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T와 함께 보는 영화
*이 글은 영화 '라라랜드'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라라랜드, 벌써 10년이 다돼가는 영화이다. 이 영화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인데 완벽하지 않은 사람 사는 이야기를 현실적으로 그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즈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고, 지금은 좋아하지만 그때 당시 배우였던 라이언 고슬링의 외모가 내 취향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흥미 없이 단지 유명해서 보러 갔으나, 이 영화는 영화에 대한, 인생에 대한 나의 관점을 바꿔놓았다. 일단 완벽한 해피엔딩이란 없다는 것, 사랑과 꿈이라는 건 삐걱거린다는 것, 살아가는 순간에선 그 과정에서는 최악이라고 느껴져도, 돌아보면 하나의 이야기로 남는다는 것이다.
나는 그전까지 개연성이 어찌 되었든 주인공이 이어지는 해피엔딩 스토리를 좋아했다. 하지만 이 영화의 경우, 세바스찬과 미아는 결국 이어지지 않으며, 둘 다 꿈을 이루지만 미아의 성공에 비하면 세바스찬의 성공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인다. 세바스찬은 백마 탄 왕자도 아니었고 친구에게 사기를 당해 무일푼이다. 미아는 오디션이란 오디션을 다 보러 다니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준비한 1인극에 대해선 악담을 듣는다. 둘은 솔직히 말하면 준비된 것 없이 만난 커플이고, 음악을 한다는 면에서 비슷하지만 가치관이 달라 사귀는 동안 자주 싸운다. 가진 것 없이 삐그덕 거리는 그들이지만 결국 그들은 꿈을 향해 나아갔고, 그들의 러브스토리의 결말은 이별이었지만 그 과정 속에서 성숙했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는 내내 함께하는 음악과 색감도 아름다웠다. OST와 연결해 가며 영화를 다시 돌아보겠다.
1. City of Stars, Audition(The fools who dream)-잡히지 않는 꿈, 몽상가
세바스찬은 재즈피아니스트로 자신의 정통재즈카페를 차리는 게 꿈이다. 사회가 바뀌어 정통재즈는 인기가 없고 피아노를 치러 일하러 간 곳에서 캐럴을 치라는 지시를 어기고 재즈를 친다. 세바스찬을 변호하자면 그의 재즈에 대한 열정으로 포장할 수 있겠으나 고용주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었을 것이다.
OST: City of Stars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도시의 별들이여, 나를 위해서만 반짝이는 건가요?
City of stars, There's so much that I can't see 도시의 별들이여, 내가 볼 수 없는 것이 너무 많아요
나는 'City of stars' 중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도시의 별'을 이상으로 봤을 때, 이 별이 나를 위해서만 반짝이냐고 묻는 것을 보면, 이 영화의 제목인 '라라랜드'가 '몽상의 세계'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어쩌면, 자신의 이상, 꿈이라는 게 잡히지 않는 게 아닌 건지 되뇌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해석을 더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문장이 있는데
Is this the start of something wonderful and new? 이것은 멋지고 새로운 것의 시작일까요?
Or one more dream that I cannot make true? 아니면 그저 실현할 수 없는 또 다른 하나의 꿈인 걸까요?
세바스찬과 미아는 몽상가에 가깝다. 사회에서 규정하는 일 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이상을 좇는다. 어떻게 보면 낭만파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이 이상적이라는 사실을 본인들도 안다. 새로운 것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실현하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젊기 때문에 계속 부딪히고 실패하며 꿈과 가까워지고 현실을 알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불완전한 둘은 서로를 위로한다.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만이 위로가 아니라 공감의 눈빛을 주고, 그저 같이 있는 것만으로 위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City of Stars'는 영화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데 그중 피아노를 치며 듀엣이 있는 부분을 가장 좋아한다.
A look in somebody's eyes/To light up the skies
눈을 바라보는 것은/하늘을 밝혀주고
To open the world and send it reeling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A voice that says, "I'll be here." / And "you'll be alright."
"내가 있을게", "너는 괜찮을 거야" 하는 말
I don't care if I know/Just where I will go
내가 어디까지 갈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요
'Cause all that I need is this crazy feeling
지금 필요한 것은 이 미칠 것 같은 감정이니까
자신의 선택한 길이 맞는지 확신이 안 서는 세바스찬이 고민이 가득한 얼굴로 중얼거리듯 가사를 읊다 미아가 집에 들어오고 답하듯 같이 노래를 부른다. 그 장면이 이 영화 중 가장 로맨틱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가사도 달달하다. 마치 미아가 세바스찬한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노래 중간 미아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세바스찬도 따라 웃는 부분도 마음에 든다.
