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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국지와 호두과자

일상과 사색

by 오영

게국지라는 음식을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다소 생소한, 충남 서산/태안지방의 향토음식인데, 김장 후 남은 배추와 게장을 담고 남은 게장국물, 게쪼가리와 같은 것을 섞어 만든 찌개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꽃게장의 형태와는 매우 다른, 사실은 김치찌개의 종류 중 하나다.


게국지는 서산에서 태어나신 어머니의 추억의 음식이라서 여러 번 말로만 들어봤지 먹어본 적은 없었다가, 기회가 되어 부모님을 모시고 서산에 들러 먹어보게 되었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게국지의 기원을 알아보다 보니, 참 어려웠던, 식재료를 포함한 모든 것이 넉넉지 않던 시절, 어머니들이 남은 배춧잎들에 팔고 남은 게 쪼가리라던가 남은 게장국물을 구해와 섞어 끓여 식구들에게 먹이던 그런 음식이었던 거다. 처음 내어진 게국지를 봤을 때,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매우 생소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생각 외로 꽤 맛있었다. 특히 김치를 좋아하는지라 일어날 때 즈음에는 남은 것이 없을 정도였다.

먹거리가 풍요해진 요즘은 비주얼로 봐도 매우 단조로운 왜 이런 음식을 먹을까 싶을 정도로 추억의 음식이 되어버린 게국지... 오랜만에 게국지를 드신 어머니는 다행히 좋아하셨고 외할머니가 끓여줬던 그 맛과 더불어, 추억을 같이 드신 셈이 되었다.


게국지를 먹으면서 떠올린 것이 하나 더 있다. 호두과자다. 내가 어린 시절 호두가 꽤 귀했는데 외할머니께서 어디선가 호두과자를 구해오셔서 하나 맛본 적이 있었다. 참 소중하게 먹었었는데, 역시 요즘은 아주 흔해져서 고속도로 휴게소만 가도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그런 간식이 되어버렸다.

내 세대는 그 어려웠던 시절을 벗어나던 시기에 자라왔기에 부모님 세대의 어린 시절이야기는 전설의 고향마냥 흘러간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가 자라온 시대조차도 젊은 세대들에게는 역시 비슷한 느낌으로 비추어질 것이다. 그것은 세대를 거쳐가며 어쩔 수 없는 현상일 뿐이고, 나 역시 그때 어렸기에 또는 젊었기에 추억이 많을 뿐 그때가 좋았지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누군가 능력자가 나타나, 나에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가겠는가?"라고 제안하더라도 나는 다시 살아갈 용기가 없어서,

"좋았던 것도 있고, 젊었던 것도 좋았지만 그건 그냥 추억의 시간으로 남기겠소. 지금이 더 풍요로우니까요."라고 말할 테니까.


풍요로움이라는 것은 듣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단어다. 그리고 그 풍요로움을 추구하기 위해 우리 모두 열심히 달려온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물론 빈부격차라는 것은 여전히 존재하고 커지고 있다 보니, 풍요로움을 향유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나, 몇십 년 전의 삶과 비교한다면 현재의 전반적인 삶은 풍요로워진 것인 사실*일게다.

*한스 로슬링 저, 팩트풀니스라는 책을 보면 말이다.


하지만, 그 풍요로움은 물질적인 것에 집중된 것 같다. 사회 전체적으로는 풍요로움에도 사람들의 마음 한켠이 풍요롭지 못한 것처럼 보이는 것을 보면, 풍요로움의 절댓값이 정해져서 인 것인지, 아니면 사람의 욕심이 많아져서 풍요로움의 허용치가 높아진 것인지 나는 알 수가 없다.

그날 식당에서 처음 본 어머니의 추억의 음식 게국지를 보니, 호두과자가 떠올랐을 뿐이고, 그리고 그냥 그런 생각이 들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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