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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Aug 27. 2022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기본'이면 충분하다.

내꺼! 찜!

나만의 집을 짓겠다는 말, 그대로 '꿈!'을 이루기 위해

밑도 끝도 없이 

그!냥!

양평을 자주 오간다.


나만의 스타일이랄까 방식이랄까 버릇이랄까..

뭔가 진!!짜!! 하고 싶다는 느낌이 날 휘감으면

1.일단 저질러.

2.그게 될 것이라 믿고 에너지를 그 쪽으로 몰아.

3.느낌올 때까지 죽!

이게 전부다.


엄청 단순하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 결과들을 내왔다.

학자로서의 결과도, 사업으로서의 결과도, 글쓰는 작가로서의 결과도, 기타등등


나름 인생의 커다란 꿈 가운데 하나인 '마당있는 집', 아니, 

'넓은 마당에 유리로 된 나의 서재 겸 연구실 겸 독서모임의 공간'을 갖춘, 

새퍼트를 키우며 살 수 있는, 

하루종일 글쓰고 책읽을 수 있는, 

잔걸음으로 강가에 갈 수 있고 산으로 둘러싸인, 

내가 원하는 나무와 꽃들로 마당에 잔치를 벌일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속박에서 완벽하게 탈출한 나만의 집'을 만드는, 

(이렇게 나열하니 엄청 큰 프로젝트네) 시작을 내 방식대로 한 셈이다. 


워낙 기질적으로 디테일에 약하고 계산을 못하는지라 이번에도 '일단 가자!' 양평을 수시로 드나들고

'일단 보자!' 전원주택 책 몇 권을 손에 쥐고 날마다 여기저기 들여다본다.


막막할 때는 일단 자주 보고 자주 듣는 것만으로도 

결과까지 갈 단계를 정리할 수 있고 

무엇보다 나의 감(sense) 을 키울 수 있다. 


갈 때마다 하는 것은 없다. 

그냥 집에서 입는 츄리닝차림에  책상위의 노트북, 책을 그대로 가방에 쑤셔넣고 물과 커피, 간식꺼리 정도 챙긴 후 마실다닐 때 신는 슬리퍼면 준비 끝. 

그렇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어디 나무그늘 밑 벤치(또는 돌)위에 앉아 실컷 글쓰고 책읽다가 

몇 번 갔다고 낯익은 마을 주민들이랑 막거리 몇 잔 나눠 마시는 게 다다. 

그 안에 소중한 귀인이, 남들 모르는 정보가 있다.

 

뭐, 한마디로!

'여기 내꺼! 찜!' 하는 식이다. 

침 퉤퉤 뱉어놓고 '내 땅이야!' 하는 아이들 놀이처럼, 

영역표시하러 다리 한짝 치켜들고 오줌 찍 ~ 갈기는 강아지처럼 

그렇게 나도 내 에너지를 거기에 뿌리고 온다.


그냥, 대충, 아무렇게나, 계획없이, 무작정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서 

그렇게!.



화장, 분장, 치장, 게다가 포장

실컷 앉아서 글쓰고 책읽다가 

개울에 풍덩 물길을 그냥 건너 동네구경에 나선다.

이 또한 계획이 없다. 그냥 이 길 저 길 걸어다니며 빈집도 찾아보고 길도 익혀보고 돌아다니는 똥개랑도 놀아준다.

이번엔 용기내서 주인할머니 몰래 콩잎서리도 했고 

주인께 허락받고 깻잎이랑 호박잎도 잔뜩 얻었다.

깻잎 몇 장 개울물이 슬슬 씻어 몇 장 뜯어먹으며 시골길 걷는 맛이란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50년을 넘게 산 내겐 그 어떤 유명한 여행지못지 않다.


그냥 아무렇게나 대충대충 걷고 씻고 보고 듣고 

그래선지 시간도 나따라 대충대충 흐른다. 

내가 자기에게 관심이 없으니 시간도 나에게 관심없나보다.

정말 자기 갈 길 가는 듯하다.

얼마만인가? 시간이란 녀석의 지배에서 벗어나본 게.


시간이란 녀석은 참으로 신기하다. 

제발제발하며 매달릴 때는 지독하게 나를 옭매어 덜덜 떨게 만들더니

이렇게 내가 관심을 주지 않을 땐 자기도 덩달아 천천히 흐른다.

