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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Mar 20. 2024

핵심을 찾아 대담하게
-글의 한계 앞에서

새벽독서 5년째

핵심을 뽑아내서 대담하게.

이렇게 단순한 것을 나는 왜 이리저리 주무르며 이렇게저렇게 쓰려 애쓰는가?

실력을 향상시키고 싶은 것인가,

내 글이 한명의 눈길에라도 더 닿게 하려는 것인가,

쉽게 쓸 수 있는 단어보다 뭔가 더 근사한 단어와 문체를 찾아 헤매는 것인가?


뭘 바라는데,

왜 글을 쓰는데

글이 뭐길래 시간과 정성과 모든 에너지를 바치는데?

아... 

기본적인 질문으로 나를 다시 돌려놨다.


나는 지금 글의 한계에 부딪혀있기 때문이다.

글이 나를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와 글이 서먹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잡은 손 놓칠까 애닳아있기 때문이다.


정말 사랑하는 이를 왜 사랑하는지에 대해 조목조목 일목요연하게 정갈하게 논리적이게 말할 자 누구일까? 괴테 정도 된다면 모를까. 나는 그리 실력이 안된다. 그냥 사랑하는 거지. 그냥 느낌이 그런거지. 그냥 좋은 것이고 그냥 행복한 것이지. 하며 퉁치는 정도의 실력인지라 내가 글을 쓰는 이유 또한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어떤 주제, 그러니까 내 글은 나를 해체하여 인간을 탐구하는, 감각이라든지 감정, 정서, 정신, 인지, 공감, 신념, 소망, 목표 등등 하나의 주제에 대한 나의 의견을 툭툭 내던지는 글들인데 나는 너무 주무르고 있었다의미전달은 물론, 나만의 정의와 개념이 이뤄져야 하고 그 개념을 수면에 띄우지 않은 상태에서 글자 아래에, 행간에 진하게 묻어나야 한다는 나의 집요함 덕에, 사실 나만의 문체와 글의 방식이 서서히 잡혀 가는 요즘이긴 한데.. 


아무튼 나는 지금 글을 쓰는 한계 앞에서 난감하고 난해하고 피곤하다. '작가'라는 타이틀로 불리는 이 브런치공간이 낯설고 부담되기도 하고 그냥 조용히 노트북에서나 쓸걸 싶다가도 '정신의 물질화'를 외쳐대는 내가 그러면 안되지. 나의 창조물을 이리 홀대하면 안되지 싶어 다시 브런치에 감사하기도 하고... 여하튼 이 난처한 상황을 시시콜콜 다 적을 수는 없겠지만 나의 넋두리는 새벽부터 잠들기까지 연이어 날 괴롭힌다. 그저 글을 잘  쓰고 싶은 응석이라고 치부되길 바란다. 


나에게 글은 내 인생놀이터의 놀이기구 가운데 하나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어렸을 때 놀이터만 가면 그네를 젤 오래 탔다. 예전엔 놀이터가 흔하지 않아 그네를 타려면 항상 긴 줄을 서야 했고 결국 엄마를 조르고 졸라 2층 마당에 작은 그네를 사주셔서 하루 종일 그네만 탔던 기억도 있는데 지금 어른인 나의 놀이터에서는 글이 그네다. 그네를 실컷 탄 날은 하루의 놀이양을 충분히 채운 피곤함에 숙제도 안하고 잠들기 일쑤였고 그렇게 혼나면서도 다음 날이면 또 그네앞 긴줄에 서서 기다렸던.... 


지금도 여전하다. 하루 종일 글앞에서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글 저글 맘대로 써갈기다가 피곤해서 암 것도 못하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고 다음 날 써놓은 글을 보면 이런... 혼도 이런 혼이 없다. 엄청 이상하게 써놓은 글때문에 내 실력을 원망하지만 그렇게 혼나고서도 다음날 또 쓰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렇게 즐거운 글놀이를 하고 있을 때 내 모든 감각이 열려 있음에 감사한다. 

