 20학번(2001년생)이라 언급한 적이 있는데, 그래서 수능 때 수학'선택'이 아니라 이과면 수(가), 문과면 수(나) 였었다.


처음에는 잘 몰랐다.

아이들이 웃으면서 수업을 듣고, 나도 신이 나서 보드판에 분필을 휘갈기고,
“이게 바로 합의 법칙이야!” 하며 아이돌 멤버를 예시로 세워 설명하고, 정말 웃기게도 일차함수의 x축 평행이동을 나를 .. 희생한 환승연애로 설명했다. 이러면서 교실이 꽤 따뜻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였다.

중간고사가 다가오고, 학부모 상담을 진행해야 하고, 아이들 책상 위에 두꺼운 문제집이 추가되고. 아이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일단,웃음이 먼저 사라졌다. 그리고 질문이 줄었다. 마지막으로, 눈빛이 바뀌었다.


1. “이런 게 시험에 나와요?”

내가 있는 동네는 대치동이나 목동만큼 교육열이 아주 치열한 동네는 아니다. 때문에 '과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거의 불문율 같은 느낌이고, 사실 교육열이 아니더라도 저런 질문은 사실 나쁜 질문이 아니다. 과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고, 시험은 아이들 세계에서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니까.


그런데 어느 날, 내가 경우의 수를 설명하고 있는데 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근데 이거 시험에 나와요?”

몇 번을 들었던 말인데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교실의 공기를 식혔다. 순간 멈칫했다.

나는 ‘재밌게 이해시키고 싶다’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점수에 도움이 되느냐’만 남아 있었다.

그날 이후로, 아이들의 질문은 점점 이렇게 바뀌었다.

“이 유형은 몇 점이에요?”

“이건 외워야 돼요?”

“서술형으로 나와요?”

개념을 이해하는 질문 대신, 점수를 계산하는 질문이 늘어났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질문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점수는 정말 올랐다.


2. 성적 그래프는 우상향, 표정 그래프는 우하향

나는 일차함수를 가르칠 때면 인트로에서 '같이 올라가는' 게 있고, '반대로 가는' 게 있다고 한다.

가령, '내가 최애가 생겼어. 그러면 얘 포카(포토카드)가 늘어날수록 기분이 좋겠지? 반대로 어떤 멤버가 병크를 터뜨렸다고 하자*. 그러면 이 논란 멤버의 포카가 늘수록 기분이 오히려 떨어질 거야' 이런 식으로 말이다.

* 병크 : 아이돌 판에서, 쉽게 말해 '논란'을 터뜨렸다는 뜻


나한텐 애들 성적과 표정이 그런 그래프였다. 아이들 성적은 분명 기울기가 양수였다. 느리지만 오르고 있었다. 모의고사 점수도, 학교 시험 점수도. 학부모님과 전화할 때면 들려오는 말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교실의 분위기는 기울기가 음수였다.

예전에는 “와, 인수분해 이거 퍼즐 같아요!”라던 아이가 “이제 이건 안 해도 될 거 같은데요. 그냥 빨리 넘어가도 되죠?”라고 말한다. 수학을 ‘재밌는 구조’로 보던 눈이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변해가는 순간.

가장 원하지 않았던 장면을 보면서 묘하게 복잡해졌다.

내가 원하는 건 아이들이 이해하면서 웃는 수업이었는데. 그래서 시간을 쪼개 고민을 거듭했던 건데...


결국은 아이들이 웃지 않아도 점수는 오르는 수업을 하고 있었다.


3. 내가 놓친 건 뭘까

곱의 법칙을 가르칠 때 나는 항상 이렇게 말한다.

“하나가 정해지면, 다음 선택의 수가 달라져.”

아이들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시험이라는 하나의 선택지가 다른 모든 선택지를 압도해버린 순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줄어드는 건 아닐까.

나는 아이들을 위해 ‘시험에 맞는 설명’을 조금씩 늘려갔다.

유형별 정리

자주 틀리는 함정 표시

시험에 잘 나오는 표현 강조

그러다 보니 결국 이야기형 설명은 줄어들었다. 개념 도입 때는 온갖 비유를 다 한다지만, 결국은 돌아왔다.

나는 효율적인 강사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처음에 되고 싶었던 ‘별난 학원강사’와는 조금 멀어지고 있었다.


4. 아이들이 굳어가는 이유

가끔은 핑계를 대고 싶어서, 다른 생각도 해본다. 아이들이 굳어가는 건 시험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중2가 되면, 애들은 갑자기 어른 흉내를 낸다.


“이제 놀 때 아니에요.”
“고등학교 준비해야죠.”

누가 그렇게 말했을까. 어른들일까. 학교일까. 아니면 우리 같은 학원일까.


수학이 점점 ‘재밌는 과목’에서 ‘관리해야 할 과목’이 되는 순간, 아이들의 얼굴도 같이 관리 모드로 들어간다.

표정이 단정해지고, 감정이 줄어든다. 폰을 아예 없애 가지고 오는 경우도 봤다.


5. 그래도 나는 묻고 싶다

그래도 지나가다 쉬는 시간이면 한 번씩은 묻는다.

“야, 너희 옛날에 내가 아이돌로 설명할 때 재밌었지?”

그러면 애들이 피식 웃는다. “그건 재밌었죠.”


맞는 말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쓰인다.

점수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해주지만, 또 목표를 달성하는 건 성취를 주겠지만, 웃음은 아이들을 살아있게 해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둘 중 하나만 선택하고 싶지 않다.


성적 그래프가 우상향하면서도 교실 분위기도 우상향할 수는 없을까.

Or처럼, ‘이것 또는 저것’이 아니라 And가 되어 ‘이것과 저것’을 동시에 선택할 수는 없을까.

다음 화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시 ‘웃음’을 위해 수업을 어떻게 바꾸기 시작했는지 얘기할까 한다.

점수와 웃음, 둘 다 놓치지 않으려는 한 별난 꼬마강사의 실험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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