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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miverse Oct 07. 2022

[에피소드 1] 어느 찐따의 사랑.

너 말고 니 친구...(Feat.쪽팔림은 나의 몫)

‘네가 결혼하면 축의금 1000만 원 낸다’


늦은 저녁 A와 차를 마시던 날이다. 차의 향을 음미하며, 창밖에 지나가는 행인들을 조용히 구경하고 있었는데 문득 A가 두서없이 말을 던졌다. 꽤나 당황했지만 내가 써 온 찌질한 사랑의 역사를 모두 알고 있는 친구이기에 화가 나기보다 피식 웃음이 먼저 나왔다.


‘왜? 나 연애하고 싶은데.’


‘아니. 넌 딱히 관심 없어.’


‘응. 맞아. 관심은 없지만 연애는 하고 싶어.’


순간 정적이 흐르고 어처구니없는 나의 답변에 둘 다 실소를 내비쳤다.


나를 잘 파악하고 있는 친구들은 내게 이상한 취미가 있다는 걸 안다. 많이 부끄러운 취미라 선뜻 친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취미다. 나는 짝사랑을 좋아한다. 연애를 한 횟수는 딱히 많지 않은데 짝사랑을 한 횟수를 읊으라고 한다면 셀 수 없이 많다. 길게는 2년 동안 짝사랑을 유지했고, 짧게는 3일 안에 끝나기도 한다. 짝사랑을 하는 대상도 다양하다. 친했던 친구부터 시작해서 텔레비전에 나오는 연예인까지. 짝사랑에 빠지면 따끈한 순간을 바로 친구 A에게 전달한다. 처음에는 이유를 물었고, 흥미로워했는데 최근에는 들어주지도 않는다. 읽씹이다. 어쨌거나 짝사랑을 하는데 나는 나만의 규칙이 있다.


‘절대 스토커처럼 염탐하지 말 것’,

‘멀리서만 바라볼 것’

‘마음을 절대 들키지 말 것’

‘만약 짝사랑이 다른 사람과 연인이 된다면 응원해 줄 것’


어떻게 보면 이건 짝사랑이라기보다 덕질에 가깝다. 진정한 팬은 자신이 좋아하는 상대에게 절대 귀찮은 존재로 남아서는 안 된다. 상대가 계속해서 더 멋진 행보를 나아갈 수 있게 멀리서 묵묵히 응원하고 지지해야 한다. 그러니까 이게 나의 사랑법이다.


친구들은 이런 나를 의아해한다. 굳이 가슴 아픈 사랑을 왜 하냐고 묻는다. 맞다. 나도 쿨한 규칙을 만들었지만 새벽 2시 델리스파이스, 검정치마, 너드 커넥션, 라디오헤드, 강아솔의 노래를 틀어 놓고 차마 용기가 없는 나를 원망한다.


그럼에도 짝사랑을 계속 이어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이기에 환상에 가깝다. 정말 원석 같은 소망들은 가끔은 깨지지 않아야 아름다울 때가 있다. 환상이 깨지고 현실이 되면 거기서 파생되는 무수한 경우의 수에 대한 위험을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두 번째는 감정 소비를 나 혼자 부담해도 된다는 점이다. 싸울 일도 없다. 가끔 눈물이 찔끔 날일은 있지만 죽을 정도는 아직 겪어 보지 못했다. 이별의 시기도 자유롭다. 자유롭다는 표현이 어울리는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렇다.


그리고 마지막 이유.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고, 아마 친한 지인들도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처음 안 사실 일 것이다. 정말 부끄러운 이유이자 어쩌면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게 여기까지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 말을 하기까지 정말 서론이 길었다. 너무나 쪽팔리기에 선뜻 문장을 써 내려가기가 쉽지 않다.


나는 어렸을 적부터 늘 사랑에 까임을 당하는 찐따였다. 그래서 사랑이 무섭다. 쪽팔린 순간이 너무나 싫어서 선뜻 솔직하지 못하겠고, 설상가상으로 연애를 한다고 해도 최선을 다해 사랑할 자신이 없다. 버려지는 기분이 싫다. 길 위에 벌거벗은 채 나뒹구는듯한 기분이 썩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에게 사랑은 그런 표현이다. 쪽팔리고, 버려지고 싶지 않고, 구겨질 것도 없는 자존심을 지키는 일. 갑자기 분위기가 고해성사처럼 진지하게 흘러갔지만 사실은 너무나도 웃길 일화가 많기 때문에 슬프기보다 쪽팔린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가 많다고 일러두고 싶다.