심지어 나 상관말고 너 맘대로 하라는 듯 멈춰주기도 하는 것 같다.


모든 것에 아무 것도 덧대지 않은 이 자연스러움에 마음을 빼앗기니 

도대체 화려한 치장 속에 본색을 감추고 있는 집이 있는 도시로 가기 싫어진다.

화장을 하고 분장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치장에 포장까지 해서 

자신을 잃어가는 사람, 사물, 도시, 문화, 그리고... 관계까지.

'있는 그대로'를 찾아가지 못하면 어쩌나..

'있는 그대로'를 잃게 되면 어쩌나... 

나는 불안해진다.


이렇게 대충대충 그냥 아무 생각없이 

여기가 어딘지, 나는 누군지 묻지 않은 채

길따라 걷는 이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는 걸 알게 해준, 

세월 속에서 날 괴롭혔던 고통이 갑자기 고마워지는 순간이다.


시간조절, 양조절, 순서조절 그런 거 따지지 말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대충 씻은 콩잎은 대충 삶아 된장, 간장 대충 넣어 재우고

깻잎도 대충 씻어 간장, 고춧가루, 액젓 대충 넣고 재우고

호박잎은 몇 장 되지 않아 대충 삶은 뒤 된장, 젓갈만으로 대충 비빈 밥을 동그랗게 싼 후 딸내미 한끼 식사로 끝내버렸다.




음식할 때도 레시피니 한스푼, 두스푼. 그런 거 모른다.

손맛? 그런 것도 모른다.

조미료는 더더욱 모른다.

재료끼리의 조합이면 충분하다.

내 입이 맛있으면 그만이고 깻잎은 깻잎향으로, 콩잎은 콩잎향으로 그리 먹어지면 그만이다.


그래선지 나는 음식하는 것이 별로 두렵지 않다.

내 맘대로 대충 섞으며 '재료맛만 잘 나면 되지 뭐.' 양념을 거의 안하기 때문에 맛없으면 완벽히 재료탓으로 책임전가 할 수 있다. 

순서대로, 양조절해서, 시간맞춰서... 뭐, 그런 거 잘 모르니 모든 게 다 대충대충.


그런데!

참! 

맛있다!



애쓰지 말고 기본만.

그런 거 아닐까?

잘하려고도 말고 

애쓰지도 말고

우리는 어쩌면 기본만 할 줄 알고 기본만 제 때 해내면 되는 거 아닐까?

미리 챙기고 위기도 고려하고 계획에 맞춰 준비도 철저하고 시간에 딱딱 맞춰서

그렇게 뭔가를 해야만 한다면 아마 나같은 사람은 무능아로 전락할 것이다.


나는 남들이 어찌보든 내 인생, 내 그릇안에서 적잖이 결과를 내고 살았다고 자부한다.

설렁설렁 대충대충 하는 것 같은데 어찌 그리 했냐는 물음에 늘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그저 기본에만 지독하게 충실하다고.


화장은 하지 않지만 남들보다 자주 깨끗이 씻고

화려한 유명세는 없지만 내 분야에서만큼은 독보적이고

내세울만한 물건 하나 없지만 누구든 원한다면 언제든 그 정신에 보약 한권 줄 수 있으며 

최신폰은 아니지만 사진찍고 글쓰고 카톡까지 할 수 있으니 됐고 

잘 쓰는 글 아니라도 이렇게 내 글이 필요한 공간들이 허락되어 있고

오라는 사람 없지만 내가 가고 싶은 곳은 어디든 갈 수 있고

거창한 방정식은 못 풀지만 삶이 나에게 준 숙제는 왠만큼 해놓았고

어마무시한 재벌은 아니지만 내 집 내가 지을 수 있을 여유가 있으니


나는 참으로 행복한 부자다.

나는 참으로 기본밖에 안했는데

너무 큰 선물을 받은 선택받은 사람이다.  


이러한 감사함을 갖게 된 것 역시

기.본.만. 해서 얻은 결과들이 크기 때문이리라.

뭐든 엄청 잘하려 했으면 어쩔 뻔 했나 싶다.

결과가 더 좋지 않았을 게 뻔하다.


자연은.

가장 자연스러운 것에

자신의 에너지를 보태준다는 성인(聖人)들의 태도를 믿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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