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성공 최고의 방해는 내 성질
‘모든 것을 네게 따르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너 자신을 이성에 따르게 하라’
세네카의 말입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성이 감정에 지배받지 않도록 하십시오!
성공한 사람은 이성이 판단을 지배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감정이 판단을 지배합니다.
성공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아주 사소한 데에 있습니다.
‘홧김에~’, ‘성질나서 그만~’, ‘맘대로 해!’, 등
우리는 선택 앞에서 이런 표현들을 심심치 않게 합니다.
자! 이렇게 선택한 결과는 어땠나요?
홧김에 저지른 일들,
성질나서 자리를 박차고 나온 일들,
맘대로 하라고 소리지르고 난 뒷상황은 과연 어땠습니까?
말 안 해도 뻔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사과하고 후회하고 수습하고.
이런 불뚝 성질 외에도 내 감정이 늘 이성에 지배당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늘 우울감이나 무기력에 빠져 할 것들을 미루는 사람,
현상은 뒷전이고 상대의 허점만 파고드는 사람,
일을 진행시키기보다 ‘저 사람이 나에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하나 보자.’며 벼르는 사람,
말꼬투리만 잡고 늘어지는 사람,
무슨 말을 해도 '안되는 이유'만 늘어놓는 사람 등
모두 이성적이지 못한 경우입니다.
일을 한다는 건, 대화를 한다는 건 성과를 내고 결과로 이어지게 하기 위해서인데
비판이 아닌, 비난을 일삼고
자기감정에 휩싸여 있는 사람이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간혹 이런 사람이 성공하는 이상한 경우도 있지만
이는 단지 물질적인 성공에 국한되거나 일시적인 성공일 뿐입니다.
감정이 앞서면 되는 일도 안됩니다.
일을 그르치길 원한다면 감정대로 하십시오.
하지만 일을 성사시키기 위한다면 감정을 절대 이성의 자리에 앉히면 안됩니다.
이성이 감정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간략하게 2가지만 언급하려 합니다!
우선, ‘ㅂ’으로 시작되는 단어와 이별하십시오.
불안, 비난, 불평, 불만, 비웃음, 부정, 변명, 비열 등이 있지요.
나의 내면에 불안감이 넘치는 사람은 상대를 늘 초조하게 하고
상대를 비난하는 사람은 내가 당신을 재단할 수 있다는 자기 오만에 빠진 것입니다.
비난을 받은 것이 치욕이라면
비난을 한 것은 명예여야 합니다(제 글에서 늘 언급했다시피 양극이 공존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니까).
그런데, 비난한 것이 명예가 아니기 때문에
비난받았다고 치욕적일 이유도 없다는 논리가 성립됩니다.
비난은 하는 것도 받는 것도 모두 소용없는 짓이지요.
불평불만에 가득 찬 사람은 일단 무섭습니다.
그 화살이 나에게 꽂힐 것 같아 옆에 가기 싫어집니다.
무슨 실수라도 하면 너그럽게 넘어가는 경우가 없기에
매사에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은 긴장되고 두렵습니다.
내게로 사람이 오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을 어렵게 살기로 작정한 것이지요.
누군가를 비웃는 사람은 자기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는 지나친 자기 착각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매사에 상대처럼 행동하지 않으려고 촉각이 곤두서 있어 날카롭지요.
또한, 자신의 실수는 눈감아버리는 비열한 사람일 것입니다.
매사에 부정적인 사람은 일단 자신에게 올 모든 기회의 상당 부분을 차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매번 부정하는 이에게 누가 무엇을 권하겠습니까?
많이 가져서 많이 나누는 부자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지요.
이런 사람 역시 가난하게 살기로 작정한 것과 진배없습니다.
변명이 가득한 사람은 자기정당성이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의 갈등은 항상 정당성의 대립입니다.
상대가 틀려야 내가 맞고 상대가 잘못이어야 내가 잘한 것이 되니
문제가 아닌, 상대의 잘못을 찾는 것에 집중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곤 자기를 정당화시키고 합리화시키는 변명거리가 전부지요.
‘네가 시간에 늦어서~~’,
‘네가 갑자기 전화를 끊어서 ~~’,
‘내가 하지 말자고 했는데 네가 ~~’,
어쩌구 저쩌구
이렇게 자신을 정당화시키면서 상대를 잘못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도 모자라
상대는 화낼 권리조차 누릴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정말 이기적인 사람인 것입니다.
둘째, 두려움과 이별해야 합니다.
이별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아예 잊어버리거나 마음에만 간직하고 외부로는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후자쪽입니다.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두려움을 이겨내는 사람은 많습니다.
진정한 용기란 두려운 순간에 드러납니다.
두려워도 그 두려움을 안고 가던 길을 계속 가는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입니다.
두려움은 떨쳐버리는 게 아니라 안고 가는 감정입니다.
두려움을 느끼는 건 아무리 강한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성공자는 두려움의 초점이 다릅니다.
성공한 사람은 ‘내가 부자가 될 수 있을까?’와 같은 ‘도전’에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지금 자산을 구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지?’,
‘돈때문에 일하다가 나의 가치도 모른채 인생 끝나면 어쩌지?’,
‘현재 소득으로 내 노후를 멋지게 보낼 수 있을까?’,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만약 자산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나이 들어서까지 하기 싫은 일을 계속 해야 하면 어쩌지? 등
'도전하지 않을 때 다가올 미래’에 두려움의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한마디로,
‘도전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도전하지 않을 때 더 두려운 것’입니다.
'성공과정에서 겪는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고
‘성공해내지 못하는 미래’를 두려워 하십시오.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말고
도전하지 않았을 때 어찌될 지를 두려워 하십시오.
그러면, 지금의 두려움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려면, 감정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합니다.
‘블랙스완’으로 유명한 학자인 니콜라스나심탈레브가 지적했듯이
인생의 정상분포 안에서는 별다른 변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극단의 상황에서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고 이 선택과 판단을 통해 그 다음 인생이 펼쳐지지요.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모든 상황이 극적인 변화로 치닫는 것과 같은 경우입니다.
우리의 감정이 이성을 덮쳐버리는 경우가 바로 평이하지 않은 상황,
즉, 극단의 상황일 때이지요.
이 때 감정보다 이성으로 판단하는 멘탈. 이것이 성공멘탈입니다.
성공자는 자신의 목표를 향하는 데 있어 발생할 변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목표를 못 이루어 겪게 될 고통을 더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변수가 생겼을 때 이성을 출동시켜 가동시킵니다.
성공자는 어떠한 부정적 상황이 닥쳤을 때 ‘탓’, ‘체’하지 않습니다.
철저히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물으며 문제를 돌파합니다.
문제보다 자신을 더 키워내면 문제가 작아지니까요.
그러니 변명도, 불평불만도, 비난도, 비열함도 모두 이성 앞에 무릎꿇는 것입니다.
명심해야 합니다.
그저 그런 날들엔 특별히 이성을 꺼내쓸 일이 없어요.
그저 즐겁고 신나고 약간의 짜증과 신경질 정도로 별다른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공을 결심하고 도전하고 목표한 바를 이루는 그 과정에서는
좋든 싫든 수많은 변수 모두가 성공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변수 또한 성공시스템 속에서 가동되는 거죠.
그러니, 변수 앞에서 필요한 것은 이성을 출동시키는 멘탈입니다.
감정이 끼어들 틈을 주면 안 됩니다.
이 변수는 곧 성공을 위한 도약의 기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