초등학교 때였나. 그때는 그랬다. 공부는 좀 못하고 선생님에게 미움받을 짓을 해도 공을 잘 차는 아이가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나랑 같이 몰려다니던 여자애들과 꽤나 친한 사이였다. 때문에 우리 무리와 그의 무리는 하교 후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뭘 하고 놀았는지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다 같이 불량식품을 즐겨했고, 학교 뒤뜰에서 모여 시답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걸로 기억한다. 서른한 살이 돼서 열세 살의 나를 회상하려니 기억이 가물가물 하다. 세세한 모든 것들을 기억하기 어려운데 확실한 건 있다. 그 친구는 힘이 세고, 눈이 크지 않았지만 웃는 게 예뻤다. 뻐드렁니도 있었던 것 같은데 이건 내 착각일 수도 있겠다.


어렸을 적부터 또래에 비해 그렇게 크지 않았던 키, 곱슬머리가 들키지 않게 아침마다 눈꼬리가 승천할 만큼 꽉 묶은 머리, 가끔 이상한 옷을 입고 학교에 나타났던 나를 그 애는 꽤나 재밌어했다. 서로의 생김새로 장난을 자주 쳤고, 서로를 붙잡으러 학교 운동장을 뛰어다녔다. 어렸을 적부터 독특한 정신세계를 갖고 살던 나를 온전히 있는 대로 받아주던 그 친구는 어느 순간부터 ‘친구’라는 이름이 아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열세 살, 처음으로 나의 마음을 흔든 그것. 사랑이라 부르는 것이 다가왔다.


집에 돌아오면 책상에 앉아 그 친구와 나의 이름을 더해 우리의 가능성을 점쳐보기도 하고, 새벽까지 잠을 자지 않고 메신저에 그 친구가 들어오기를 기다리다가 혼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꽤나 열성을 다해 우리의 우정인지 사랑인지 애매모호한 그 감정을 즐겼지만 반대로 이상했다.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또 우정이 것 같기도 한 이 상태. 도통 풀리지 않는 수학 문제 같은 상황. 이제야 생각이 드는데 그때 그래서 참 다행이다. 그 감정을 모두 헤아렸다면 나는 분명히 사랑을 통찰한 철학가였겠지. 모든 걸 알았다면 난 지금보다 더 지독히 사랑을 탐구하려는 호기심이 사라져 있지 않았을까.


어느 여름날 집으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그 전화를 아빠가 받았고 곧이어 아빠는 내게 전화가 왔다며 수화기를 건넸다. 전화를 받자 그 친구였다. 부모님에게 이성관계에 대한 호기심을 전적으로 들키고 싶지 않던 수줍은 나는 조용히 ‘응’이라는 몇 마디만 하고 전화를 다급히 끊었다. 아빠는 무슨 전화냐고 물었고 나는 친구가 우리 집 앞 서점에서 문제집을 사는데 문제집 사는 걸 도와줬으면 한다고 대답을 하고 서둘러 방에 들어가 나이키 로고가 그려져 있는 하얀 카라티에 반바지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묶고 집을 나섰다.


집 앞에서 서점까지는 단 5분이 걸렸는데 그 5분 동안 떨리던 심장 소리가 귀에 박히는 기분이었다. 굳이 이 시간에 나를 따로 부른다는 건 서른한 살 연애 고자가 봐도 분명히 무언가 있다는 추측을 할 수밖에 없었다. 손에 땀이 났고 드디어 서점 앞에 도착했다. 서점에 들어가기 전 밖에서 그 아이를 봤다. 매일 공만 차던 애가 조용히 문제집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웃겼다. 웃겼는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손에는 박스 한 개를 들고 있지 않은가. 저 박스를 받아 든 나를 상상하며 당장 오늘부터 1일이라면 내일 친구들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수십 번의 시뮬레이션을 돌리던 그때 그 친구가 나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오라며 손짓을 했다.


아 이렇게 갑작스러운 건 처음이라 얼굴이 살짝 빨개진 채 서점으로 들어갔다. 그 친구가 내 이름을 부르고 다가오더니 나의 팔을 잡아끌고 인적이 드문 모퉁이로 들어갔다. 그리고 박스를 내밀었다. 박스가 꽤나 컸고, 내가 입은 하얀 카라티에 박힌 브랜드와 똑같은 로고가 그려진 박스였다. 이런 비싼 선물을 날 위해 고른 친구를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이 가라앉았다. 그런데 그때 왜 그랬을까. 도대체 왜 그랬을까.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이거 못 받아’


친구는 의아하게 나를 쳐다보자 나는 다시 한번 쑥스러워하며 ‘이걸 내가 어떻게 받냐’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그리고 혼잣말 아닌 혼잣말로 이거 꽤 비싼 거잖아 라면서 박스를 받지 않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박스를 내 쪽으로 쭉 내미는 게 아닌가.


