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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tterist Dec 07. 2024

책, 너무 많이 보지 마세요.

퇴직 편집자의 시시콜콜.

전 책을 매우 많이 읽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그러니까 글을 대충 읽을 줄 알게 된 후부터는 책을 늘 읽어왔죠. 미취학 아동 시절에는 동화책을 봤고 초등학교 때부터는 대충 이런저런 온갖 책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하게 어떤 인상적인 내용이 기억에 남은 것은 아닌데 어쨌든 ‘달과 6펜스’라는 책을 초등학교 6학년 때 봤다는 기억은 명확하게 있으니 세계문학에도 대충 그즈음부터 많은 관심이 있었던 것 같고요.


소설만 봤던 것은 아닙니다. 인문학, 사회과학, 심리학 등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전문 서적들(글자가 몹시 작고 한자와 영어가 곳곳에 현란하게 섞여있는 그런 책을 저는 전문 서적이라 칭합니다) 역시 꽤 많이 봤지요. 물론, 개중에는 내용의 반은커녕 반의 반도 이해 못 하겠는 책도 꽤 많이 있었지만 아무튼 그런 책들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그것들은 주로 이제 중고등학교 시절에 말입니다.


뭐 특별하고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독서에 무지막지한 재미를 느껴서 그랬던 것도 솔직히 아닌 것 같고요. 책 읽는 것이 지루하고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어린 학생의 좁은 세상에도 책보다 재미있는 것은 수두룩하게 많았으니까요. 예를 들면 스타크래프트나 디아블로, 또 가끔은 위닝일레븐 같은 것 말입니다.


나이가 꽤 든 지금 와 생각해 보면요. 제가 책을 많이 읽었던 것은 제가 어른들 말을 곧잘 듣는 꽤 순한 축에 드는 아이였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저에게 많은 어른들이 “책 많이 읽거라. 그게 좋단다” 와 같은 말을 하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딱히 의문을 품지도, 그닥 반항하지도 않고 어른들의 말을 그저 순순히 잘 듣는다는 것은 순한 아이들의 명백한 단점이긴 하지만 그때는 그게 단점이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제 주변 모든 어른들은 저의 그런 면을 분명 꽤나 좋은 점, 혹은 부러운 점이라 생각하셨을 테지요)


어쨌든, 뭐 그랬습니다. '책 많이 읽어라, 그게 좋단다.' 라는 말은 늘 제 곁에 있었지만, 그 말은 언제나 딱 그 정도로만 있었습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게 왜 좋은 줄 아니? 라는 아주 약간의 진화형조차 존재하지 않았기에 책을 많이 읽으면 이런 게 좋고 그래서 또 이런 게 좋고 결국 이게 이렇게나 좋은 거란다. 라는 최종진화형 설명은 감히 궁금해해 볼 수조차 없었죠.


하지만 이런 생각도 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서야 드는 생각일 뿐, 순한 아이였던 당시의 제게는 아무런 의문도, 특별한 불만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약간의 뿌듯함과 자랑스러움만이 존재했죠. 책을 많이 읽은 덕인지 제 국어 관련 과목들의 점수는 거의 늘 만점이었고 (중고등학교 때 봤던 모든 국어 시험에서 틀렸던 문제가 총 3개였습니다. 수능까지 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글쓰기 경연 대회 등에 나가면 못해도 3위, 잘하면 우승을 차지했었으니까요.


세상 모든 의문이란 결국 불만족에서 싹트는 법일진대 학업에서의 숫자가 준수했기에 저는 더더욱 의문을 품지 않았습니다. ‘책 많이 보거라. 그게 좋단다’ 라는 말은 그렇게 굳이 의문을 품어볼 필요가 없는 무언가가 되었고 그 무언가에 시간에 쌓임에 따라 이 말은 자연스레 일종의 성역이 되었습니다.


