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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은영 Oct 27. 2024

사는 게 재미없던 날의 일기

어느 날, 문득 내 삶이 숙제처럼 느껴진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반복적인 하루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조차 흐릿해진 채로, 그저 또 하나의 할 일을 끝마치듯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다는 기분. 사람들은 종종 “여한 없이 산다”라고 말하지만, 나는 과연 그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지금 이대로 숨이 끊어지는 순간이 온다 해도, “잘 놀다 간다”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죽음”이라는 단어가 자꾸 머릿속을 맴돌았다. 오래 사는 것이 이렇게나 끔찍하게 느껴지는 건, 어쩌면 매일을 진심으로 살아내지 못한 내 불안과 무기력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는 삶을 숙제로 여기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무기징역수처럼 버티고 있는 걸까?


언제부터 재미라는 감각이 이렇게 희미해졌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한때는 나도 새로운 것을 탐하며 소유의 욕심에 들떴다. 하지만 지금은 집 안에 쌓인 물건들이 오히려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다. 유튜브나 TV를 보며 잠시 타인의 삶을 기웃거리다가도, “왜 이렇게 남의 인생을 소비하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문득 든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아도 옛날처럼 설레지 않고, 쇼핑도 더는 나를 끌어당기지 않는다. 그러니 가끔은 내가 진정 재미라는 것을 알기나 했는지, 혹은 그게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 무의미하게 헤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재미는 어디서 찾아야 하며, 내 삶 속에서 어떤 의미로 자리 잡아야 하는 걸까?


어쩌면 재미란 외부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결핍에서 시작되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가 자꾸 무언가를 바라보고, 더 가지려 하며, 새로운 자극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우리 마음속에 채워지지 않은 틈, 어떤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자 하는 갈망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외부에서 가져온 무언가가 그 빈 공간을 진정으로 채워줄 수 없다면, 그것은 결국 덧없는 반복에 불과할 것이다.


그렇다면 진정한 재미란, 아마도 그 빈 공간을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고, 오히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텅 빈 여백 속에서 스스로를 마주하고, 나만의 길을 찾아가려는 마음가짐, 그것이 바로 내가 찾고 있는 재미일지도 모른다.


요즘 나는 차츰 작은 것들에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침 햇살이 창가로 흘러드는 순간, 따뜻한 커피 향이 코끝을 간질이는 순간,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예전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을 소소한 장면들이, 조금씩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때로는 그저 고요히 앉아 창밖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편안해진다. 새로운 자극이나 외부의 확신에 의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일상 속에서 순간의 기쁨을 발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물론, 여전히 때때로 텅 빈 기분에 사로잡힌다. 한밤중, 불현듯 밀려드는 공허함에 눈을 뜨면 “내가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일까? “라는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사람들은 “즐기며 살아라”라고 말하지만, 나에게 즐긴다는 건 과연 어떤 의미일까? 이 물음에 답하는 길이 멀고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나는 점점 그 답을 찾아가려는 마음을 품는다. 외부로 향했던 시선을 조금씩 내면으로 돌리며, 그 답을 안갯속에서 더듬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결국 재미란 타인이 규정해 놓은 어떤 것, 혹은 사회가 부여하는 가치로부터 벗어나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감정일지도 모른다. 가득 채우는 기쁨이 아니라, 비어 있는 그대로의 여백을 허용하는 것. 그 빈 공간 속에서 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남들과 다른 나만의 걸음걸이로 천천히 나아가는 것. 진정한 재미는 결국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바라봄 속에서, 나만의 방향과 목표를 찾아가려 한다. 남의 인생을 구경하며 잠시 설레는 것이 아닌, 나 자신이 중심이 되어 온전히 살아가는 삶. 내가 진정으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고, 때로는 불확실함 속에서도 방향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것. 그 여정이 바로 내가 진정으로 찾고자 하는 재미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지 않고, 그저 남의 인생을 구경하며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진정으로 내 삶을 살아내는 재미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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