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레디메이드 인생' '명일'-삶의 의미는 스스로 정하는 것
고등학교 3학년 때, 공부가 하기 싫어 도서관에 가 책을 읽었다. 당시 중2병이 늦게 온 건가 인간실존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을 때, 나의 눈을 끌었던 책은 '인간실격'이었다. '인간실격'이라... '인간보다 못하다?' 처음에는 주변인에 대한 비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읽어보니 인간실격은 주인공 자신을 향한 조소임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부터 세계고전문학을 꽤나 많이 읽었던 나이지만 이 소설은 처음이었다. 그리고 만약 어려서 읽었더라면 내용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음... 그런데 솔직한 소감을 말하자면, 내용이 그리 유쾌하진 않았다. 주인공 요조는 여성편력과 약물중독에 빠지며 자살까지 시도하는 그야말로 타락한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게다가 어느 정도 작가의 자전적 내용이라고 하니 더 충격이었다. 교훈적이라고 보기 어려워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는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 소설이 고전으로 현재까지 전해지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몇몇 구절들이 공감되었고 와닿았다. 이런 주인공의 삶을 본받으라는 뜻은 전혀 아니지만 인간 존재의 본질, 인간 고독과 자아에 대한 깊은 성찰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인지 채만식의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과 '명일'이 떠올랐다. 두 소설은 수능국어공부를 하며 접한 책인데 내용이 매우 유사하다. 두 소설이 유사하므로 '채만식 소설'로 묶어서 표현하겠다. 인물이 자기비판을 넘어 자기비판을 한다는 점, 시대적 요소가 많다는 점, 작가의 자전적 요소가 있으며 인물들이 타락해진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느꼈다. 겸손이 중요시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엄해야 하며 위선일지언정 남에게 피해 주지 않아야 한다는 동아시아적 문화 탓일까 인물들은 자신들의 삶에 꽤나 회의적이다.
'레디메이드'는 기성품을 뜻하며 '레디메이드 인생'은 학교를 나왔지만 취업이 안 되는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표현이다. 주인공 P는 자기 자신을 '잉여인간', 즉, 쓸모없는 인간으로 규정하기에 이른다. '인간실격'은 제목에서부터 유추할 수 있듯이 자기 자신이 인간이 될 자격이 없다고 여긴다. 요조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 소통을 어려워하고 관계 맺음을 어려워한다. 그런 자신의 모습을 감추고자 가면을 쓰고 위선적인 모습으로 살아간다.
그들이 자기 비하와 혐오를 하지만 상대적으로 상위조건에 있었다는 점도 비슷하다. '남들이 보기엔 다 가졌지만 난 불행해'라는 갭 모에인가? 먹고살기도 힘든 시대에, 그들의 방황은 배부른 고민으로 보이기도 한다. 요조는 부친이 기업가 출신 국회의원인 당시 일본의 부유층이었는데, 이 사실을 인식하고 방황한다. 자본주의에 반하는 사회주의 사상에 빠지며 자기 자신이 '특권'을 누리는 것에 대해 괴로워한다. 채만식 소설 '레디메이드 인생'에서 주인공 P는 동경 유학을 하고 잡지사에서 근무한 적이 있는 고등인텔리이고, '명일'에서 주인공 범수는 대학을 나온 인물이다. 그 당시 대학을 나온 사람이 거의 없었으므로 지식인임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지식인임을 인지하지만 자신의 지식이 사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자조한다.
두 작가의 소설에서 인물들은 자아비판을 넘어선 가학적인 자기혐오를 한다. 인물들은 나은 환경에 있다는 점에서 자만하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를 비난하며, 자아를 객관적으로 인식한다. 인간실격의 “나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나는 나를 증오한다."라는 구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자기반성을 할 수는 있어도 이렇게까지 심하게 혐오해야 하나 싶다. 자아비판은 필요하다. 자아비판은,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다. 스스로를 돌아보고, 부족함을 깨닫고, 그것을 고쳐나갈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자아비판은 나를 사랑하고 아낄 때 이뤄질 수 있으며, 성장하고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하지만 자기혐오는 그 기대를 지울 때 발생한다. 자기혐오는 나의 잘못이, 나의 부족함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요소로 변할 때 이루어진다. 내가 가진 모든 것, 내 모든 행동, 심지어 내 존재 자체까지도 혐오의 대상이 된다. 나는 단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존재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감정은 단순한 반성이나 회의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지속적인 자기 파괴적인 욕구이다.