아마 저만 그랬던 것은 아닐 겁니다. '책 많이 보세요. 책 보면 좋아요' 라는 말은 이 말을 실천으로 옮겨내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대한 건 차치하고서라도 일단 누구에게나, 그리고 언제나 ‘몹시 당연한 말’이었을 테니까요. 마치 ‘바르게 사세요’, ‘어려운 이를 도우세요’, ‘사람을 패지 마세요’, ‘정직하세요’와 같은 말처럼 ‘책 많이 보세요. 그럼 좋아요’ 라는 말은 언제나 우리에게 당연한 말, 의문을 품을 필요가 없는 말, 설령 의문이 들어 질문을 하면 질문을 받은 이가 외려 당황하게 되는 말, 그래서 딱히 속 시원한 답변을 듣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당연한 말이었습니다.


아무튼, 저 말은 그토록 당연한 말이었고 전 어른들이 보시기에 꽤 괜찮은 아이였기에 어린 시절의 전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것만의 성과는 아니었겠으나 어쨌든 그 덕도 조금은 보며 적당한 대학생, 또 나쁘진 않은 사회인이 되었지요. 이후 저는 사회인으로서의 삶 대부분을 ‘출판사’에서 보냈는데 이는 ‘책’에 대한 신념이나 애착이 딱히 깊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이건 여담인데, 정말로 솔직히 말하자면 제가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된 것은 출판사 이전에 제가 근무했던 곳이 신문사였고 신문사의 회식 문화는 당시까지만 해도 굉장히 박력 넘쳤기에 ‘순한 아이’였던 제가 이를 계속 감당해 내기가 영 버거웠으며, 그러던 차에 살펴보던 사람인에서 정말 우연히도 한 출판사의 조금은 널럴해 보이는 채용공고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출판 편집자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이게 정말 전부입니다. (면접 때 ‘왜 출판사에 오려고 하죠?’와 같은 질문이 안 나왔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출판사 편집자로 일하는 것은 꽤 괜찮았습니다. 책이야 어렸을 때부터 늘 끼고 살던 것이고 그렇기에 글을 만지는 것은 딱히 어려운 일이 아니었죠. 오히려 힘든 것은 간혹 개성과 주장이 남달리 강한 저자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는데 이것 역시 그렇게까지 못해먹겠다 싶은 일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자라는 존재들이 편집자들에게 보이는 개성과 주장, 그리고 아주 가끔의 패악질은 그들이 후천적으로 획득한 ‘저자’라는 지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도 아마 저자가 되기 전에는 책 많이 읽은 아이, 그러니까 어떤 어른들로부터 ‘책 많이 읽어라, 그게 좋다’란 말을 듣고 그 말에 딱히 의문을 품지도 반항을 하지도 않은 채 그저 책을 많이 읽은 ‘순한 아이’였을 확률이 높기 때문입니다) 그들과의 소통은 적당히 취할 건 취하고 내줄 건 내주고 지킬 건 지키는 식으로 충분히 상식적으로 가능했기에 출판사에서의 시간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몸과 마음이 고되지 않고 조금이라도 한가로우면 이내 잡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인간 종의 특징인 걸까요? 아니면 그저 저 개인의 부족함인 걸까요? 출판사에서의 시간이 그리 어렵진 않고 일이 못 견딜 정도로 버겁진 않았던 덕인지 저는 진작에 품어봤어야 할 ‘근데 책을 왜 읽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바로 이 시절에 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출판사 근무 초기에 단행본팀이라는 엄청난 이름의 팀에서 근무를 했는데 이 팀은 그 엄청난 이름에 걸맞게 세상 거의 모든 책을 업무 범위로 두는 그런 팀이었습니다(정확히는 단행본4팀이었습니다). 소설책과 시집은 물론 전문 미술책, 심리학 외서, 교양 과학책, 에세이집, 자서전 등등 온갖 책을 작업했지요. 어떤 카테고리의 책이냐에 따라 해야 하는 일의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지긴 했지만 어쨌든 일 자체의 난이도 때문에 곤혹스러웠던 적은 없었습니다. 다만, 곤욕스러웠던 것은 이제 더는 내 손에 드는 책을 내 마음대로만 고르지는 못한다는 것이었죠.