글한줄 읽을 때마다, 현상과 마주할 때마다, 사물을 대할 때마다 나는 글로 옮기는 타고난 재주가 있다고 스스로를 독려하기도 하고 

그것이 글로 표현되지 않을 때엔 컴컴한 방안에 혼자 두 눈 껌뻑이며 앉아있는 듯한 어둠속에 잠식된 느낌에 빠지기도 하지만 

그 때마다 열린 감각이 다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준 경험도 여러번 경험한지라 

나는 감각이 닫히지 않도록 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 여긴다.


로테가 빌헬름에게 말했듯이, 

차갑고 생명없는 문자를 가지고 

어떻게 천국과 같이 숭고한 정신의 꽃을 피워낼 수 있겠는가!


그리고 가끔, 아니 자주, 매시간 꿈꾼다.

내 글이 누군가의 삶에 작은 표지가 되어줄 수 있기를, 

내 글이 누군가의 방황에 시원한 바람이 되어줄 수 있기를, 

내 글이 누군가의 걸음에 도약판이 되어줄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 

내 글이 나와 같기를, 내가 나의 글과 같기를

그렇게 내 글이 나이기를... 

나부터 제대로 살게 하기를...


그러기를 원한다면

내 글이, 나의 삶이 세상에 바람직하게 드러나야 할텐데,

이 끝도 없는 길을 가는 내가 지치지 않아야 할텐데,

이렇게 온 시간을 모두 할애하는 정성이 서서히 더 깊은 바다로, 더 높은 언덕으로 날 데려가야 할텐데,

딸내미 쓰던 노트북 받아서 쓴지 1년여. 새 덮개였는데 오늘보니 죄다 구멍이 났다. 손톱을 기르는 것도 아닌데.... 많이 쓰긴 썼나보다...

방법은 없다. 

계속 쓰는 수밖에.


다행히 나는 일단 나를 책상에 앉히기만 하면 바로 집중이 가능하고 바로 글쓰기 모드로 나를 맞출 수 있다. 이런 면에선 정말 탁월하다. 집중도 감각인지라... 나는 발달된 감각만큼 작은 소리에도 잘 놀란다. 겁도 많은 나여서 감각적으로 두려움도 어려움도 곤란함도 더 크게 느낀다. 겉으로 대담한 척, 다 해내는 척하지만 이는 열린 감각의 도움으로 두려움위에 용기같은 느낌을 얹혀보려는 시도에 늘 집중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무튼 감각을 열어놓고는 매순간 

온 세상이 나를 통과하도록 

나는 세상을 배려하고 

세상은 나의 배려에 의지해 

나와 세상은 이것저것 주고받느라 

매일 분주하긴 하다.


그러니, 

그냥 쓰자. 

계속 쓰자, 

맘에 들 때까지 쓰자, 

더 이상 쓸 게 없을 때까지 쓰자.


방법은 없다. 

행동만을 나에게 명령할 뿐.

한계다 뭐다 하며 괜한 머리 쓰지 말고

이게 최선인가 아닌가 괜한 궁상 떨지 말고

잘쓰니 못쓰니 들여다보며 괜한 심술 내지 말고

창조가 어쩌니저쩌니 괜한 형이상학에 빠지지도 말고!


온 감각으로 들어온 것들에서 핵심찾아 살뜰히 꺼내어 주무르지 말고 그냥 써보자.

그렇게 이 난관의 나날들이 나에게서 지나가도록 나를 더 잘 써보자.

그리고 세상에게도 부탁하자, 나를 잘 쓰라고.

그래야 겁많은 내가 세상믿고 핵심찾아 대.담.하.게 쓸 수 있으니.


여전히 난 모른다.

내가 왜 글에 이토록 매달리는지...

분명한 사실 하나는 

글이 날 만들어주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주>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1999, 민음사 


[지담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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