꿈을 꾼다는 건 어쩌면 괴롭고 불안한 일일지도 모른다. 미래라는 것은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으며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꿈을 가지라고 강요받지만 막상 크면 꿈을 따르기보다는 현실에 순응하라는 압박을 받는다.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꿈을 지니고 있는 것도 힘든 일이고, 그 꿈을 이뤄나간다는 건 더욱 고통스러운 일인 것 같다. 꿈이, 이상이 우리를 먹여 살리지는 않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그런 목표 없이 사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울고 아파하면서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나아가는 그 모습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OST: Audition(The fools who dream)
And here's to the fools who dream 꿈꾸는 바보들을 위하여
Crazy as they may seem 비록 미친 것 같아 보일지라도
Here's to the hearts that break 상처 입은 마음을 위하여
-Audition 중
미아는 오디션에 가서 이모 이야기를 꺼내며 서사시 노래를 부른다. 부제부터 꿈꾸는 '바보들'을 위해서이다. 그 노래를 부르는 미아의 표정은 슬프다.
나는 가끔 주변사람들에게 '이상적이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나는 뚜렷한 인생계획이 있는데 이 말을 듣고는 남들에게 이루기 전까지 계획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단지 꿈만 꾸는 것이 아닌, 꿈을 현실화하기 위한 조건들을 하나씩 쌓고 있고, 충분히 실현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계획대로 일이 잘 안 풀릴 때,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어질 때, 실패할 때 스스로가 바보 같아 보이고, '내가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인가' 좌절하곤 한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갈망해 온 순간들, 노력했던 과정들이 아까워서라도 꿈을 쉽게 놓지 않으며 다시 일어나려 노력한다. 힘들었던 시간 속에서, 라라랜드의 OST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2. Another Day of Sun-그럼에도 기회는 온다
I'm reaching for the heights 더 높이 올라갈 거야
And chasing all the lights that shine 저 반짝이는 빛을 쫓아
And when they let you down 세상이 널 낙담시켜도
You'll get up off the ground 툭툭 털고 일어나
'Cause morning rolls around 아침이 다시 돌아왔고
And it's another day of sun 또다시 해가 떴으니까
이 노래는 영화의 오프닝에 나오는 노래인데 미국 한복판에 차량이 모두 정체하고 뮤지컬처럼 도로에서, 차 위에서 사람들은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 오프닝곡인만큼 이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가장 희망적인 가사가 있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해가 뜬다는 건 여러 의미가 있다. 오늘을 망쳤다 생각해도 내일은 다시 시작이며 새로운 기회의 문이 열린다고 해석할 수 있다. 또한 해는 밝음을 비추기 때문에 희망의 원형적 상징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아와 세바스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싼 젊은이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은 넘어지고 실패하기를 반복한다. 좌절하고 방황하기도 하지만 다시 오는 내일을 바라보며 다시 한 걸음 나아간다. 어쩌면 이 노래는, 미아와 세바스찬, 그리고 희망과 절망의 질곡을 넘나드는 세상 사는 모든 이들을 위한 노래일지도 모르겠다.
3. Someone in the crowd/A Lovely Night-내 취향도 아니었는데 어쩌다 내게 들어온 그
인연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인연을 만들며 살아간다. 태어나면서 부모님과 세상을 만나고, 유치원, 학교를 거치며, 일을 하며,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힌다. 때로는 지나치며 만난 사람과 깊은 인연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를 만들어나가고, 정리하기도 하지만 그중 어떤 관계는 조금 더 특별한 듯하다. 복잡한 그물망 속 세바스찬과 미아는 왜 하필 그/그녀였을까?
OST: Someone in the crowd
Someone in the crowd could take you where you wanna go
수많은 사람들 중 네가 가고 싶어 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나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고 미워하며, 그리워하게 된다.
상처를 받을 때면 '인간관계 때려치워'를 외치지만 결국 그 속에서 다시 치유받고 살아간다. 나나 다른 사람이나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고, 미성숙하기 때문에 관계는 늘 평탄하지만은 않지만 그런 경험 속에서 우리는 하나씩 배워나간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수많은 인구 속, 그들의 청춘의 순간에서 서로에게 'Someone in the crowd'였으며, 가고 싶은 곳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꼭 남녀관계가 아니더라도,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 중 우리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 도움이 되는 특별한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예상치 못한 관계 속, 사람들은 서사를 그려낸다.