물론, 이 세상에 책이 참 많다는 것은 출판사 편집자가 되기 이전에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어렴풋하고 옅은, 그리고 평소엔 딱히 떠올릴 일도 없는 그런 생각일 뿐이었죠. 하지만 출판사 편집자가 된 이후, 저 생각은 더 이상 마냥 어렴풋할 수가 없었습니다. 출판업계에서 발표하는 각종 자료 속의 숫자를 통해서, 회사에 출근하면 너무도 당연하게 쌓여있고 꽂혀있는 수많은 책들을 통해서, 그리고 하루가 멀다 하고 몰려오는 수많은 원고를 통해서 저는 아주 선명하게 알 수 있었습니다. 세상엔 책이 참, 많아도 너무나 많다는 것을 말이죠.


출판업계는 늘 출판이 위기에 처해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 각종 통계가 보여주는 숫자들은 그 잦은 위기론에 높은 신뢰도를 부여해주기도 했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제가 출판업 종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 동의가 되지 않았던 것은 ‘그러므로 우린 책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조금은 갸웃한 결론이었습니다.


이건 비단 제가 몸담았던 출판사만의 경영 방침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제가 있던 곳은 발행 종수가 적고, 한 권의 책을 만들어내는데 굉장히 많은 시간을 들이기로 악명(개인적으로는 전혀 악명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업계에선 그리 여겨졌습니다)이 높은 그런 출판사였지요. 하지만 그 악명은 어디까지나 업계 내에서의 악명이었을 뿐, 제가 있던 회사도 사실은 어쨌든 그 나름대로 역시나 더 빠른 출간, 또 더 많은 출간을 추구하곤 했습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었습니다. 출판사도 결국 기업이고 기업은 이윤을 추구해야 하는 법이기에, 그리고 출판사가 당장 매출을 뽑아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떻게든 새로운 책을 빠르게 뽑아내는 것이기에 이는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경영 방침이었지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경영 차원에서의 이해였을 뿐이고 저는 좁게는 근로자, 넓게는 늘 책 구매자의 신분이었기에 이 출판 경영 방침에 대해서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 이제 이쯤에서 숫자 몇 개에 대해 말씀드리는 것이 좋겠습니다.


62,865


작년 한 해 동안 국내에서 새롭게 출간된 신간의 종 수입니다. 이 중에서 대략 15% 정도는 아동용 책과 참고서들이니 이를 제외하고 본다면 약 53,000이라는 숫자가 나오지요. 그리고 1년은 365일이니까 이를 365로 나누어 보면 145라는 숫자가 나옵니다. 새로운 책 145종이 매일매일 나오고 있다는 뜻이죠.


내가 정말 책을 좋아하는 다독가여서 매일 새로운 책을 한 권씩 꼬박꼬박 읽는다 하더라도 내가 읽을 수 있는 것은 145권 중의 단 한 권, %로 따지자면 고작 0.7% 정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루에 한 권씩, 한 달에 30권씩, 1년에 365권씩이나 책을 본다고 하더라도 말이지요.


저는 바로 저 숫자들이 영 갸웃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무척 신기하기도 했습니다. 세상 어떤 회사, 어느 업계가 이렇게까지 “초초초다품종 소량생산”을 하면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한가할 때마다 종종 생각해 보았지만 한가할 때 생각한 탓인지 아직까지도 꼭 맞는 답을 찾아내진 못했습니다. 심지어 이 145와 0.7이라는 숫자는 책이 되고는 싶으나 아직 그러지 못한, 그래서 각 출판사 편집자들의 하드 속에 고이 잠들어있을 무수한 원고들은 제외한 채 나온 숫자일 터이니 아마 전 앞으로도 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내지 못할 가능성이 클 겁니다.


네, 세상엔 책이 정말로 많습니다. 출판업의 위기는 분명하지만 어쨌든 책은 참으로 많습니다. 매일 145종의 책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지요. 그리고 그 145는 어쩌면 이게 정말 좋은 책이라서, 이건 정말 세상에 꼭 필요한 책이라서, 이게 정말 누군가의 시간을 소비시킬 만큼 가치가 충분한 책이라서, 그래서 나온 숫자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145는 어쩌면 이렇게라도 해야만 출판사가 계속 출판사일 수 있어서, 이렇게라도 해야만 혹시  모를 대박을 터뜨릴 수도 있어서, 이렇게라도 해야만 편집자들 월급을 짜게나마 줄 수 있어서. 그래서 나온 숫자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어쩌면 말입니다.


