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나는 이 학원에서, 어떤 어른일까

'어른이'라고들 하지만 월급을 받는 이상 나는 내 몫을 잘 해야 한다.

by 델리만쥬

Intro.

어제도 어김없이 학원에 출근하는 날이었다. 목이 아파서 잠깐 물을 마시러 나갔는데, 작년 1학기 중간고사까지 함께하다가 고등부로 넘어간 아가를 마주쳤다. 데스크에 일이 있어 3층 수업하다가 내려온 듯 싶어서, 그냥 목례를 하고 들어갔다. 근데 애가 상당히...원망스럽게(?) 쳐다보는 게 보여서 쓰게 된 에피.

* TMI : 나는 반존대를 섞어쓰지만 인사할 때는 깍듯이까지는 아니어도 '안녕하세요'라고 한다. 일종의 존중.


사실 저런 어제 일이 아니더라도,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나는 지금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 걸까.


처음에는 단순했다.나는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개념을 설명하고, 문제를 풀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 말고도 많은 장면들을 보게 되었다. 정확히는, '읽게' 되었다.

시험 직후의 교실, 학부모 상담 직전의 긴장된 분위기, 점수 때문에 울고 웃는 아이들.

그리고 그 모든 순간 속에서 나는 묘하게 중간에 서 있는 사람이 된다. 학교도 아니고, 집도 아니고, 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사람. 싫진 않지만 메인으로 생각나지는 않는 어른.


나는 이 시스템 안에서 어떤 어른일까.


1. 성적을 올려야 하는 사람

학원이라는 공간의 가장 분명한 목적은 사실 간단하다. 성적을 올리는 것.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학부모 상담에서도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대부분 비슷하다.

“이번 시험에서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까요?” “어떻게 해야 내신 등급이 올라갈 수 있을까요?”
“지금 상태면 어느 학교까지 갈까요?” "가망이 있나요?" 등등.

모두 결과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나는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개념을 설명하다가도 수업이 끝나면 남아서 어떻게 다음 시간 진도를 나갈지, 오늘 애들 태도와 뭘 잘했고 못했는지 기록하면서 계산을 한다.

이 단원은 시험에 어떻게 나올까

어떤 유형을 더 연습시켜야 할까.

어떤 부교재로 보충을 해야 할까.

이 아이는 어디에서 점수를 잃고 있을까...

생색내려는 게 아니다. 이는 분명히 내 역할의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것만 생각하고 있으면 수업이 조금 낯설게 느껴진다.


2. 아이들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듣는 어른

의외로 학원에서 일하다 보면 아이들 이야기를 꽤 많이 듣게 된다. 수학 질문만 하는 건 아니다.

가령, 작년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나고, 기존 반이 워낙 다인원이라 중3을 고등부 올려보낼 애들과 남아 있는 애들로 나누면서, 중2도 2명이 되어서 그냥 요일을 분리했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되었고, 중2는 소인원이다 보니 "쌤 오늘 학교에서 훈련했거든요" 라던가, "쌤 버거 사주세요" 등등 사소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한번은 쌍둥이에다 합동을 비유(?)해서 설명한 날이었다. 이야기하다 보니 형제관계 이야기가 나와, 두 학생 모두와 대화하다 보니 1시간을 남아서 이야기한 셈이 된 날도 있었다. 너무 늦다, 다음엔 적당히만 받아주자 했는데 애들이 가끔은 아주 사소한 이야기로다, "썜 어차피 저희 둘 다 부모님이 일하셔서 집에 아무도 없어요" 이런다. 그 이후로는 내가 저녁을 간단하게 사먹이면서 남긴 적도 있고... 그렇다.


이걸 매 해 경험하면서, 문득 생각한다.

이 아이들한테 나는 어떤 어른일까.

학교 선생님은 아니고,부모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친구처럼 대할 수 있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고.


일주일에 세 번, 총 6~7시간을 같은 공간에서 만나는 어른. 만나는 목적도 자명한 어른. 다만 어쩌면 아이들이 비교적 부담 없이 말할 수 있는 어른일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을 하면 내 말 한마디가 조금 조심스러워진다. 이 아이들에게, 나는 친하든 아니든 '어른'이니까.


3. 시스템을 알고 있는 사람

학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교육 시스템의 구조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내신, 수행평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수시와 정시. 아이들은 이 구조 안에서 조금씩 움직인다.

예를 들어 어떤 학교는 서술형 비중이 높고, 어떤 학교는 객관식이 많다. 어떤 시험은 계산보다 문제 이해가 더 중요하고, 어떤 시험은 시간 관리가 더 중요하다. 이런 것들을 알게 되면 전략도 알려주게 된다.


“이 학교는 서술형 연습을 더 해야 해.”
“이 문제는 풀이 과정을 꼭 써야 해.”


그 순간 나는 단순히 수학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이 시스템을 설명해주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이 항상 아이들에게 친절한 구조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한다.


4. 가끔은 애매한 위치

그래서 학원 강사는 가끔 애매한 위치에 서 있다. 성적을 올려야 하는 사람이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기도 하고, 시스템을 설명하는 사람이면서도, 때로는 그 시스템을 의심하기도 하는 사람.


아이들이 너무 지쳐 보이는 날이 있다.

시험이 연달아 있고, 숙제가 쌓여 있고, 수행평가도 준비해야 하고. 그럴 때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다.

“오늘은 그냥 조금 덜 시켜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동시에 “그래도 시험이 코앞인데…” 싶을 때도 있다.

이 두 생각 사이에서 가끔 멈춰 서게 된다.


5. 그래서 나는 이렇게 하려고 한다

균형을 잡아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완벽한 답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조금씩 정해가고 있다 - 나는 아이들 편에 서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성적을 올리는 건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만드는 건, 그리고 공부에 대한 동기를 잃게 만드는 건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수업 중간에 이런 말을 한다. “틀려도 괜찮다"고, "지금 틀리는 게 제일 빨리 배우는 거야.”라고 한다.


아이들은 보통 웃고 말기에.. 조금은 와닿았기를 바랄 뿐이다.


나는 아직 완전히 어른이 된 것 같지도 않고, 완전히 선생님이 된 것 같지도 않다.

한국 나이로 스물여섯.

아이들보다 조금 먼저 이 시스템을 경험해 본 사람.

어쩌면 지금의 나는 앞에서 길을 안내하는 어른이라기보다 조금 앞에 서서 같이 걸어가는 사람에 더 가까운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칠판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설명하면서, 그리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이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어떤 어른들을 만나게 될까. 어떤 어른이 될까.


다음 글에서는 학원에서 일하면서 내가 느낀 또 하나의 흥미로운 차이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같은 수업을 들어도 어떤 아이는 훨씬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에 대해서.

월,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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