채만식의 작품에서 역시 자기혐오를 찾아볼 수 있다. 주인공은 지식인으로서의 자아와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다. 주인공은 조국의 현실과 자신의 무력함 사이에서 갈등을 느끼며, 결국 자기혐오에 빠진다. 그는 자신이 이룬 것이 없고, 국가나 사회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 자신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지식인으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책임감과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무력감이 그를 점점 더 괴롭히고, 결국 자신을 비난하는 자기혐오로 이어진다.
채만식의 두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지식인으로서의 무력감은 그들이 자신의 위치와 책임에 대해 불안을 느끼고,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혼란한 사회라는 역사적 배경 속에서, 지식인들은 자신의 지식과 교육이 사회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며 무력감을 느낀다. 특히, 채만식이 그린 지식인들은 이론적이고 책 속의 지식에만 머물러 있으며, 실제적인 행동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점에서 자기혐오가 발생하게 되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심리가 강화된다.
인물들은 자기비판을 하지만 해결책을 모색하지 않은 채 소극적으로 반응하고 사회변화를 위해 노력하기보다 되려 나쁜 길로 빠진다. 인간실격의 요조는 술, 담배, 모르핀, 매춘과 같은 퇴폐적 요소에 빠진다. 자기 자신에게 해를 입히는 것을 넘어 요조는 자신과 교제했던 여성들과 친구들에게까지 피해를 입힌다.
'레디메이드 인생'역시 인물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주인공은 방세도 못 내면서 담배가게 주인에게 체면이 깎이는 것은 싫다며 비싼 해태 담배를 억지로 구매한 후 후회하는 모습이나 자신의 책 및 양복도 모자라 친구의 책까지 저당 잡아 얻은 돈을 유흥으로 탕진한다. 이런 그의 태도에서 고등교육이 현실적인 도움을 되지 않는다는 걸 알지만 지식인이라는 자존심 때문에 '자신이 낮게 여기는' 직업은 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을 것임을 유추할 수 있다.
'명일'에서는 범수가 금은방에서 비녀를 도둑질하려다 실패한다. 그는 '배우는 것보다 차라리 도둑질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까지 한다. 지식보다 쓸모 있는 기술을 자식이 배우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적으로 이해되지만 사회적, 도덕적으로 '도둑질'이라는 대안을 생각한다는 점은 납득할 수 없다.
충분히 나은 삶을 살 수 있었음에도 스스로 타락한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더 이상 그들의 인생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두 작가의 책은 인간 실존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나는 개인적으로 누군가의 삶을 의미 없다고 규정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것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스로의 삶을 의미 없다고 느끼고 나쁜 길로 들어서는 순간, 삶의 의미가 상실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존재하지 않다. 내가 존재하는 것 같지만, 그저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기계일 뿐이다.” 인간실격에서 주인공 요조는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비관적으로 표현한다. 요조의 고백은 존재에 대한 깊은 불신을 드러낸다. 그에게 있어 삶은 끊임없는 가면 쓰기이며, 그는 진정한 자아를 찾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의 고통은 더 이상 외부 환경이나 타인의 시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내면에서 스스로 만들어낸 고통이다.
실존주의에 관해선 다양한 철학적 논의가 있고 나는 그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지는 못한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선에서 얘기한다면 실존주의자들은 ‘존재가 본질에 앞선다’를 전제로 인간실존은 삶이 부여된 이후 스스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실과 이상사이 간극이 있고 인간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그 부조리 속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며 삶의 의미를 창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조는 그 가능성마저 스스로 차단하고 스스로를 인간실격자라 주장한다. 자기 자신을 잉여인간으로 여기는 P 역시 마찬가지이다.
두 작가의 작품에서의 주인공들은 마지막까지 자기혐오와 절망 속에서 살아가지만, 그가 겪은 고통과 내면의 갈등은 우리에게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는 결국 ‘의미 있는 삶’을 찾지 못한 채 떠나게 되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실존주의에서 의미 있는 삶은 외부의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스스로 선택하고, 나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삶보다 매 순간의 선택을 하고 고뇌하는 과정에서 인생의 의미가 부여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들은 실존주의적 철학이 제시하는 삶의 무의미함과 고독함을 경험할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의미 있는 삶을 찾기 위한 답을 찾는 것은 독자에게 맡겨진다. 나는 힘든 세상 속 우리 모두 자신의 삶을 정의할 책임을 지고 살아가는 삶은 의미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며 오늘 하루를 또 열심히 살아가고자 한다.