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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Jan 01. 2023

사회 환원

내가 더 나은 세상을 그리는 이유

<장애가 나에게 가르친 것들> 시리즈도 거의 마지막을 향해 달려 가고 있다. 내가 장애를 통해 배운, 어쩌면 가장 큰 모토는 사회 환원이다. 여지껏 이 시리즈에서 장애로 인해 받아야 했던 수많은 시선들을 서술해 놓고 뜬금없이 사회 환원이라니, 의아한 사람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역설적이게도 이 사회 덕분에 이 세상에서 살아간다. 나를 아프게 했던 그 모든 시간들만큼이나 나는 수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그게 한국이 됐든, 영국이 됐든 간에 혼자서 출입하기 어려운 공간들은 늘 존재한다. 당장 우리 학교 캠퍼스만 해도 그렇다. 나는 세계사 학부에 소속되어 있는데, 학부 교수님들의 사무실이 모두 모여 있는 건물만 유독 휠체어로 진입할 수 없게 되어 있다. 강의 시간 이외에 모르는 것을 여쭤보거나 교수님께 에세이 피드백을 받으려면 해당 사무실에서 미팅을 해야 하는데, 당장 입구에서부터 학생증 카드를 찍는 곳이 너무 높아 혼자서 문을 열기조차 어렵다. 어찌저찌 누군가가 문을 대신 열어줬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다른 건물은 그렇지 않은데, 유독 이 건물만 엘리베이터 대신 그때그때 조립해서 작동시켜야 하는 수동식 리프트가 설치되어 있다. 그마저도 이를 작동시킬 줄 아는 사람은 건물에 상주하는 보안 요원 분이신데, 그렇다고 이 분이 1층에만 계신 것도 아니어서 혼자 있을 때는 절대로 이 건물의 방을 이용할 수 없다. 

교수님들께서도 이 상황을 인식하고 문제의 건물 대신 가까운 다른 건물에서 미팅을 진행할 수 있게 도와주셨으나, 너무 개방적인 공간이다 보니 학점이나 에세이 피드백 등 개인적인 얘기가 오갈 때면 사람들이 엿들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안했었다. 결국 학부 차원에서 회의가 진행되었고, 학교에서 아예 휠체어로 들어갈 수 있는 타 건물의 방을 새롭게 우리 학부 미팅 룸으로 지정해 주셔서 오는 2학기부터 사용 가능하게 되었다. 


내가 제아무리 어릴 때부터 장애인의 인권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함께 고민하지 않았다면 나의 목소리는 금세 묻히고 말았을 것이다. 사실 당장 이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는 과정에서도 과연 나의 장애를 소재로 글을 쓰는 게 과연 맞는 일일지 많이 고민했었다. 나 역시도 내가 겪어 본 장애에 대해서만 잘 아는 데다, 과연 나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기는 할지 걱정이 많았다. 스스로 장애가 '나의 전부가 아니라고' 단언하면서도, 어쩌면 나의 글들이 장애에만 과하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나 싶어 글을 쓰려다가 지운 적도 여러 번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또 한 번 이곳에 글을 남기는 이유는, 내가 이 사회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는 만큼 나 역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사람이 타인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서로 소통해야 한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처럼, 나를 비롯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사회와 함께 우리의 고민을 나눌 수 없다. 아니, 오히려 소통이 되지 않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이러면 사회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만 하는 게 아닌, 더 나은 세상을 그리고 현실화하는 데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곳에 올라오는 나의 글들도 어쩌면 그런 사람이 되기 위해 하고 있는 노력의 일환이다.


물론 그 사회 환원의 범위가 장애에만 국한되어 있지는 않다. 현재 전공하고 있는 국제관계학과 세계사는 고등학교 시절 국제 분쟁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국제 분쟁의 원인을 파악하고 평화 이룩에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에 택하게 된 전공이다. 물론 내가 정말 평화구축 (Peacebuilding) 분야에서 일하게 될지는 모른다. 사실 당장의 진로도 확실하지 않아 고민이 많은 요즘이다. 그렇지만 내가 겪어 왔던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을 미래 세대에게 동일하게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나의 개인적 진로야 앞으로 계속 탐색해 나가야겠지만, 어찌됐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는 데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게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사회에 대한 보답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문제에 대해 일찍부터 관심을 보였고, 그게 국제적인 분쟁 (전쟁, 영토 분쟁 등등)이라는 분야를 만나 지금의 내가 공부하는 학문으로 이어진 것 같다. 아직 실무 경험이 없기에 세상 물정 모르는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나의 직업관을 단단하게 뿌리내려 준 것이 바로 나의 장애다. 앞으로 내가 어떤 분야에 종사하게 되든 간에, 내가 장애에 기죽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낼 수 있게 해 주었던 사회를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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