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노조에도 드라마나 영화처럼 극적인 순간이 찾아오기를
우리 노동조합은 13번에 걸친 사측과의 지난한 단체협약 협상 끝에 지방노동위원회에 조정 신청을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행부가 그렇게 지리멸렬한 협상 때문에 피폐해지기 전에 진작 조정 신청을 하자고 했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 노조위원장은 “내가 괜히 노동조합 만들자고 해서 모두를 힘들게 한 건가” 말하기도 했다(괜한 일도 아니고 모두를 힘들게 하지 않았다. 깨닫게 하고 기쁘게 했다.). 너무 지쳐서 그럴 거다.
노조위원장이 나에게 노조 가입을 권유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대로 만족과 불만 사이를 오가며 사무실에 다녔을 거다. “월급 이 정도면 된 거지, 요즘처럼 취업 어려운 시대에 그래도 사무실 다니며 돈 버는 게 어디야”, “다들 쥐꼬리라고 하지만 명절에 상여금이라고 이렇게 받는 게 어디야”, “상사라는 인간이 온갖 독재자 뺨치게 멋대로 하지만, 여기만 이러겠어, 더한 곳도 많겠지” 하면서 말이다. 내가 이런 뒤늦은 고백(?)을 하니 노조위원장은 ‘그저 웃지요’ 하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다.
우리 노조는 집행부 5명에 조합원 5명, 총 10명으로 출발했다. 얼마 전 여기 처음 글을 쓸 때만 해도 우리 노조는 집행부 5명에 조합원 3명이었다. 지금은 집행부 5명에 조합원 2명인데, 곧 집행부 5명에 조합원 1명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집행부가 아닌 조합원은 나뿐이다. 집행부도 정말 힘겹게 버티고 있다. 슬프다. 좋은 사람들이 자꾸 내 곁을 떠나가서 슬프고, 떠나갈 수밖에 없어 슬프다. 그리고 무섭다. 집행부마저 떠나가면 내가 집행부가 되어야 하니까 말이다. 벌써부터 내가 그들만큼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선다.
최악의 상상은 우리 노조를 지키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모습이다. 요즘엔 이런 상상이 더 이상 상상으로 남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에 오금이 저려온다. 상상이 아닐 수도 있겠다 생각하게 만드는 일이 최근 꽤 있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사무실에는 이상하고 나쁜 사측이 자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좋은 뜻을 펼치겠다며 활동하는 시민단체이다 보니 정말 너무나도 이상한 곳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소송을 걸어온다. 송사에 휘말리는 건 난감하고 무서운 일이다. 그런데 하루는 이상한 곳에서 소송을 걸어왔는데, 동료 A는 소송이 끝날 때까지는 사무실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송사에 휘말리는 건 난감하고 무서운 일이지만, 다들 떠난다고 말하는 사무실에서 소송이 끝날 때까지는 떠날 수 없다니... 역설적이게도 소송을 걸어온 쪽에 큰절을 올리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얼마 전 A가 “내년도 사업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사무실 상황이나 이런저런 상황을 생각하면 계획을 세워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라 했다. 화들짝 놀란 나는 사무실 앞날이 걱정인 건지 A 본인 앞날이 걱정인 건지 물었다. A는 둘 다라고 답했다. 흔들리지 않고 버틸 거라 생각한 A마저 앞날을 고민하다니... 정말 속상했다. 내년 생일에 A가 좋아하는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겠다는 회심의 카드를 던지며 내년까지 꼭 있으라는 식으로 말해놓긴 했지만... 남아 줄지는 의문이다.
두 번째
사측은 최근 조직개편을 하며 영상 업무를 없앴다. 영상 업무를 전담하는 동료 둘은 사무실에만 있기 아까울 정도로 실력이 차고 넘쳤지만, 각기 다른 팀으로 흩어졌다. 남일 같지 않고 속이 상했다. 나도 갑자기 내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해야 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다.
상사란 인간이 조직개편 당일 다짜고짜 전화를 걸어 갑작스레 인사발령을 알렸고, 그렇게 나는 갑자기 회원관리 업무를 하게 되었다. 근로계약서에 나온 내 전담업무는 ‘언론 비평’이었지만 말이다. 당시엔 노동법도 몰랐고 상사 지시니 어쩔 수 없다며 체념하고 따를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인사발령으로부터 약 10개월 후, 상사란 인간이 아량을 베풀듯 “넌 줄곧 언론 비평하고 싶어 했지?”라며, 다시 본래 업무인 언론 비평을 하도록 발령 냈다. 기쁨보단 두려움이 앞섰다. 감은 얼마나 무뎌졌을지, 일하는 법을 까먹진 않았을지.. 얼마나 불안하고 힘들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누구보다 날카로운 시각을 가지고 영상 업무를 해내던 동료들의 인사발령이 남일 같지 않았다.
다시 우리 노동조합의 지방노동위원회 조정 얘기로 돌아와서..
우리 노조위원장에 따르면, 조정의 첫 번째 일정인 ‘사전조사’에서 지방노동위원회 측 반응은 한마디로 ‘황당’ 그 자체였단다. 2022년 임금협상에서 사측은 왜 2020년 최저임금을 말하는 건지, 선언 수준에 불과한 조항을 단협에 넣자는 노조 요구를 대체 사측이 왜 받아들이지 않는지 오히려 우리 위원장에게 되물었단다.
바라건대 사측이 제발 이번 조정에서라도 깨닫기를 바란다. 본인들이 무지했으며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말이다. 그래서 사무실은 더 이상 변화할 여지가 없고 성장할 여지가 없다는 우리 노조의 굳은 믿음(?)을 깨주길 바란다. 그렇게 드라마나 영화 같은 일은 정녕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동료들과 생일파티와 가족들과 생일파티에서 두 번이나 간절하게 소원으로 빌었으니, 하늘이 무심하지 않다면 들어주리라 살짝(!)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