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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13. 2024

귀신이 씌여야 가능한 작업
- 책을 쓴다는 것

'글쓰기'에 대하여

조지오웰의 짧은 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를 읽고 또 읽으며 계속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 나 자신과 나의 글을 연결시키느라 요 며칠 내 정신은 많이 고단하다.


1월부터 7월까지 매일 꾸준했던 2권의 번역을 끝내고 무려 2년을 달고 살았던 엄마의 유산은 탈고했고


8월이 시작되자마자 해외 비즈니스를 소재로 한 성공학 저서를 브런치작가 제노아님과 공저로 집필중이다. 이 작업은 나의 전공이라 꽤 수월하다고 여기겠지만 제노아님의 직접적인 사례에 인문학을 녹이는 작업은 결코 만만치 않다. 조금만 오버해도 잘난체로 비칠 수 있고 조금만 부족해도 남들과 비슷한 그저그런 소리로 전락하기 때문에 글의 수위조절은 꽤 까다롭다. 


그래서 나는 

'나는 왜 쓰는가'에 있어 결여를 찾아 메우고 싶어졌다. 

부실을 재건하고 부족을 채우고 그러면서도 여유를 확보하여 또 하나의 잉여를 만들어내고 싶어졌다. 

책을 쓸 때 '정치적 목적'이 분명한 동기로 작용한다면 이에 합당한 충족이 이뤄질 것이기에 조지오웰의 글을 요 며칠 나의 머리와 가슴에 깊이 담아 놓았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거역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귀신에게 끌려다니지 않는 한 절대 할 수 없는 작업이다. 

아마 그 귀신은 아기가 관심을 가져달라고 마구 울어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본능일 것이다(주1). 


8권의 종이책을 출간했던 나지만 그저그런 자기계발서나 출판사에서 의뢰받은 책이 아니라 진짜 나의 경험으로 체득한 나만의 철학적 사상을 글로 담고 싶었기에 4년간 출간을 멈춘 채 글쓰기를 연마중이다. 브런치에 2년 넘게 매일 새벽5시 발행을 지켜오는 또 하나의 이유를 나는 조지오웰덕에 알았다. 귀신에게 끌려다닌 것이다. 참.. 기특한 귀신이다.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만한 글을 절대 쓸 수 없다(주1).


나는 나만의 개별성을 배제시키는 산을 열심히 넘고 있는 중인 듯도 하다. 나의 이야기를 쓰되 주장이나 담론에서 나의 인식을 배제하여야 한다. 부탁, 제안, 권유, 전제, 규정, 명제 등의 단어를 구분지으며 글에 단서를 붙이는 것을 습관처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릇된 주장이 담론이 되면 이 얼마나 세상에 해가 되겠는가. 그래서 나는 감히 =정신의 메스. 라고 표현하는지도 모른다. 조지오웰의 말처럼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만 '읽을만한 글'이 탄생한다.


내 작업들을 돌이켜 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어 쓸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주1).


그가 말하는 '정치적 목적'이란 세상을 특정방향으로 밀고 가려는, 어떤 사회를 지향하며 분투해야 하는지에 대한 남들의 생각을 바꾸려는 욕구를 의미한다. 


내겐 있다. 명확한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나의 경험이, 일상이 내겐 정신의 물질화를 이루는 도구가 되고 이로써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快)를 누리며 누군가도 이렇게 쾌하게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이타'임을, 그렇게 자신의 삶을 증명해 나가는 것이 우주를 위한 진화이자 조화임을 성현들이 그러했듯 나 역시 증명하고 싶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고 싶다. 이 모든 나의 경험을 글로 풀어내고자 하니 아마도 나는 죽는 날까지 계속 쓸 것 같기도 하다. 


이런 의미에서 8월부터 새롭게 시작할 제노아님과의 공저는 큰 의미를 지닌다. 누군가의 경험이 그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살아있는 경험으로 나눠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이에 내가 힘을 보태어 함께 더 바른 방향으로 견인할 수 있다면 이는 기꺼이도 아니고 마땅히 내가 해야할 일이라 여기는 것이다.



나는 왜 쓰는가?

왜 아무도 관심두지 않는 번역을 혼자서 끙끙대고 하고 있으며

왜 매일 글에 매달려 뭐라도 남기고 싶어 안달을 내고 있으며

왜 누군가의 귀한 사례를 귀하게 세상에 내놓아야 한다고 열을 내고 있는 것일까.

카미유클로델

이런 생각에 빠진 새벽, 

나는 카미유클로델(주2)과 눈이 마주쳤다. 그녀의 눈은 아주 깊다. 눈의 깊이는 삶의 깊이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녀가 눈으로 말해준다. 나의 안달이 요란이 되지 않도록 매몰된 집중을 살짝 정신에서 들어내라고.


나의 가치관과 관심, 시야는 아주 거대한 무언가와 맞닿아 있다. 겉으로는 일정시간 그저 손가락으로 글을 쓰는 비슷비슷한 행위겠지만, 드러난 글이 남들의 필력에 쫒아가지 못하는 다소 미숙한 글이겠지만, 나의 추구와 방향과 당도할 지점은 분명 '오래오래 지속되어도 괜찮은, 널리널리 읽혀도 무해한' 그런 글이다. 


나는 커졌다. 지금까지 '공저'에 대한 제안을 많이 받았으나 겉으로 표현된 그럴싸한 이유와는 달리 나는 자신이 없었다. 조지오웰의 표현대로라면 '정치적 목적'이 다른 이와 작업하며 타협하는 것이 내겐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미 알기 때문에, 내 안의 부정성을 용인할 수 없는 집요와 강박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나는 변화하며 커지고 있기에 어떤 누구의 사례라도 그 이면의 의미와 깊이의 본질을 담아내고 싶고 담아내는 것이 나의 글이 지닌 정치적 목적이라고 나는 내게 설득했다. 타협이 아니라 다른 방책, 그러니까 나의 부족을, 결여를 메우면 되는 것임을 알았다. 


개인의 귀한 삶이 누군가의 귀한 삶으로 연결되는 다리가 되는 것, 

개인의 귀한 사상이 미래를 위한 더 큰 사상의 디딤돌이 되는 것, 

개인의 치열한 시간들이 누군가의 '살아갈 이유'로 보태지는 것.


이것이 카미유의 깊은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서로 마주하며 나눈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한 이유다. 

그리고 

50년 이상 몰랐던 누군가와 새로운 창조물 하나를 세상에 내놓기 위해 정신적 동거를 선택한 이유다.


주1> 조지오웰에세이 나는 왜 쓰는가, 조지오웰, 한겨레출판

주2> 카미유클로델, 카미유클로델, 마음산책


[건율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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