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서 작약순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고 있었다.
사람발길이 드문 우리집 길가에서
흥분한 남자의 전화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 보낸 거 봤어요?
그거 맞아요? 맞죠? 얼른 와요!"
집 뒤 숲에서 무언가를 발견한 모양이다.
순간 달려가서 묻고 싶었지만 그런 성정이 내게는 없다.
30분쯤 지났을까.
차 2대가 올라왔다.
숲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대개 우리집 뒤 빈 풀밭에 차를 세운다.
직감적으로 그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그냥 작약앞에 있었다.
그래도 마당에 있는 나를 봤을텐데
인사는 건네야겠다 싶어 주차한 곳으로 갔더니 직감이 맞았다.
정장을 입은 남녀 2분이 함께다.
사진을 보고 급히 달려온 걸 보면,
공무원에게 신고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얼마나 급하길래 일하다가 달려왔을까.
상황버섯일까.
혹시 산삼일까.
버섯일 가능성이 크다.
이 곳은 사람들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은 원주민 마을이다. 뒷 숲의 나무 사이사이에는 여러 버섯들이 자라고 있다. 뿐만 아니다. 반딧불이가 반짝이고 가재가 숨은 개울이 집옆으로 흐르고, 수달발자국이 선명한 마을이다. 그저께 우리집 마당냥이 모루가 앞발로 무언가를 툭툭 건드리며 놀길래 '낙엽인가?' 싶어 들여다 봤더니 도마뱀이었다. 이미 꼬리는 뜯겨 있었고, 미동은 없었다.
혹시 표식을 해두었을까?
얼른 나도 숲을 한바퀴 돌아볼까 하는 마음이 살짝 스쳤다.
알지 못하면 보지 못하고
보지 못하면 끝내 알지 못한다.
순간, '이해한만큼 소유한다.'는 괴테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 집 뒤에 있지만
나는 알지 못해 보지도 못했고
보지 못해 이해는 커녕 갖지도 못했다.
재작년 가을, 내가 삶을 펼친 이 땅.
지금 내가 알지 못해
보지 못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을까.
그저 스쳐 지나가는 것들은 또 얼마나 될까.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나는 벗나무도, 엄나무도 몰라서 베어버렸다.
지금의 후회가 아무 의미없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알아가는 삶 위에 나는 서있다.
삶의 뒤에서 끌려가지 않고
삶의 앞에서 삶을 이끌고 있다는 느낌.
내 안은 또 어떨까.
지금 알고 있는 것만으로 살아간다면
나는 나 자신 속에 있는 것조차 꺼내지 못할 것이다.
내 안에도 아직 캐내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을 것이다.
있는지도 몰라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무언가.
어쩌면 이것들은
땅 속의 보물,
숲 속의 버섯보다
더 귀할 것이다.
순간, 민망하게도
나는 내가 더 소중해진다.
나는 도시에서의 삶을 접고
내 삶을 진지하게 살아보자며
여기 시골로 들어왔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심심할 틈도, 지루할 겨를도 없이
나는 생명을 만나고, 자연을 느끼며
그것들을 내 안에 통과시켜 글로 옮긴다.
마당에 한 걸음만 나가도 온 우주를 여행한 듯한
하루가 펼쳐진다.
보고, 알고, 느끼고,
쓴다.
1분 1초가 아깝고 소중하다.는 말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다.
벌겋게 솟은 송곳같은 싹은
독초인 줄 알고 손도 대지 못했는데 작약이었고,
꽃가루가 싫어 뿌리까지 뽑아버렸던 길쭉한 풀은
씀바귀였으며,
장난처럼 후후 불어 날리던 민들레도
어른신따라 무쳐 먹으니 놀랄만큼 맛있었다.
아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
잠깐 스쳐 보낸 체험과
몸으로 겪으며 시간에 쌓인 경험은 다르다.
이 숲에서,
이 땅에서
나는
지금까지 알지 못해 보지 못했던
얼마나 많은 것들을 앞으로 만나게 될까.
이렇게 내 심장이 뛰고
이렇게 내 정신의 기후가 뜨거운 적이 있었던가.
그런데,
그 어르신이 발견한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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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담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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