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학원의 수업에서 웃는 것을 바라는 사람이 되었다
지난 글에서 나는 아이돌로 경우의 수를 설명했다고 썼다.
정확히 말하면, 중학교 2학년 2학기에 배우는 합의 법칙, 곱의 법칙, 그리고 확률의 기초였다.
조합이나 순열 같은 멋진(?) 단어는 아직 나오지도 않는다. 그저, “두 가지 경우가 있을 때는 더한다.”
“연속으로 일어나면 곱한다.” 단순하고도 쉬운 이 문장 하나. 그런데 이 단순한 문장이 아이들에겐 생각보다 낯설게 다가오는 것만 같다.
TMI : 필자는 학부 때 주전공이 통계학이었다.
합의 법칙은 사실 선택지 이야기다
예제를 보면서 칠판에 이렇게 쓴다.
영화관에 간다
집에서 쉰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하면 몇 가지야?”
애들은 쉽게 답한다.
“두 가지요.”
그다음 질문이 문제다.
“그럼 영화관에 가거나, 집에서 쉬거나,
친구를 만나게 되면?”
의외로 3가지라고 대답하는 애들이 별로 없고, 대답하는 애들조차도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공식’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말을 바꿨다.
“최애가 컴백을 했어. 음방을 볼 수도 있고, 뮤비를 볼 수도 있고, 스밍 돌리러 갈 수도 있지. 오늘 밤 너의 선택지는 몇 개야?”
그제야 웃으면서 말한다.
“세 개요.”
합의 법칙은 사실 선택지가 늘어나는 이야기다.
그런데 교과서에서는 기호로, 공식으로, 따분한 문장으로 먼저 만난다. 그래서 그보다 수학이 활용되는 일상 속 상황을 먼저 말하는 걸로 바꿨다.
곱의 법칙은 ‘연속된 마음’이다
곱의 법칙은 더 어렵다. A를 하고 나서 B를 한다.
아이들은 여기서 자주 헷갈린다. 왜 더하지 않고 곱하는지, 또 예제는 풀어도 조금 응용되면 못 푼다. 그래서 이렇게 묻는다.
“콘서트 티켓을 예매하려면, 날짜도 고르고, 좌석도 골라야 하지? 날짜가 3개, 좌석 구역이 4개면 가능한 조합은 몇 개일까?"
이때 애들 표정이 어떻게 바뀌는지는 정말 봐야 한다. 안광이 돌아오고 화색이 돈다......
'아, 날짜 하나 고르고 그 안에서 좌석을 또 고르는 거구나.' 연속된 선택이라는 걸 그렇게 이해한다.
곱의 법칙은 ‘단계가 이어질 때’의 이야기다. 나는 그걸 연속된 선택, 연속된 마음이라고 설명한다.
확률은 ‘가능성의 비율’이다
작년 중2 수업 땐 이런 질문을 던졌다.
TMI : 가끔 나를 희생하는 질문을 많이 한다...
“저희 과 여자애들이랑, 다른 학교 다른 남초 전공에서 연합미팅을 한다고 할게요. 그러면 여기서 내 이상형을 만날 확률이 높을까, 못 만날 확률이 높을까?"
애들이 빵 터지면서 “못 만날걸요.”라고 대답한다.
그 웃음 속에는 이미 확률 감각이 있다. 확률은 공식 이전에 ‘경험적 직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수부터 쓰지 않고, 대신 먼저 묻는다. “가능성은 몇 퍼센트쯤 될까?”
가끔 강의실 밖에서 웃음소리를 듣고 놀라서 나에게 무슨 일 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신다. 이해는 간다. 학원에 공부하러 오지, 웃고 떠들러 오진 않으니까. 그래서 종종 스스로 묻는다. 그래 책임감 다하는 것 좋고 내 일에 최선을 다하는 건 맞아. 그런데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그냥 공식 알려주고 조용히 문제 많이 풀게 하면, 성적은 더 빨리 오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이 “아, 그렇구나” 하고 웃는 순간을 포기하기가 어렵다.
