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모은다.

by 지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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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둘러싼 산기슭엔

양봉통이 아주 많다.

돌들 사이, 나무 사이엔 어김없이 양봉이 이뤄진다.


벌이 많다는 것이고

꽃이 많다는 증거다.

벌이 수분하니 꽃은 더 많아질 것이고

꽃이 많아지면 열매들도 더 많이 열릴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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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열대의 벌은 꿀을 모으지 않는다.

계절이 없어서 꽃이 끊이지 않고

꽃이 끊이지 않으니 버텨낼 시간,

쌓아둘 이유도 없는 것이다.

필요한만큼 얻어 바로 쓰는

흐름이 이들에겐 생존이다.


하지만, 여기 벌은 다르다.

겨울이 있기 때문이다.

버텨야 할 시간을 위해

저장과 축적이 필요하다.

꿀통에 시간과 사라질 계절을 담아야 한다.

축적이 이들에겐 생존이다.


존재 방식은

개인의 의지나 능력이 아니라

환경의 구조가 먼저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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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슬렁거리며 마을을 도는 나는 어떨까?


내가 지금 지나가게 내버려두는 것은 무엇이며

멈춰 모으고 쌓는 것은 무엇인가?


요즘 내가 모으는 것은 나무다.

겨울을 대비해 땔감을 수시로 모아둔다.

산에 널린 것이 부러진 나무인데도

보이는대로 집으로 가져다 둔다.


가는 가지는 그냥 툭

팔뚝만한 가지는 톱으로 슥

그렇게 조금씩 수시로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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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굵은 나무는 살짝 잘라서 매일 모은다


이제 슬슬 꽃이 핀다.

시간이 지나 꽃이 지면 씨앗도 모아 마당에, 집주변에 뿌릴 것이다.

새들이 물어다주고 이미 심겼던 것들이 싹을 틔우는데도

나는 자꾸 모은다.


책도, 지식도, 글도

계속 모은다.


왜 모을까?

왜 그냥 흐르게 놔두지 못할까?


불안 때문이다.


손에 없으면 쥐어야 하고

손에 쥐면 놓지 못한다.

다시 쥐지 못할까 봐.


불안이

내 손을 쥐게 하고 펴지 못하게도 한다.

불안은 나의 삶의 방식을 정하고 있다.

방식은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불안이 내 삶의 구조가 된다.


내가 지켜내지 못할까 봐

불안한 정체는 뭘까?


어른이 된 아이들에게

어른답지 못한 엄마로 남는 것?

내 인생이 중반을 너머 흐르는데 이룬 것 하나 없이 사라지는 것?

지난 내 시간들이 아무 가치없는 결과를 내는 것?


이 불안이

내 시간을,

시간으로 보낸 내 행위를

자꾸만 모으게 한다.


그래도 가끔 손을 펴본다.


지금 쥐고 있는 것이

정말 겨울을 나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겨울을 끝내지 못하게 쥐고만 있는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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