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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Nov 18. 2022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옛 시대의 철학자들, 근현대의 지성인들을 늘 동경했던 것을 보면, 나는 모든 사물과 사건에 나만의 생각을 갖길 바랬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대학교, 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내가 하고 싶은 방식대로 해본 적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크다. 등록금부터 생계를 나 스스로 책임져야 했기에 장학금을 받기 위해 학점이 잘 나오는 안전한 방식을 택했고, 그 방식은 지금까지 꽤나 잘 먹혔다.


나름대로 원했던 회사에 취직해서 내게 주어진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해나가는 것이 즐거웠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부질없고, 권태로운 시점이다. 개인적으로는 나의 삶을 돌아보고,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저 주어진대로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나만의 생각을 갖기 위해 늘 투쟁하고 있다. 최근 읽었던 막스베버의 책은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제목부터 거리감이 느껴진다. 말은 어렵지만 사실 내용은 아주 간단하다.

결국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 자본주의가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었는가를 바라보는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자본주의라는 경제 질서를 통해 움직이고, 개개인들은 선택의 여지없이 그 공간 속에서의 삶의 방식을 습득하게 된다. 결국, 좋든, 싫든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삶의 방식을 익혀야 하며, 반대로 자본주의를 이해한다는 것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상당 부분을 이해하는 것이다.


이 세계를 만든 원동력은 무엇인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막스 베버는 현대 자본주의 체제를 있게 한 근원을 자본주의 '정신(윤리)'에서 찾았고, 그 정신은 특정한 '종교 사상(청교도, 개신교)'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종교에 기인한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납득이 어렵다. 일반적으로 (개신교를 비롯한 많은) 종교에서는 소유 지향적 삶을 지양하고, 부의 축적을 선한 것과 대비되는 일종의 '악한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왜 그럴까?

중세시대에는 "내가 구원받은 자에 속하는가"에 대한 질문이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대한 의미를 지녔다.


이에 대해 가톨릭은 주기적으로 기도하고 죄를 회개하는 '고해성사'를 통해 사람들의 불안감을 진정시켰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선행'을 참여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윤을 추구하는 행위는 이와 대비되는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16세기 칼뱅과 그 정신을 계승한 17세기 청교도는 이와 달랐다. 이들의 신앙은 가톨릭이나 그 이전 루터교와는 반대로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운명을 미리 정해두셨다는 '예정설'에 기반한다. 또한 '고해 제도를 완전히 폐지' 함으로써 죄 사함의 용서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였다.


내 운명이 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의 불안을 자극했고, 이로 인해 자신이 구원받은 자에 속하는지를 확인하고 싶은 욕구는 더욱 강해졌다. 즉, 현세에서 이를 확인하고 싶어 했으며,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노동’이 이를 증명한다고 보았다. 또한 노동을 통한 부의 축적을 긍정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시작했다(단, 부를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기는 것은 동일하다).


이미 예정된 것은 바꿀 수 없지만, 노동의 가치를 신성시 여기며 그런 행실을 지속적으로 행하는 사람은 구원받은 자가 틀림없다는 풍조가 이들을 중심으로 만연해져 갔고, 노동을 통해 부를 축적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당시의 이상향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과 단절되지 않고, 세속적인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목적은 현세가 아닌 내세에 있었다. 결국 종교로부터 시작된 일종의 윤리가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효시가 되었다는 것이 막스 베버의 주장의 핵심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다양한 측면에서 자본주의 발전이 적합하지 않았던 유럽 국가에서 어떻게 중국과 인도와 같은 국가보다 먼저 자본주의 사상이 자리 잡았는지를 보여주는 다소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베버는 단지 가설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이를 실증적인 방식에서 접근하고자 하였고, 경제체제(하부구조)가 이데올로기와 문화, 종교와 같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마르크스의 유물론과는 정 반대로, 보이지 않는 정신의 세계가 하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관점을 제시함으로 현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정신이 물질을 지배할까? 물질이 정신을 지배할까?

그에 대한 답은 아직도 불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새로운 관점이 생겼음에 감사함이 생긴다.





막스베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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