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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Dec 05. 2023

인피니티 풀 아니고 인피니티 밭

- 텃밭 정리 -

 12월의 햇살이 봄 햇살 같다. 의외로 겨울도 햇살이 따뜻할 때는 정말 따사롭다. 겨울이라고 마냥 춥기만 하면 겨울이 얼마나 괴로울까? 정원이 있는 단독주택에 오고 나서, 그리고 몸이 아파 휴직을 하고 집에서 쉬면서 이 예쁜 초겨울 햇살을 제대로 즐기고 있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힘들어도 그 와중에 배꼽 빠지게 웃을 일도 있는 것이다. 나는 지금 암환자지만 이렇게 12월의 햇살을 맘껏 누리고 즐기며 행복해하고 있지 않은가? 암이 내 인생에 쉼표를 찍어주지 않았다면 죽음이라는 가정을 가져오지 않았다면 이 햇살에 감사하며 이렇게 행복해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땅이 얼어 더 곤란해지기 전에 미뤄두었던 텃밭 정리를 하기로 했다.

 내가 마당에 있으면 언제나 따라와 하루종일 종알거리던 막내딸이 올해 초등 5학년이 되고는 거의 따라 나오지 않는다. 핸드폰과 함께 침대에 뒹굴거리며 주말을 즐기고 있는 우리 꼬맹이를 불러냈다. 엄마 힘들다고 좀 도와 달라고 징징거리면서 불러냈다.  물론 우리 딸에게 이 햇살을 선물하고 노동이 가져다주는 힐링을 선물하기 위해서 나는 꼼수를 부린 것이다. 최대한 불쌍한 척하면서 말이다.

 오후에는 연못 청소를 핑계로 아들을 마당으로 불러낼 계획이다.


 고추와 토마토를 잡아 주던 끈을 풀고 지지대를 뽑기 시작했다. 까만 비닐도 걷고 수박과 참외를 지지해 주던 그물도 걷어내서 차곡차곡 정리했다. 우리 딸의 임무는 마른 고춧대 뽑기이다. 아직 수확하지 않은 배추도 수확해서 차곡차곡 종이 상자에 담아 창고에 쟁여 놓았다. 마른 풀과 얼어서 늘어진 작물들이 뒤엉켜 어수선하던 작은 텃밭이 점점 말끔해지기 시작했다.




 말끔해진 텃밭 위로 하늘이 높고 푸르다.

 우리 텃밭의 이름을 지어주기로 했다. 인피니티 풀이 아니고 ‘인피니티 밭’이다.

 인피니티 풀이라는 말을 가끔 들어 대강의 뜻은 알고 있지만 정확한 뜻을 찾아보았다. 나무위키에서의 인피니티 풀에 대한 설명을 가져와 본다.      


 ‘인피니티 풀은 물이 한 면 이상의 모서리 밖으로 흘러 물의 경계가 보이지 않게 만든 수영장의 일종. 이 경계면이 주변의 물 혹은 하늘과 연결되게 만들어 시각적인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 일반적이기에 보통 해변가, 강가, 아니면 시티뷰/마운틴뷰의 루프탑에 설치된다. 이러한 경관이 있는 입지, 물의 엄청난 무게를 버틸 수 있는 하중 설계, 그리고 유지비용 모두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고급 시설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우리 텃밭은 주차장 루프탑에 설치된 인피니티 밭이다. 경계가 지평선과 푸른 하늘로 이어져 끝내주는 전망을 품고 있다. 하늘이 맑은 날이면 하늘이 정말 높고 예쁘다.      


 집을 짓고 나서 입구에 길과의 단차를 이용하여 지하 주차장을 만들었다. 이 주차장을 처음 만들 때 이웃분들이 한 마디씩 얹어주신 말씀 중에 주차장 슬라브 위의 전망이 너무 좋으니 여기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쉼터를 만들라는 제안이 있었다. 전망은 끝내주지만, 마음 편하게 앉아 놀기에는 길 바로 옆이라 상당히 부담스러운 장소였다. 결국 쉼터는 마당 안쪽 아늑한 곳에 만들고 이곳에는 벽돌을 쌓아 텃밭을 만들었다. 그렇게 하여 전망 좋은 벽돌 화단 텃밭이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인피니티 풀 (사진 출처: Unsplash/Doğukan Şahin)
인피니티 텃밭에서 지평선을 향하여

 말끔하게 정리된 텃밭으로 모처럼 시원한 아이스커피를 한잔 뽑아 왔다. 전망 끝내주는 인피니티 텃밭에서 땀 흘리고 나서 따사로운 겨울 햇살을 받으며 홀짝거리는 커피 한 모금에 고급 휴양지가 따로 없다.

 그렇게 인피니티 텃밭에서 우아한 물놀이 대신 땀냄새가 꼬질꼬질한 삽질과 호미질 놀이를 마음껏 하고 커피 한잔으로 어느 멋진 휴양지의 인피니티 풀에서 놀고 있는 흉내를 내 본다.     


 인피니티 텃밭의 마지막 임무


 마지막으로 일 년 동안 나의 놀이터가 되어 주고 싱싱한 먹거리를 제공해 주던 나의 ‘인피니티 텃밭’에게 나는 오늘 새로운 임무를 부여했다. 그 임무는 바로 겨울 동안 우리 집 음식물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주는 것이다. 주말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남편의 힘을 빌려 밭고랑 중앙을 깊게 파서 계곡을 만들었다. 땅이 꽁꽁 얼기 전에 깊게 파 두어야 겨울 내도록 음식물쓰레기를 편하게 매립할 수 있다. 이 쓰레기들은 내년 4월까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훌륭한 거름이 되어 줄 것이다. 내년에도 풍성한 식탁을 부탁한다. 나의 인피니티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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