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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새올 Mar 23. 2024

7화. 온통 마른풀과 검은 비닐로 덮여 있던 마당


 인생이란 참 알 수 없다. 4천만 원가량의 전 재산을 날릴 뻔한 어려움이 없었다면 마당이 주는 행복을 평생 몰랐을 것이고, 집을 짓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렇게 정원을 가꾸며 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전재산을 날릴뻔한 일이 지금에 와서 보면 고맙기도 하다. 돈을 어느 정도 돌려받았으니 이런 한가한 소리가 나올 수 있겠지만 말이다.

 짐이 다 들어가지 못해 한 달 동안이나 마당에 짐을 널부러 놓고, 겨울마다 결로 때문에 장롱문을 열어 놓고 살았으며 아침마다 욕실 창문에 남편 등짝만 한 얼음 판때기가 매달려 있던 집이지만, 그 집에 사는 동안 집이 좁아서 답답하다는 생각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우리에겐 넓은 마당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 키보다 높게 자라 있던 마른풀을 걷어내고 보니 직원이 농사를 지었던 터라 마당은 마당이 아니라 그냥 통째로 밭이었다. 대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보도(길) 외에는 모든 곳이 밭이었다. 검은 비닐이 골골이 깔려 있었고, 폭 2 미터의 보도도 중간중간 웅덩이처럼 깊게 파여서 이용하기가 곤란했다. 아이들이 넘어져 다칠까 봐 무서울 정도였다. 검은 비닐을 걷고, 고랑을 없애고 땅을 골랐다. 보도블록을 걷고 수평을 맞추어야 했다.


 교사모임과 시민단체 모임이 많은 남편은, 날마다 바빴다. 그리고 보도를 까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 그냥 대충 살자고 했다. 우리는 돈이 없었고, 임시로 살게 된, 우리 집도 아닌 집에 공사비까지 들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보도블록들을 하나하나 들어냈고, 꺼진 곳은 밭고랑의 흙을 퍼 와서 채워 대략 눈대중으로 수평을 맞추고 보도블록을 다시 깔았다. 100여 평이 넘는 마당을 거의 삽으로 한번 싹 다 깎았다고 보면 된다. 내 삽질이 안 닿은 곳은 아마 한 조각도 없을 것이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도 다니고 있던 터라 진행 속도는 느렸다. 아침에 일어나서 조금, 퇴근하고 와서 조금. 시간 날 때마다 조금씩 보도블록을 들어내고 수평을 맞추고 다시 깔기를 반복했다. 한 줄도 좋고 두 줄도 좋고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 하는 심정으로 결국 해냈다. 매일 늦게 귀가하던 남편이 엄지를 올렸다. 그냥 등짝을 한 대 후려치고 싶었으나, 일단 너무 뿌듯하고 기뻐서 참았다. 결국 반이 넘어서자, 하지 말자던 남편도 같이 손을 보탰다.                   

                                                       

보도블록을 고르고 나무피죽으로 기찻길 같은 길을 만든 마당의 모습


마당 텃밭 너머 수돗가 위로 뒷집의 대추나무가 늘어져 있다.


 날마다 내가 보도블록 까는 것을 담 넘어 지켜보시던 뒷집 할아버지 얼굴이 떠오른다. 지금도 건강하게 잘 계실까?

 “하이고! 새댁이요. 팔자니더. ”

 지금도 들리는 듯 생생한 이 말을 난 큰 칭찬으로 이해했다. 보도블록 까는 솜씨가 타고났다는 뜻 아닐까?

 그렇게 보도블록 길을 손보고, 마당을 삽 한 자루로 평탄화 한 다음, 건물 바로 앞은 잔디마당을 만들고 대문 쪽 마당은 양쪽으로 텃밭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자전거를 탈 수 있는 길을 만들고 옆으로는 옥수수를 심어 여름이면 마치 옥수수가 가로수처럼 서 있는 자전거길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길을 기찻길이라고 했다. 인근 제재소에서 피죽(목재를 제재하고 남은 자투리나무)을 싼 값에 사 와서 깔았기 때문이다.


 마당을 정리하고 맨 처음 한 일은, 앵두나무를 사서 심은 일이다. 어린 시절 밭 한 귀퉁이에 심어져 있던 앵두나무가 나는 언제나 그리웠었다. 봄이면 친구들과 함께 바구니 한가득 따먹던 앵두는 사실 맛있열매는 아니지만, 빨간색의 투명하고 영롱한 자태만큼은 너무나 매혹적인 열매였다. 빨갛고 영롱한, 예쁜 열매를 쏟아질 듯이 달고 있던 앵두나무가 내 눈에는 어떤 꽃나무보다도 예뻤었다.



지도 앱의 위성사진과 예전에 찍어 두었던 사진들, 기억을 토대로 그려 본 첫 주택의 모습


 

나무 피죽으로 만든 옥수수 가로수길




                   

                                       

 그때, 근무하던 학교에서 마룻바닥 교체 공사가 있었다. 학교에 양해를 구하고, 버려지는 폐목재를 얻어 난생처음 평상도 만들고 벤치도 만들었다. 목공을 배운 적은 없지만, 종이와 연필로 대강 디자인을 하고 나무를 톱으로 자르고 못으로 박고 스테인을 칠했다. 시작은 내가 하고 남편이 힘쓰는 일을 하면서 마무리를 했다.

 열어서는 안 될 판도라의 상자 같던 간이 창고는 결국 봉인도 못 푼 채  포기하고, 아이들 자전거를 보관할 임시 창고를 만들었다.  마당에 깔고 남은 피죽으로 나무 기둥을 만들고 파란 포장 천막을 덮었다. 포장 천막 때문에 폼이 안 났지만, 어쨌든 자전거가 녹슬지 않도록 비는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오롯이 나의 피 같은 땀과 노동으로 마당 정리를 끝냈다. 나를 도와준 것은 삽 한 자루. 참! 남편이 학교에서 빌려온 도끼 한 자루도 있다. 바쁜 남편이 빌려 오기만 한 도끼로 밭 가장자리를 둘러싼 시멘트 블록을 일부 쳐내고 잔디마당을 만들었다. 좀 후하게 주면 남편의 지분은 이십 분의 일 정도 쳐 줄 수 있겠다. 그렇게 주택살이 준비가 완료되었다.  다음은 마당을 즐길 일만 남았다.

                

평상과 벤치를 만들어 색칠하고 있는 모습. 내 생애 첫 목공 작품이다.  


평상과 벤치를 만들고 있는 엄마 아빠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나무 피죽으로 기둥만 세워 놓은 자전거 보관 창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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