‘아니.. 이거 받으면....’


내 말이 끝나기도 전 그는 박스를 내 손에 쥐게 했다. 곧이어 그의 입이 떼어졌다.


‘이거 OO이 꼭 전해줘’


어렸던 나는 그 당시 술을 먹어보지 않아서 그때의 감정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그때의 순간을 서술하라고 한다면 술에 잔뜩 취해 실수를 저지르고 기억이 안 난 채 침대에서 일어나 어제를 회상하며 이불을 걷어 차내는 현타와 같았다.


그러니까 이게 내 것이 아니고, 내 친구의 나이키라는 거지. 그니까 네가 좋아하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친구였다는 거지. 나를 보고 웃은 게 아니라 내 옆에 내 친구를 보고 웃었다는 거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내 옆에 있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랐다. 새하얀 피부, 긴 생머리, 수줍음이 많지만 그래도 정의감이 불타오를 때면 늘 앞장서서 목소리를 내던 친구, 학급에서 키가 가장 컸던 친구, 중학생 언니가 있어서 옷을 잘 입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이름까지 예뻤던 친구. 딱 첫사랑 재질 같았던 친구가 이 나이키 박스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이 납득이 되는 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제는 이전의 나의 턱도 없는 상상 속의 나를 깨고 방금 전까지 이 박스를 받아 들 수 없다는 대답을 한 나를 수습해야 했다.


‘걔가 나 싫대? 왜 박스를 못 전해주는데? 전해주면 안 될까?’
 
 꼭 그래야만 했던 걸까. 이렇게 몇 번이고 확인 사살로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지. 나는 버럭 화라도 내고 싶었지만 빨간 얼굴을 채 손바닥으로 가릴 틈도 없이 대답했다.
 
 ‘아니! 네가 줘야지! 그래야 걔가 진심을 알지!’


말도 안 되는 대답이 나와 버렸고, 그 친구는 다시 환하게 웃으며 박스를 뺏어 들었다. 고맙다며 서점을 서둘러 나갔다. 나는 그 서점에 덩그러니 남아 이 짧은 시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고 그때의 쓰디쓴 사랑의 맛은 글을 쓰는 지금도 여전히 입안에 맴돈다. 그날 나는 몇 권의 문제집을 구경했는지 모르겠다. 서점 아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문제집이며 어려운 책들을 뽑아 들어 구경했다. 이대로 집에 들어가면 어른인 부모님이 다 알 것 만 같아서. 아니. 누구든 나를 해석하고 장기의 꿈틀거림까지 느낄 것 만 같아서.


찐따스러운 사랑에 관한 역사는 바로 이 날로부터였다. 모두에게 인정되는 공휴일이 빨간색으로 표시된다면 나에게는 열세 살의 그날이 다홍색으로 물든 날처럼 남아있다. 쉽사리 이런 역사를 끊어지지는 않았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고등학교에 올라가서도, 이십 대까지. 주기적으로 이런 일은 사이클처럼 종종 발생했다. 다행인 건지 혹은 이제 그런 만남 따위 성사되지 않을 만큼 이성을 만날 일이 없는 건지 모르겠으나 사랑에 꽤나 서글픈 일들이 많아서 이제는 사랑이 두려워졌다고 말하고 다니는 게 당당할 지경이다. 나의 사랑은 열세 살 어느 여름날에 부끄러움과 함께 멈춰 버렸다. 사랑을 하고 싶지만 혹여나 혼자만의 착각일까 두려워 섣불리 다가가지 못하던 버릇이 이제는 친구에게 ‘결혼 축의금 1000만 원’이라는 딱지가 붙는 경지까지 왔다.


짝사랑이 좋다. 그런데 짝사랑을 벗어나고 싶다. 그래야 열세 살의 나의 부끄러움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다. 사랑을 하고 싶지 않다. 그렇지만 사랑이 궁금하다. 먼 과거에 멈춘 감정을 자라나게 하고 싶다.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만 할 뿐 어떤 노력이 없지만 확실한 건 언젠가는 꼭 극복하리. 극복의 끝에 용기가 생긴다면 멀리서 바라보는, 짝사랑이라고 둔갑한 덕질이 아닌 사랑을 부르며 나이키 박스를 사랑하는 이에게 내밀어 보는 날이 있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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