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etterist Oct 12. 2024

통역을 시작하는 곳, 그리스.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3.

과학을 본격적으로 통역하려면 우리가 꼭 가야만 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그리스, 그것도 이제 요즘날의 그리스가 아닌 아주 오래 전의 그리스.

바로 '고대 그리스'가 그곳이지요.


사실, 이건 꼭 과학에만 해당되는 그런 일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학문은 그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고 올라가고 또 올라가다 보면 결국, 그리스에 닿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동양철학이나 한의학 같은 동양 기반의 학문은 물론 제외하고 말입니다)


서양 문명의 요람이라는 타이틀을 괜히 그리스가 갖고 있는 게 아닌 겁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과학' 역시 아무래도 주로 발전되어 온 곳이 서양이다 보니..그 뿌리를 찾아 올라가다 보면 결국 그리스로 갈 수밖에 없는 것이죠.


그렇다면 '고대' 그리스라는 것은 정확히 언제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따지고 보면 다 똑같이 사람 사는 하루하루일진대, 요때부터 요때까진 고대고 오늘부턴 이제 중세다? ㅇㅋ?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건 사실 다 후손들의 편의를 위한 이름 붙이기에 불과하긴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 명확하게 딱 합의가 된 것은 아니지만요. 

보통 고대 그리스라고 하면 기원전 1100년 즈음부터 기원전 146년 정도까지를 봅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3000년 전~대충 2000년 전 정도의 시기인 것이죠.

(물론 그리스에는 이 시기 이전에도 미노스 문명이라는 꽤나 걸출한 문명이 있긴 했습니다)


어쨌든, 기원전 1100년 ~ 기원전 146년.

대략 한 1000년 정도 지속된 이 시기에 그리스 지역에서는 많은 학문들이 그 첫 싹을 틔웠습니다. 

물론, 그중에는 당연히 과학도 있었고요.


다만, 이제 딱 '과학(Science)'라는 단어가 이 당시에 쓰이진 않았습니다.

과학이란 말이 지금과 비슷하게 사용되기 시작한 건 한참 후인 19세기 중반 즈음부터의 일이거든요.


고대 그리스에서는 과학이라는 말 대신에 '자연철학(Natural Philosophy)'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뉴턴이 쓴 "프린키피아(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 17세기에 쓰인 이 책에서도 과학 대신 자연철학이란 단어가 쓰였음을 볼 수 있다.


음...철학....좋지....근데 철학이면 철학이지, 자연철학이란 건 또 뭣이지...?


혹 생소하게 들으시는 분도 아마 꽤 계실 텐데요.

사실 뭐 크게 별 건 없습니다.


철학이란 건 결국 '깊게 생각하는 것'이죠. 그러니까 자연철학이란 말 그대로 '자연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이란 건 바로 이 자연을 깊게 생각해 보는 일에서부터 시작되었지요. 


그런데..그럼 여기서 또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을 겁니다.


자연을 깊게 생각해 보는 일이라..음..좋지..좋은 일이지..


근데 그게..뭐 그렇게까지 특별한 일인가..?

자연 보고 생각하는 건 나도 종종 하는 건데..?

우리 엄마 프사에도 예쁜 꽃 사진, 산 사진 잔뜩 있는데..?


그럼 나도, 우리 엄마도 다 자연철학자인 건가..?



:)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요. 아주 폭넓게 보자면 그게 맞을 겁니다.


자연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이게 뭐 학위를 따야만 할 수 있거나 시험에 붙어야만 자격이 주어지는 그런 일은 아니죠.

자연을 보고 생각하고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연철학자라 불릴 자격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대 그리스가 조금 특별했던 점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이 '자연을 깊이 생각해 보는 일'을 아예 본인들의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당신의 직업은 무엇입니까?

예, 저는 배관공입니다, 저는 드라마 작가입니다, 저는 야구 선수입니다. (하지만 종종 자연을 보고 느끼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이 정도 수준이 아니었던 겁니다.