그 웃음은 이해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문제를 풀 때는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문제 푸는 속도도 현저히 느리다. 반면 이해했을 때의 웃음은 다르다. 나는 강사로 있던 몇 년간 그 반응을 배웠다.
일차함수도, 인수분해도 마찬가지다
일차함수를 가르칠 때 나는 기울기, 절편 같은 용어부터 말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돌을 좋아하는 애들한테는 앨범을 샀을 때 내가 원하는 포카가 나올 확률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직선으로 표현했음을 알려주고, 또 내 최애 멤버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가지고 평행이동을 설명한다.
TMI : 필자의 (현) 최애 그룹과 그 멤버 분들을 가지고 누가 싫었는데 누가 좋아졌다 이런 식으로 거의 환승연애처럼 설명을 한다. 내가 격하게 설명할수록 집중을 잘하기 때문^^...
그래프는 감정의 변화와도 닮아 있기 때문이다.
인수분해를 가르칠 때는 공통인수를 찾으라고 하면서, 이미 알고 있는 소인수분해와 섞어서 설명한다.
“얘는 쪼개는 게 아니라 숨겨진 공통점을 찾아내는 거야.”
2x + 4x는 따로 노는 것처럼 보여도 둘 다 x를 품고 있다. 공통된 걸 묶어내는 일.
나는 가끔 인수분해를 사람 관계에 비유한다.
겉으로는 달라도 묶어낼 수 있는 공통점이 있다는 것. 어떤 순서로 찾아내야 하는지.
아이들은 당장은 공식을 잊어도, 이 비유를, 내가 준 가이드를 기억한다. 그래서 다음 번 반복 땐 보다 수월하게 복습이 된다.
웃음은 ‘안전’의 표시다
왜 나는 웃음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할까.
학원은 긴장된 공간이다. 성적표, 등급, 비교, 경쟁.
아이들은 이미 충분히 굳어 있다. 그런 공간에서 웃음이 터진다는 건 어쩌면 상상도 못할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건 잠깐이라도 긴장이 풀렸다는 뜻이다. 긴장이 풀려야 생각이 움직인다.
나는 아이들이 문제를 틀리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 안 배웠는데, 안 겪어봤는데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틀릴까 봐 시도조차 안 하는 것, 고민도 안 하는 것. 그런 건 조금 슬프다.
웃음은 “여기선 틀려도 된다”, 최소한 나는 편한 존재고 모른다고 해도 됨을 이해했다는 신호다.
나는 완벽한 이상주의자는 아니다.
숙제 검사도 하고, 시험 범위도 정리해주고, 같은 단원을 정말 질릴 정도로 반복하고 상담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이 구조를 괜히 더 단단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나는 내 수업만큼은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문제와 동일시하지 않는 시간이 되도록, 수학이라는 마라톤에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는 시간이 되도록 조금이라도 더 버티고 싶다. 합의 법칙뿐 아니라 온갖 개념에 대해 보드를 좋아하는 애는 보드로, 아이돌을 좋아하는 애는 아이돌을 가지고 설명하려고 노력하면서, 수학은 생각보다 삶과 닮아 있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TMI : 필자는 보통 라이트쎈-개플유 라이트/파워-풍산자 쉬운유형-빨간수학 B단계-풍산자 고난도-빨간수학 고난도 & 그간 풀이한 것 오답클리닉 - 쎈B & 교과서 - 쎈B 오답+일품 - 내신 시작하면 고난도+기출 추가... 끝도 없이 풀린다. 교육열 높은 동네에서 공부하던 디폴트값?이 남아 있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이런 디폴트 값(양)과 웃게 만드는 수업(질) 간의 균형을 맞추고자 노력하는 것이 강사로서의 자아를 발전시키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