하지만 저 어쩌면이 어쩌면 정말로 사실일 수도 있기에, 그렇기에 우리는 꼭 한번 생각을 해봐야만 할 겁니다.

    

“책을 많이 보는 게 구체적으로 어디에 어떻게 좋은 것인가? 좋다면 또 얼마나 좋은 것인가?” 라는 근본적인 질문, 에지간해선 그 누구도 감히 의문조차 품어보지 않는 저 질문에 대해서 말이죠. 그리고 이에 대해 제가 나름대로 찾아낸 결론이 바로 오늘 글의 제목입니다.


“책, 뭐 그렇게까지 많이 볼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물론 단서가 하나 붙기는 합니다. ‘당신이 출판업 관련자(저자, 저자 지망자 포함)가 아니고 만 15세 이상이라면’ 이라는 단서가 말입니다.


네, 저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린 시절의 독서는 어휘력과 문해력의 향상, 그리고 국어 과목 성적 향상에 도움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으니 그래도 괜찮지만 애석하게도 당신이 그렇게까지 어리지 않다면, 그렇다면 너무 많은 독서는 썩 추천할 만한 행동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이 출판업 관련자가 아니고 이미 15세 이상이라면, 그렇다면 너무 많은 책을 읽는 것이 어쩌면 책을 아예 읽지 않는 것보다도 더 당신의 삶에 해로울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건 왜냐면, 어떤 책들은 실은 읽는 이의 정신을 그저 흐릿하게 만드는 것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로 하여금 ‘내가 책을 봤다’는 알맹이 없는 뿌듯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고, 또 어떤 책들은 성찰은 없으나 현란하기는 한 무책임한 말장난으로 읽는 이를 위로하는 척하여 읽는 이가 훗날 누군가로부터 받을 수도 있는 투박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를 알아차리기 어렵게 하기 때문이며, 또 어떤 책들은 실제로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선 무언가를 정말로 해내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책을 읽은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이미 해낸 것과 같은 착각, 그리고 그에 따른 이후의 더 깊은 절망을 읽은 이에게 선사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어떤 책들도 다 어쨌든 ‘책’이라는 성역과도 같은 단어 뒤에 숨어 마땅히 더 받아야만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아주 쉽게 피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미 충분히 성인이라면, 굳이 책을 너무 많이 보지 않는 게 오히려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생각을 해보자면, 그렇기에 책을 너무 맹목적으로 신봉하거나 독서를 너무 신성불가침한 무언가처럼 여기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진 않았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합니다.


지금은 출판이라는 행위 자체가 어렵고 책이 귀해 이를 정말 닳을 때까지 돌려 봐야만 했던 그런 시대가 아니라 매일매일 145종의 새로운 책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는 그런 시대라는 것을, 그리고 그 홍수처럼 쏟아져 나오는 책들의 대부분은 곧 서점가에서도, 그리고 여러분의 기억 속에서도 마치 안개처럼 사라지게 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 분명한 책들 역시 이들을 읽어내기 위해선 세상 무엇보다도 귀중한 '여러분의 시간'을 들여야만 한다는 것을, 그 귀한 '여러분의 시간'은 어쩌면 훨씬 더 가치 있게 활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혹시 당신이 과거에 ‘책 많이 읽어라, 그게 좋단다’ 라는 이야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시다면 부디 꼭 같이 염두에 두시기를 저는 바랍니다.


책, 이게 그렇게까지 별 거는 아닙니다.

그러니 너무 많이 보지는 마십시오.


한 달에 한 권, 많아도 두 권 정도면 아마 충분할 겁니다.


물론, 신중하게 잘 고른다는 전제하에서만 말이지요.



2024. 12. 07.

서점 창업을 여전히 꿈으로 품고 있는 어느 날에.

레터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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