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삶보다 죽음을 더 깊이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살아 있다는 환희나 아름다움에 도취되기보다는, 죽음이라는 끝이 정해진 유한한 삶의 틀 속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그래서일까. 환희 대신 깊은 고요를, 기쁨 대신 묵직한 슬픔을 더 자주 느낀다. 그런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왜 나는 죽음을 자주 떠올릴까? 왜 삶의 밝은 면보다는 그늘진 면을 먼저 마주하게 될까?
이런 의문은 때때로 내게 외로움을 안겨주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나와 비슷한 사람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들이 나를 위로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삶의 밝은 면을 찬양하지 않았다. 오히려 죽음에 가까이 다가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냈고, 그 안에서 삶의 본질을 찾으려 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이상하게도 마음에 닿았다. 그 이유를 몰랐다. 그냥 좋아서, 그냥 내게 필요해서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날, 한 문장에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서야 비로소 현재를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 문장은 내 머릿속에서 모든 조각을 맞춰주었다. 나는 죽음을 생각함으로써, 현재를 더 진지하게 바라보려 했던 것이다. 죽음은 나를 두렵게 하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미래에 현재를 저당 잡힐 필요도, 어제의 후회 속에 매몰될 필요도 없었다. 죽음의 끝이 너무도 확실하기에, 나는 오히려 지금을 붙잡을 수 있었다.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것은 내게 더 본질적인 것에 집중할 기회를 주었다. 삶의 표면적인 것들에서 벗어나, 정말로 중요한 질문들 앞에 서게 했다. 그리고 그런 질문들에 답을 찾기 위해 책을 펼쳤다. 책 속의 사람들은 나보다 훨씬 더 깊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 죽음을 사유했다. 어떤 이들은 죽음 앞에서야 비로소 삶의 본질을 깨달았고, 그 깨달음을 목숨과 맞바꿔 글로 남겼다. 그런 책을 읽을 때면 나는 어쩐지 죄책감이 들었다. 나는 그들이 죽음 끝에서 얻은 지혜를 이렇게 손쉽게 받아도 되는 걸까? 하지만 그 생각마저도 그들이 남긴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통찰을 나누고 있었으니까.
죽음 끝에서 배운 지혜는 내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