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택한 구불거리는 길이
나의 큰 인생의 길이길
아마도 내가 새벽독서를 수년간 지속하면서 생긴 변화 가운데 가장 큰 외적인 것을 말하라 하면 서슴없이 터를 옮길 작정을 한것이라 말하겠다. 작은 집으로, 유리로 된 집으로, 책으로 쌓인 집으로, 아무나 와서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는 집으로.
그런 곳을 찾아 경기수도권의 정말 많은 집과 땅들을 보러 다녔다. 잘 갖춰진 세련된 전원주택들이 즐비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자리에서 한바퀴 빙 돌더라도 내 시야에 건물이 포착되지 않는, 조금 걸어나가면 맑은 물이 흐르는, 산으로 둘러싸여 아늑한, 밤길도 무섭지 않은, 길가다 누굴 만나더라도 정겨운 인사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사는, 너무 한적하지도 않은, 서울까지 오가기 멀지 않은.
까다로운 내 구미에 딱 맞는 곳을 찾았다면 찾은 걸까? 경기도 한켠에 딱 이런 집터, 이런 느낌, 이런 환경을 발견하고는 최근 계속 어떻게 지을지, 어떻게 바꿀 지, 어디를 입구로, 마당으로, 텃밭으로, 꽃밭으로 만들지 상상이 끝도 없다.
요란하고 현란한 속에서 늘 곤란한 상황을, 남들처럼 그렇게 사는거지 라며 살아왔었다.
도시에서 그냥 그렇게 사는 법밖에 몰랐고
더 넓고 더 이쁘고 더 깨끗하고 더 이름있는 좋은 동네를 찾아
지금까지 살아왔는데
길...
집...
내가 걷고 머무르는 공간에 나는 왜 여태 '나만의 것'이라는 의미를 간과했을까.
나의 집이, 나의 길이
그저 때묻지 않은 '나의 것'이었더라면 좋았을텐데
나는 왜 지금껏 아이키워야, 늘 가는 곳과 가까워야, 있어 보여야 한다는
거기서 거기인, 뻔하고 단순한 이유만으로 그렇게
남들 가는대로 남들 사는대로 그렇게 나의 터를 만들었을까.
작은 두 발이 닿을 수 있는 바닥이 길이면 되는데
그 곳에서 고개들어 넓은 하늘만이 내 시야에 들어온다면 좋을텐데
캄캄한 밤이지만 누가 지나가도 겁나지 않고 멀리서 가슴 두근거리며 인사나눌 수 있으면 좋을텐데
네모진 소리나는 기계없이도 구불거리지만 길찾고 길잃을 염려없다면 좋을텐데
누구누구의 것이라는 푯말없이 모두의 것이라 내 것인양 내 나름의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면 좋을텐데
진입금지나 화살표없이 내 걸음가는 곳마다 내 발길 들여놓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가끔 처음 듣는 새소리와 고라니정도는 만나면 좋을텐데
사람의 흔적말고 동물의 변이나 발자국이 내 발동무되면 좋을텐데
굳이 공연장을 찾지 않아도 조금만 귀기울이면 24시간 자연의 오케스트라 연주가 들린다면 좋을텐데
예의와 공손으로 자기를 감추지 않고 괴퍅하고 괴짜스러워도 진심가진 사람이 걷는 길이면 좋을텐데
억지와 포장말고 자연이 내게 그러하듯 마음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리는 사람과 만나는 길이면 좋을텐데
옆에 누구보다 더 땀흘리지 않더라도 나는 내 보폭으로 조용히, 천천히 걸어도 전혀 상관없다면 좋을텐데
내가 걸친 옷이나 장신구가 아닌, 나의 표정과 말투, 눈빛에서 나의 지난 시간들을 알아줄만한 그런 이가 옆집살면 좋을텐데
북유럽의 집 발췌나는 기꺼이
자유를 사고 싶은 노예가 되어
내 발길 닫는 모든 곳을 함부로 하지 못하고 순종해야 하는,
그리하여,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주인으로 모셔지는 황홀감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길,
그런 길가의 집에서 이제는 살아보려 한다.
어느 날, 자연이 자라는 속도에 맞춰 나도 자라있음을 느끼겠지
여기서는 산만한 나의 정신이 알아서 정렬맞춰 흐름에 귀를 열겠지
함께였지만 따로였던 시간들을 떠나 조화가,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나에게 알려주겠지.
더 좋은 시간을 만들려 애쓰지 않아도 그 자체로 충만한 좋은 시간들이 이어지겠지.
지금까지의 내 삶 모든 것이 내가 바래오던 염원의 응답이었다면
나는 지금부터 이러한 길을 걷게 해달라 염원하련다.
내 영혼은 이제 보다 길다운 길, 집다운 집을 염원한다.
그리하여, 내가 택한 구불거리는 좁은 길이 나의 인생을 큰 길로 이끌어주길 바란다.
작은 발 아래 세상에 머물던 눈길 거두고
고개들어 커다란 하늘보며, 하늘로 치솟는 나무보며, 그 나무에서 노니는 새들보며,
멀리 갈 인생 그리며 살려 한다.
그 길에서라면 애써 찾지 않아도 잃어버린 나의 작은 아이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