세바스찬과 미아는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가까워지며, 다른 점이 있지만 분명 통하는 점이 있다. 그리고 사귀는 과정 속 그들은 분명 도움을 준다. 미아가 재즈카페 이름을 나중에 'Seb's'라고 하라 하는데 나중에 세바스찬은 이를 따른다. 미아는 여러 번의 고배를 마시고 결국은 여배우가 된다. 그들은 실패의 과정에서 함께 했지만 다른 관점에서 보면 성공으로 이르는 과정 속에서 만난 셈이다.
OST: A Lovely Night
This could never be 그렇게 될 리 없죠
You're not the type for me 당신은 내 취향이 아닌걸요
And there's not a spark in sight 불꽃이 튀지도 않고
What a waste of a lovely night 이렇게 멋진 밤을 시간낭비하네요
겨울에 교통정체 속에서 둘은 처음 만나고, 봄의 파티에서 재회한다. 둘은 서로를 기억하지만 미아는 세바스찬은 골려주고, 둘은 파티에서 나와 밤길을 걸을 때 서로 이어질 리가 없다며 춤을 춘다.
그리고, 영화에서 남녀가 만나는 클리셰처럼 처음에는 서로를 밀어내며 투닥거린다. 그리고 그렇게 별로라던 그들은 결국 언제 사귀게 되었는지도 모르게 데이트를 하고 있다.
'서로 이상형이 아니었지만' 그들은 가장 가까운 사이가 된다. 우리는 이외에도 완벽하지 않은 관계들을 만들어 나간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도 선택하지 않으며, 우리가 상황은 선택할 수 있을지라도, 그 속 관계는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의 결점이 보이고, 마음에 안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와 다른 점, 배울 점, 의외의 매력을 찾아나가기도 한다.
미아와 세바스찬은 사귀고 나서도 결코 순탄하지 않다. 둘은 각자의 인생 속에서 실패를 반복하며, 그로 인한 스트레스와 의견차이로 다툰다. 둘 다 힘들기 때문에 서로 의지하는 것이 바람직하겠다마는, 우리 인생은 도덕책 같지 않다. 밖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쏟아내며 상대가 감정쓰레기통이 된다. 이런 관계는 당연히 바람직하지 않으나 살면서 쉽게 볼 수 있는 관계이다.
이들이 안정적인 직업이 있었다면, 그들 사이는 더 괜찮았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좋은 학교에 들어가고, 직장을 얻고, 꿈을 성취했다고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며 다시 새로운 시작이다. 하나를 이룬 것 같으면 준비하지 않은 슬픔이 닥치기도 한다. 모든 일에 준비된 사람은 없으며 완벽한 사람은 없다. 육각형 인간형(모든 방면에서 뛰어난 사람) 유행이고, 나도 그렇게 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렇다고 완벽해지지는 않는다. 사람은 불완전하기에 결국 불완전한 사람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끌린다.
4. Mia & Sebastian's Theme (Celesta)-결국 이어지진 않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결말이다. 미아는 바에서 세바스찬이 차린 'Seb's셉스' 바에서 피아노를 치는 그를 발견한다. 그때 세바스찬이 치는 곡이 바로 이 노래이다. 가사 없이 피아노 반주로만 이뤄진다. 미아는 세바스찬이 아닌 그의 남편과 셉스를 방문해 피아노를 치는 세바스찬을 바라보고, 현재 남편이 아닌 그와 이어질 때의 가정을 하며 옛 추억을 회상하며 과거와 장면이 겹쳐진다.
"그때 그랬다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은 결국 의미 없는 가정이다. 그걸 미아도 잘 안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마지막에 서로를 바라보며 눈빛을 주고받는 부분이다. 그들은 말없이 '서로의 상황을 이해한다는 시그널'을 보낸다. 미아는 뜻대로 성공한 여배우가 되었고, 세바스찬은 원대로 재즈카페를 차린다.
이어지지 않았기에 이 영화가 더 좋다. 현실적으로 그들은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 속 있었다. 그 과정에서 멋진 이야기를 그려냈지만 결국은 각자의 꿈에 집중하는데 이별이 불가피했을 것이다. 불완전하기에 아름답고, 그렇기에 더 꿈같은 영화 '라라랜드'는 꿈과 사랑이라는 주제는 현실적이지만 이상적인 영화였다. 나의 인생에서 응원이 돼주기도 한 이 영화와 음악, 라라랜드를 다시 정리하니 새롭다. 모든 이들이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꿈을 이루기를 바라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