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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슬 Aug 22. 2023

영국에서 취업, 가능한가요?

유학생의 '취뽀'

브런치에는 참으로 오랜만에 글을 올리는 것 같다. 그동안 글을 아무것도 써 두지 않은 건 아닌데, 나의 글에 대해 오래도록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이 글의 주제가 '유학생의 취업'이라서 더더욱 그랬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못하고 지내는 시간 동안, 나는 서울에서 열리는 대학생 외교연수과정을 듣고 외교 현업에 관심이 생겼다. 내가 영국이란 나라에 첫발을 내디딜 때 막연히 이곳에 뿌리를 내리겠노라 다짐했던 날이 무색하게, 나의 삶은 아주 조금씩 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솔직히 이 글을 오래 전에 써 놓고도, 올리는 게 더 무서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늦게나마 올리기로 결정한 것은, 어찌됐건 이 나라에서 자리를 잡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비록 나의 삶은 아닐지 몰라도, 이 나라에서 1년 가까이 지내면서 주위에서 보고, 듣고, 체험한 외국인의 취업에 대해 풀어내기로 했다.



영국에서의 아르바이트

영국에서 정식으로 (먹고 살기 위해) 취업하려면 Skilled worker visa가 필요하다. 그러나 나처럼 학생 비자로 영국에 발을 들인 사람들도 아르바이트는 충분히 할 수 있다. 학생 비자로는 학기 중 주당 최대 20시간, 방학 기간 동안에는 시간 제한 없이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full-time student 이기에, 학업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어느 정도의 생활비를 직접 마련하고 싶었다. 우선 몸으로 일해야 하는 직업들은 다 제쳐놓고, 작년 가을에 학교에서 공식 블로그를 운영할 학생 블로거들을 찾는다고 해서 지원했다가 뽑혔다. 어쩌다가 내 인생의 첫 근로 계약을 학교와 맺게 되었다. 덕분에 한 달에 두 개에서 네 개 정도의 포스트를 작성해 제출하면 매 달 영국 통장으로 학교 명의로 된 월급이 들어온다. 학교 마케팅 부서에서는 포스트 하나를 작성하는 데에 2시간 정도를 투자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므로, 상한인 4개를 꽉 채워 제출한다고 해도 총 8시간 근무다. 학생 비자 근무 제한에 위배되지 않으면서 학교 생활과 병행할 수 있는 적당한 알바였다.


가장 최근에 게재된 글 :)

마케팅부에서 좋게 봐주셔서, 내년에도 블로거로 일할 수 있게 됐다. 이 아르바이트는 1년 단위로 계약하기 때문에, 재계약을 할 때는 다시 이런저런 서류들을 챙겨 제출해야 한다.


나는 여기에 더해 봄방학 기간 동안 신입생들을 위한 기숙사 투어 가이드 활동도 했는데, 하루에 8시간씩 이틀을 하는 단기 알바였다. 학교에서는 일 년에 단 두 번밖에 없는 기숙사 투어라 신경이 많이 쓰였는지, 두둑하게 시간당 알바비를 주었다. 이때 기존의 블로거 알바에 투어 가이드 알바까지 해서 벌어둔 돈은 이후 2학년 기숙사 예치금으로 야무지게 썼다. 부모님 손을 벌리지 않고 내 힘으로 낸 기숙사 예치금의 짜릿함이란.


이렇게 영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National Insurance Number (NI Number)이라고 하는 국가보험 번호가 필요하다. 학생 비자가 있다고 해서 바로 일할 수 있는 건 아니고, 비자 신청할 때 들락날락거렸던 영국 정부 사이트에 들어가서 따로 NI Number을 신청해야 한다. 비자에 비해 1주일~2주일 새 쉽고 빠르게 발급된다. 



Skilled Worker Visa, 그리고 그 이면의 그림자

영국의 모든 직장이 Skilled worker visa를 지원해 주는 건 아니다. 그말인 즉슨, Skilled worker visa의 스폰서인 직장을 찾아 취업해야만 이 비자를 간신히 신청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 어떤 직장들이 skilled worker visa를 대 주느냐가 문제인데, 사실 스폰서 직장들의 분야는 한정적이다. 가장 대표적인 건 대학(교육계)이나 정부 부처/공무직/의료계를 꼽을 수 있고, 기업들 중에서는 컨설팅이나 투자 은행, 금융가, IT 계열, 엔지니어링 관련 기업들이 자주 거론되는 편이다. 그 중에서도 컨설팅과 투자 은행에 대한 선호도가 매우 높다. 아무래도 당장 학부 1학년들에게도 방학 기간을 활용해 참여할 수 있는 기업 연계 프로그램이나 인턴 기회가 많고, 연봉이 높아 취업에 성공하기만 하면 영국에 자리잡는 건 시간문제라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우리 학교 학생들 사이에서는 과를 불문하고 컨설팅이나 투자 은행 중 어느 하나도 희망하지 않으면 우리 학교를 다니는 게 아니라는 자조 섞인 농담이 쉽게 오갈 정도다. 나처럼 국제관계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국제기구를 바라보는 경우도 상당히 많지만, 국제기구는 최소 조건이 석사 학위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학부 학위만 가지고도 빠르게 취업할 수 있는 루트들을 선망하는 추세다. 