"예, 저는 자연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일을 업으로 하는 자연철학자입니다.

오늘은 저 태양이 왜 우리 지구 주위를 저렇게 도는가?에 대해 고민해보고 있습니다"


....오...?!


그러니까 이런 분들이 고대 그리스에는 버글버글했던 겁니다.


혹 이름을 들어보셨을지 모르겠습니다.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헤라클레이토스, 파르메니데스 등등..

모두 고대 그리스에서 활동했던 자연철학자들인데요.


이 분들은 자연을 감상하고 고민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이걸 가지고 다시 다른 자연철학자랑 토론하고 다시 고민하고 또 논쟁하고 또 생각하고...반복반복반복...이게 아예 거의 본인들의 본업이신 분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참...기가 막히게 팔자가 좋은 그런 분들이셨지요.


그럼 이 분들은 어떻게 이렇게 팔자 좋은 일을 하실 수가 있었던 걸까요?


네, 그렇습니다. 이분들은 다 아주 부자셨습니다.


방금 제가 말씀드린 탈레스, 엠페도클레스, 데모크리토스 등등을 네이버나 구글 등에 검색해 보시면 꼭 나오는 말이 있습니다.


'XXX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어쩌고'

'부유한 가문의 일원이었던 XXX는...저쩌고'



그리스의 금수저들이었던 것이죠.


아니 사실 조금 더 엄밀히 말하자면요. 고대 그리스라는 지역 자체가 좀 그런 면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는 당시 해상 무역의 요충지, 중심 지역이었기 때문에 그리스 시민들은 대부분 꽤 부유한 편에 속했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무역이 발전한 지역은 돈을 만지는 법이죠.


기본적으로 활발한 무역 활동을 통해 그리스 지역 자체가 경제적으로 꽤 풍요로웠고, 또 그리스인들은 그리스인보다도 더 많은 수의 노예들을 좀 혹독하게 부렸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속칭 밥벌이 걱정이 별로 없는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니 팔자 좋게 아름다운 자연을 감상하며 이런 고민, 또 저런 고민을 해볼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그리스 자연이 또 좀 아름다운 게 아니잖습니까.. 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을 겁니다)


하여튼 예나 지금이나...

일단 밥벌이가 해결되고 등이 따수워야 뭐가 되어도 된다는 게 조금은 씁쓸하긴 하지만 뭐 어쩌겠습니까.

실제 우리 인류의 역사가 그렇게 흘러왔던 것을요. 


해상 무역의 요충지가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좋은 위치에서 고대 그리스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울 수 있었다.

아무튼, 이 배 부르고 등 따수우셨던 부러운 팔자의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요. 자신들이 몸 담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궁금한 것이 꽤 많은 그런 분들이셨습니다.


먹고살 걱정은 없고 세상은 넓은데 아는 건 별로 없고...시간도 많고...


자연철학이 시작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조건이었죠 :)


이 축복받은 땅에서 그리스 자연철학자들은 많은 것을 궁금해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의 답을 적어보기도 했죠.

(물론, 이분들이 썼던 답 중에는 맞는 게 거의 없습니다만..)


어쨌든 과학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그런 질문을 떠올리기도 했다는 것에 바로 이 그리스 분들의 공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질문이 있었죠.


저게 대체 뭘까..?


또 이런 질문도 있었고요.


저건 왜 저렇게 움직일까?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질문 덕분에 이후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당신의 후손들이 얼마나 갖은 고생을 하며 헤매고 좌절하게 될지, 짐작조차 하지 못하셨겠지만...어쨌든,


그리스 분들은 이런 밑도 끝도 없는, 하지만 중요한 질문을 떠올리시며 그렇게 과학의 씨앗을 한 알 한 알 심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씨앗을 틔우고 키우는 건 이제, 후대의 일이었죠.



(레터리스트의 과학 이야기 4편으로 이어집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과학도 통역이 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