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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Jun 30. 2024

이상, 요상, 괴상, 묘상한
3명의 나

'현실적 자아와 내면의 자아'에 대하여

책 속에서 내가 보일 때 이상한 감정에 휩싸인다.

어? 난데? 내가 이런데? 싶은 신기함, 

그도 나도 같구나 싶은 동질감,

나도 이래야 하나? 이렇게 될까? 싶은 두려움과 설레임,

누구나 이렇게 사는건가? 싶은 한심함과 억울함까지.     


이런저런 감정이 읽는 글들과 접목되면서 

하나의 영상이 머리속에 그려지고

그 영상을 글을 써내려가다 보면 더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된다.

분명 내가 들여다 보인대로 쓰려 하지만 

표피를 뚫고 내 속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나를 멈칫 망설이고 미루고 주저하게 만드는 요상스런 감정.     

망설이는 것은 아닌데 보지 못하는 것도 같고 

보려는 것 같은데 여기 말고 저기부터 보자고 날 달래는 것도 같고

아무 뜻도 없는 짤막한 허위의 첫문장을 쓰기까지 일생이 걸린다(주1)는 위대한 시인의 마음을 그대로 전수받은 듯 첫문장을 쓰는 데 일생이 필요한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도 같고


여하튼 한 줄 쓰기까지 

나는 시작부터 나와 사투를 벌이고

사투는 내전으로 번지다가,

휴전으로 이어지기도,

협상으로 이어지기도...


암튼 이 때 등장하는 

또 다른 나의 시선, 

'관찰자로서의 나'의 

등장은 더 괴상하고 묘상한 경험이다.     


이상에서 요상, 괴상, 묘상으로 감정이 진화될 때쯤 나는 알아챈다!

그들의 등장을.


나는 셋이다.

책상앞에 앉아 있는 나의 양쪽 어깨에서 일란성인지 이란성인지

나와 닮은 꼴 동그란 얼굴 2개가 스르륵 고개를 내밀며

나는 셋이 된다.     

책상에 앉아 내 속으로 들어가려는 제1의 시선

내 속에서 나오지 않으려는 제2의 시선

1, 2의 나들을 들여다보는 관찰자인 제3의 시선     


휴전을 선언한 듯 도대체 연계성이 없이 따로인 이들 셋은

언제쯤 연합하여 언제쯤 주도자를 정하고 언제쯤 평화를 위한 전진을 시작할지

과연 하기나 할른지,

아니면 가장된 평화, 억류된 안정 속에서 이리 계속 살 것인지

이를 관할하는 제4의 시선까지 동원해 셋 다 아무말말고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인지    


분할된 내가 분절직전으로 가는 듯해 난 간절해진다.

나의 통합을 시도하는 새벽의 묘상한 경험이 조금씩 미워지고 버거워지기도 한다. 

이는 나만이 가진 나를 움직이는 비법이자, 

내가 내게 준 특권인데도 말이다.


내 인생의 희비극을 연출, 관람할 수 있는 특권.

과거 비밀스런 시간들을 조종수정삭제첨가할 수 있는 특권.

현실과는 다른 환상을 인생에 개입시키거나 외면해버릴 수 있는 특권.

모든 시나리오의 소재와 무대배경에 채도와 명도탁도를 조정, 결정할 수 있는 특권.    


모든 특권이 나에게 주어져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3의 시선이 따가워 머뭇거릴 수밖에 없는 묘상한 경험.     


나에게만 주어진, 나만이 아는, 비밀스러운 나의 천재성을 발견하고서도 

용과 뱀이 공존하는 인간속에서 실현해내는 것은 내 의무가 아니길 바라는, 

'고통'이라는 쓴맛은 피하려는 제 1의 나는 다른 시선들과 타협을 시도하지만

'진짜 나'로서 내 안에 들어앉은 제 2의 나와 

전체를 꿰뚫어보는 제 3의 나는

책상 앞 제 1의 내게 지나치게 날카롭고 냉정하다.

천재성을 사장시키거나 외면해버리는 것은

한 인간에게 명한 우주의 지혜를 매장시키는 인류의 소실이 분명할텐데 


나는 나의 '비밀스런 천재성' 

'요람에서 아직도 강보에 쌓인 채 웅크린 나' 사이

이 멀고도 거리에 

과연 '실현'이라는 열매가 맺힐 것인가 의심하고 돌아서려는 유혹에 매혹당하고 있으니 

참으로 비참하다.    

 

나의 비참함을 숭고함으로 격상시킬 수 있는 정신은 무엇인가?

본능에 충실하고자, 

선(善)을 추앙하고자, 

나를 내려놓고자, 

내가 그려놓은 미래를 증명하고자,

그렇게 나를 이끄는

위대한 영혼을 따르고자 하는 순종의 정신...

그것이 아니던가.....! 


제 3의 나의 조종에

제 2의 내가 반응하니

제 1의 나는 없는 것이 낫겠다.

이들의 정신과 타협하여 이길 수 있는 그 어떤 힘도 필요없음을 알면서도 

제 1의 나는 의병의 의지까지 겸비해 덤벼들 때 

나는 참 비겁한 것에 용감한 정신의 소유자라는 사실만 확인될 뿐이니.


하지만, 

확인이 확신이 되는 그 순간 비겁함도, 비참함도, 머뭇거림도, 나약함도 모두 용해되어 사라진다.      


나는 분별하는 정신을 소유하지 못했다. 

아니, 소유해서는 안된다.

애초부터 나의 분별따윈 소용없었다.

 

따라서, 

제 1의 시선이 제 아무리 머리굴려 파헤치려는 가열찬 열정과 의지를 표출해도 이는

나를 유혹하는 악마의 입김일 뿐. 

이를 알아채고 잠시 안도에 정신을 맡기지만 

이내 관성의 무거운 힘이 나를 죄어오는 압박을 다시 껴안아야 한다.      


통찰로부터의 실체를 보여주는 제 3의 시선을 믿고 

감정에 숨은 악마의 입김과 

무용(無用)한 분별을 과신한 이성과 

이성의 심부름꾼을 자처한 관성을 외면하고

현실에 존재하는 제1 나에게 명령해야 한다


더 단순하게

더 투명하게

계속 아무 생각없이

그렇게 바보처럼 존재하라


모든 형체없는 의지는 

너를 통해서 제 갈길 갈 것이니. 

너를 데리고 제 갈길 갈 것이니. 

너를 키우며 제 갈길 갈 것이니.   

그렇게 바보처럼 따라가라


나의 1,2,3의 시선이 이제 휴전을 끝내고 연합할 때까지

그렇게 연동되어 나의 정신의 분별력이 완벽히 차단될 때까지

나는 계속 이렇게 이상, 요상, 괴상, 묘상의 무한회전 소용돌이의 어딘가에서 

당분간 이탈되지 않도록 나를 맡겨야만 하겠다.     


[건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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