특히 Skilled worker visa를 취득한 후 5년이 지나면 영주권 지원 자격이 갖춰진다는 면에서, 영국에 아예 눌러앉을 생각인 유학생들에게 skilled worker visa는 필수다. 이때 영국은 지원하는 업무와 관련된 경험을 중시하기 때문에, 많은 동기들이 1학년 1학기부터 인턴 지원을 위해 열을 올린다. 해외 취업을 위해 인맥을 쌓을 수 있는 사이트인 LinkedIn을 활용해 정보를 구하는 건 당연하고, 이력서 관리부터 인턴 소식을 알린다. 가끔은 우리 학교가 취업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인재 풀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 학교가 만들라고 해서 만든 LinkedIn을 보고 있노라면 자괴감에 빠질 때도 있다. 이미 고등학생 때부터 잘하는 아이들만 모아놨으니 그런 것도 있겠지만, 스크롤을 내려도 내려도 누군가의 인턴 합격 소식이 끝없이 보일 때마다 불안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마치 내가 남에게 가장 보여주고 싶은 (업무 관련) 모습과 좋은 소식들만 뽑아서 나라는 사람을 재구성해 놓은 것 같달까. 


실제로 나는 LinkedIn을 통해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시는 석사 분과 연락이 닿았고, 운 좋게도 그 분의 석사 논문을 위한 인터뷰 통역을 도와드릴 수 있었다. 여름 방학 동안 한국에 직접 오셔서 연구를 해야 하는 주제라고 하셔서 선뜻 나섰는데, 인터뷰를 따라다니면서 통역할 때마다 나의 관심사와 강점을 뚜렷하게 찾아나갈 수 있었다. 때문에 LinkedIn이 무조건 나쁘다고 단정지을 순 없지만, 가끔은 이런 사이트가 빠른 취업만이 옳은 길이라고 부추기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 같아 힘이 빠질 때도 있다. 특히나 영국은 학부가 3년이기 때문에, 바로 이어서 석사 (1년) 공부를 할 게 아니라면 졸업 후 2년 안에는 skilled worker visa를 대 주는 직장을 찾아야 계속 영국에 머물 수 있다. (참고로 학부를 졸업하기 전에 graduate visa를 신청해서 통과해야 그나마 졸업 후 2년이라는 기간이 추가적으로 생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처음에는 내가 원하는 직업이 무엇이라고 차마 뚜렷하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내 모습이 스스로 한심하기도 했다. 다들 1학년 1학기부터 본인이 일하고 싶은 분야를 일찌감치 정하고 이에 맞춘 스펙을 쌓으며 달려나가는데, 나는 왜 아직까지 (1학년이 끝날 때까지) 시작조차 못하고 있는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글 서두에 적은 것처럼, 이번 여름 방학 동안 들은 2주 간의 대학생 외교연수과정을 통해 외교관이라는 꿈의 씨앗을 싹틔웠다. 물론 아직까지 100% 외교관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고, 2학년 동안 연구직과 관련된 체험을 해 보고 2학년 말에 외교 실무와 대외정책 연구직 중에 하나를 선택할 생각이다. 대외정책에 관한 일을 하고 싶다는 건 확고해졌는데, 방향성에 대한 고민인 셈이다.
그리고 대외연 동기들과 취업 이야기를 하다가 놀랐다. 나는 이제서야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너무 늦은 게 아닌가 했는데, 오히려 동기들 눈에는 내가 빨라 보였나 보다.



영국에서의 취업

영국에서 취업을 잘할 수 있는 / 불리한 인간 군상은 없다. 정말 솔직히 없다. 다만 본인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빠르게 알아차리고, 정말 그 분야에 미쳐서 관련 경험을 많이 쌓을 수 있다면 무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기서부터는 내 경험담보다는 이미 취업하신 선배님들의 사견인데, 회복 탄력성이 좋아야 한다고 하셨다. 이건 어느 나라에서 취업하든 동일한 조언일 것 같지만, 처음 서류 단계에서 최종 면접에 합격할 때까지 정말 수없이 지원하고 탈락의 고배를 마시기를 반복하셨다고 한다. 그러니 당장의 불합격 소식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지원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곳에서 다양한 취준 경험을 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선택과 집중. 대부분의 기업 연계 프로그램 / 인턴을 지원할 시기가 다가오면, 많은 학생들이 잠시 학업에 손을 놓고 이력서와 면접 준비에 시간을 투자한다. 안타깝게도 그 시기는 대부분 학부 시험 기간과 겹친다. (모든 과에 해당되지는 않는다) 그 와중에 어떤 기업들은 학점마저도 다 챙긴 지원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본인이 정말 원하는 게 무엇인지 판단하고 전략적으로 시간을 보내야 한다고 하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개인의 가치관과 잘 맞는 일인지 충분히 고민할 것을 강조하셨다. 물론 영국으로 유학을 온 건 맞지만, 꼭 영국에서만 취업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남들이 다 하니까 나도 해야 해' 가 아닌, 지속 가능한 업을 생각해야 취업 준비 과정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그나마 유연하게 다루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영국에서 취업하기로 결정했다면, 유학생이라고 겁먹지 말고 충분히 역량을 보여주기를 조언하셨다. 어떤 길을 선택하든 후회는 남지 않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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