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사진을 찍는가?
복학 전,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과 영상을 무진장 찍어댔다.
한국 남성은 전역 후와 복학 전, 붕 뜨는 이 찰나의 틈이 신분의 제약을 받지 않고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전역을 앞둔 "예비" 예비군들의 들뜬 대화는 여행의 설렘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면 포기해야 하는 18개월의 젊음을 다시 되찾으려는 노력의 일환이었겠지만, 미국에서 고등학교 생활을 하며 충분히 이곳저곳을 많이 다녀본 내게는 그다지 흥미로운 전역 계획은 아니었다. 그래서 복무를 치고 사흘이 채 지나지 않아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칼바람을 맞으며 홀로 서울로 상경해서 자취를 시작했다.
여행은 사치였다. PX (군인 마트)도 필요할 때만 가면서 모아 온 안타까운 군인 월급을 경비로 소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신분의 제약을 받지 않을 때가 내 인생을 전환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믿었고, 실제로 서울에서의 자취 경험은 나의 삶에 꽤 유의미한 영향을 미쳤다. 학원을 다니며 인생의 윤곽을 좀 더 구체화시켰고,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맛보고, 혼자 살림을 꾸리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몸에 익혔다.
그렇게 겨울이 지나고 봄이 찾아왔다. 날이 풀리고 자취생활의 종점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한국의 금수강산을 꼭 눈에 담아두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난 다른 군인들보다 보상 심리가 많이 늦게 자극된 모양이다.
5월 말, 본격적으로 국내 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제주도부터 시작해서 강릉, 부산, 대구, 광주, 울산 등등 눈길과 발길이 이끄는 곳으로 행진해나갔다.
이런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기록, 사진과 영상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여행을 기록했다. 다르다고 힘주어 말할 수 있는 이유는 SNS 때문이다. 동나이대 세대들이라면 필수적으로 하는 SNS를 나는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들에게 잘 보여야 할, 혹은 잘 보이고 싶다는 명분이 존재하지 않았기에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장소의 온도, 바람의 세기,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좀 더 섬세하게 바라보고 나의 그러한 시선을 사진과 영상에 담을 수 있었던 듯하다.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진과 영상을 찍는 것이라는 조금 비관적인 시선을 거두고, 우리는 왜 여행을 가서 그토록 열심히 기록에 열중하는지 문득 궁금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다.
여행을 다니면서 사진과 영상을 찍는 이유는 기록을 하기 위해서다. 그럼 기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그 순간을 추억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사진과 영상이라는 도구로 여행의 찰나를 디지털 세상 속에 얼려버림으로써 언제든지 다시 꺼내어 즐길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구비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이다. 그럼 왜 우리는 그 순간을 추억하고 싶은 욕구를 가지는가. 이 역시도 확실치 않지만, 내 생각에는 우리의 일상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해서인 것 같다.
무한한 자유는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어둠 없이는 빛이 존재하지 못하는 것처럼, 지루한 일상이 존재해야 가슴 설레는 여행 또한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일상이 여행이라면 여행은 존재하지 않는다. 매 순간이 행복하다면 행복하지 못한다. 상대적인 요소가 반드시 존재해야 우리에게 소중한 것이 소중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사진을 찍는다. 우리의 일상이 완벽하지 못하기에, 그리고 여행을 하고 있는 지금 당장의 기적을 담고자 우리는 기록을 한다.
항상 그렇듯, 의미는 본질을 잃고 잘못된 방향성을 낳기도 한다. 좋은 순간에 찍은 여행의 기록들이 곧잘 반복되는 일상과 비교되며 추억이 아닌 열등으로 번져 스스로의 일상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게 되기도 한다. 자기 전 만지작대는 휴대폰 속 작년 여름에 떠난 바캉스의 기록이 칼바람을 맞으며 등교 혹은 출근하게 될 내일의 일상을 비난한다. 당장이라도 일상을 그만두고 훌쩍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여행의 정수를 느끼며 활짝 웃고 있는 사람도, 장소도 모두 나이고 내가 갔던 곳이지만 비교하게 된다. 그래서 다음 여행을 갈 때 더더욱 기록에 집착하게 된다. 비교하며 느꼈던 열등감을 상쇄시키고자 일상을 견디며 쌓아둔 갈증을 해소하고자 더 예쁜 사진, 더 눈에 띄는 장소, 그리고 사진에 잘 나올 법한 옷, 몸매, 등등 모든 것이 여행의 흔적을 중심으로 흘러가게 된다. 분명 나 좋으라고 하는 건데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여행의 본질이 무엇인가. 일상과 다른 새로운 장소와 사람을 마주하고 낯선 공간 속에서 익숙해져 가는 것. 그리고 익숙해져 가는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배우게 되는 부분들을 간직하고 다시 일상 속으로 돌아갈 수 있는 힘을 충전하는 것. 이것이 내가 규정하는 여행의 본질이다. 하지만 사진과 영상이 주목적이 되면 그 순간을 즐긴다기보단 남기기 위해서 모든 행동이 결정된다. 최대한 예쁘고 더 많이 기록하기 위해 내가 어디서 무엇을 느끼는지 알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이곳저곳 찾아다니는 것이다. 당장의 그 소중함을 몸소 느끼지 못하고 벌써부터 나중을 생각하고 있는, 있는걸 그대로 감사하지 못하는 슬픈 사고방식이다.
일상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한다면 여행의 의무감 또한 가벼워지고, 기록에 대한 집착도 같이 사라지게 되지 않을까. 무게를 가볍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는 일을 줄이는 것도 방법이지만,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다 열정적으로 바꾼다면, 내면의 소리를 듣고 내가 원하는 일상을 끊임없이 추구한다면 그것대로 방법이 될 것이다. 홀로 여행을 떠나는 것도 또 다른 방법이다. 분명 어색하겠지만, 온통 사진으로 쏠리던 신경이 스스로를 향하게 되면서 자신의 일상과 여행의 의미를 곱씹어 볼 수 있는 경험이 될 것이다.
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고 잠시나마 행복했던 순간들을 추억함으로써 기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고 다시 일상 속 삶의 문제들을 대면할 용기를 얻는다면 분명 사진은 그만한 값어치가 있다. 여행을 다니며 자라나는 아들 딸들의 흔적을 고체화시키고자 찍는 사진들은 얼마나 가치 있는가. 그러나 사진을 찍는 이유와 여행의 본질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필자 또한 다시 여행을 떠날 그 언젠가를 기약하며 일상 속 다양한 의미들을 되새기며 하루하루 살아가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