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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나몬 롤 Apr 08. 2024

김밥

김밥 좋아요

어릴 때부터 가게를 운영하신 부모님을 두고 있어서 졸업식을 제외하고는 학교 소풍에 부모님이 오신 적이 없고, 단출한 가족 여행이나 외식도 부모님과 함께 해 본 적이 거의 없다. 그나마 사진이 남아 있는 초등학교 6학년 때의 기억이 유일하다. 그것도 우리 가족만의 여행이 아닌 부모님과 친분이 있는 아저씨의 권유로 그 아저씨네 가족들과 함께 다녀온 하루 몇 시간의 가족 소풍이 유일한 가족 여행의 기억이다.


부모님은 늘 가게 일이 우선이었고, 그다음은 어른들 친목 모임이었을 것이다. 자식들에게는 그렇게 인색했으면서 어른들 계모임은 빠지지 않고 다니셨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꽤 서운하다. 물론 어른이 되어 보니, 돈을 버는 것만큼 힘든 일이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 자식들에게 좀 더 시간을 내어서 작은 추억이라도 만들어 주셨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며칠 전에는 갑자기 김밥이 먹고 싶었다.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소풍 때 엄마가 해주셨던 김밥은 너무 크고 두꺼워서 한 입에 넣어서 먹으려면 김밥 내용물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일쑤였다. 친구들 김밥은 조그맣고 알록달록 예쁜 김밥들이었는데, 내 김밥만 순대 같이 못생기고 크고 두꺼워서 친구들한테 외면당할까 바꿔먹자는 말도 하기가 싫었다.

그러나 이런 내 예상과는 달리 소풍 돗자리 위에 그 투박하고 뚱뚱한 김밥 도시락을 열어 놓으면 같은 반 친구들은 그럭저럭 잘 먹었던 것 같다. 음식맛은 좋았지만, 음식을 예쁘게 하는 재주는 없었던 엄마의 김밥이 친구들의 선택을 받지 못해서 내 김밥만 많이 남을까 봐 늘 노심초사했던 나의 근심까지 집어가 주었다.


나는 오로지 나를 위한 김밥을 만들어 보기로 했다.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서 유행했던 '냉이 김밥'을 만들어 보고 싶었지만, 냉이가 나오는 시기를 놓친 탓인지 마트에는 냉이를 찾을 수가 없어 냉이 대신 '세발 나물'을 사서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친 후 물을 꼭 짜고 잘게 잘라 참기름, 소금을 넣고 간했다. 세발 나물을 밥과 섞은 다음, 밥에도 다시 간을 해주고 맛살, 당근, 햄, 단무지, 맛살을 넣고 김밥을 말았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추웠던 한강 ㅋㅋ


"야채가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어."

동생의 오더는 간단히 무시하고 있는 재료 안에서 열심히 말아보았다. 도시락을 만들어서 가방에 넣고 맛있는 빵 몇 가지를 사고, 투명 텀블러에 물도 준비했다. (나는 '알뜰함'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도 물을 사 먹는 데는 인색해서 외출할 때 물은 꼭 챙겨 다닌다.) 도시락은 만들었지만, 어디로 가서 먹는담? 소풍도 놀아본 사람이 논다고 딱히 등산을 갈 것도 아니고...

머리를 굴려 보니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만 가면 한강 공원에 갈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서울에 살아도 한강 공원 간 것도 열 손가락에 꼽겠다. 몇 년 전에 스타벅스 프로모션 할 때 받은 돗자리도 개봉할 겸 한강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생각보다 가까이 있는 한강 공원도 다녀 본 적이 별로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인생 자체를 누리며 사는 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 가족. 놀 줄 모르는 우리 가족. 돈이 없어도 좀 누리고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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