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아이들이 수학 때문에 힘든 건 아닐지도 모른다

공부도 체크포인트다. 멈춘 곳부터 하면 돼.

by 델리만쥬

학부모님과 전화상담을 하면 자주 듣는 말이 있다.
“저희 애는 수학 머리가 아닌가 봐요.”


본인도 그런다. "80만 나와도 잘하는 거래요."


처음엔 그냥 흔한 자기평가라고 생각했다.
공부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하는 말이니까.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문장이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애들은, 단순히 “어렵다”고 하는 게 아니었다. 조금 더 큰 문장이었다.

> “저는 안 되는 사람 같아요.”

수학 문제 하나가 사람의 능력 전체를 설명하는 것처럼
말하는 거 아닌가? 싶은 날이었다.


1. 문제를 틀렸는데, 사람이 틀린 것처럼 느끼는 순간

한 번은 중간고사 점수랑 시험지를 들고 오라 한 날이었다.

*TMI: 나는 시험 끝나면 첫 시간엔 시험지를 들고오라 한다. 약간의 간식과 함께 오답을 해야 하기 때문.

어떤 아이는 “생각보다 잘 봤다”면서 안도하고,
어떤 아이는 “와미친 망했다”이런다.

그날 한 아이가 다른 애들 다 가고서 조용하게 말했다.

“저는 수학에 소질이 없네요.”

점수는 그렇게 나쁜 편도 아니었다. 반 평균보다 조금 아래였고 1번을 틀려버린 탓이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자기 자신을 이미 “수학 못하는 사람”으로 분류해버린 것 같았다.

나는 그때, 이건 성적 이야기가 아니라
정체성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2. “틀렸다”는 말이 너무 커지는 순간

수학은 이상한 과목이다.
완전히 맞기 위해선 한 치의 실수도 있으면 안 된다.

그래서 아이들은 틀린 문제를 볼 때 자주 이렇게 생각한다.

“아, 나 틀렸네.”

그 다음 생각은 금방 이어진다.

“나는 원래 이런 거 못해.”

그리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나는 원래 수학 못하는 애야.”로 바뀐다.


문제 하나가 사람의 성격처럼 굳어지는 순간이다.


3. 사실 아이들은 계산보다 다른 걸 더 힘들어한다

수업을 오래 하다 보니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 게 있다.

아이들이 수학 문제를 못 푸는 이유가 항상 수학 때문은 아니라는 것.

어떤 아이는 평소에는 문제를 잘 풀다가 시험만 보면 갑자기 틀린다. 알고 보니 시험 전에 너무 긴장해서 문장을 제대로 읽지 못한 거였다.

또 어떤 아이는 수업 시간에는 이해를 잘 했는데 숙제를 거의 못 해온다.

물어보면 집에서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고 한다. 폰 좀 보다 학교 가면 피곤하단다.

그때 깨닫는다.

애들이 수학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이미 힘든 상태에서 수학을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는 걸.



4. 그래서 나는 가끔 이런 말을 한다

“수학 못한다고 해서 네가 못난 건 아니야.”

너무 뻔한 말처럼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들 표정을 보면
이 말이 처음 듣는 말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시험이 끝나면
아이들은 자기 점수를 이렇게 말한다.

“저 망했어요.”
“저 끝났어요.”
“저 수학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나는 그럴 때
일단 문제 이야기를 멈춘다. 그리고 풀이를 본딘.

그리고
“그래도 이해한 건 뭐야?”"여기까진 안 거 같은데?" 묻는다.

이 질문을 받으면
아이들은 잠깐 생각한다.

“음… 그래도 합의 법칙은 알겠어요.”
“평행이동은 이해됐어요.”
“공통인수는 조금 보여요.”

그 순간
표정이 조금 풀린다.

완전히 망한 건 아니라는 걸
처음 확인한 사람처럼.


5. 그래도 나는 학원 강사다

이쯤에서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나 해야 한다.

나는 학교 교사가 아니라 학원 강사다.

여기는 결국 성적을 올리기 위해 오는 곳이다.

학부모 상담에서는 결국 이런 질문이 나온다.

“점수는 얼마나 오를까요?”"저희 애 가망 있나요?"

나는 그 질문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가끔은 조금 다른 질문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 아이가 수학을 덜 무서워하게 됐나요?”

그 질문을 받으면 나는 훨씬 길고 기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오늘도 칠판 앞에 선다.

아이들이 문제를 풀다가
“저 수학 못해요”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건 아직 모르는 거야.”

수학은 이상하게도, 나도 그랬듯,
어느 순간 갑자기 보이는 과목이니까.

그리고 사람은 생각보다 오래 걸려서 이해되는 존재니까.

다음 글에서는 N잡으로 살면서, 내가 가장 자주 고민하게 되는 질문 하나를 이야기해보려 한다. 나는 이 학원이란 시스템 안에서 어떤 어른으로 서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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